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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와일드 번치 (The Wild Bunch, 1969)

샘 페킨파의 영화인 '와일드 번치'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감상했다. '폭력의 피카소'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그의 대표작을 처음 보는 것이어서 과연 어떤 작품인지 궁금했는데 역시 그의 별명이 괜히 붙혀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무법자들이 쉴 새 없이 총을 쏘아대고 총을 맞고 쓰러지는 인물들의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교차되면서 보여준다. 어떤 면에선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에서 보여진 결투 씬보다 치열하게 느껴질 정도로 인물들 간의 결투를 극한까지 밀어 붙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와일드 번치'의 초반부는 그의 영화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텍사스의 어느 마을에 들어온 군인들이 말을 타고 등장하는데 그들 근처에서 벌어지는 광경이 기괴하게 느껴진다. 전갈을 개미들로 둘러쌓인 곳에 집어넣은 다음 불에 태워 죽이려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미소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한편 군인들이 철도회사로 천천히 들어오는 과정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전달한다. 무뚝뚝한 표정을 짓는 군인의 대장이 할머니와 부딪히자 어느 새 친절한 얼굴로 바뀌어 그녀를 부축하는 모습은 잠깐이나마 그 긴장감을 풀어주지만 그들을 처리하기 위해 건물 위로 대기해 있는 무법자들의 모습은 불안감을 극대로 조성한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철도회사에 들어간 군인들이 자신들의 본색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군인인 줄 알았던 그들이 사실은 철도회사를 털기 위한 무법자들임이 드러나고 그 위에서 대기 하고 있던 무법자들이 현금사냥꾼들임이 밝혀지면서 그들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눌 것을 보여준다. 그들 사이로 금주 모임 행사를 하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동안 두 세력은 서로를 향해 총을 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후 영화는 이들의 결투 장면을 인상깊게 전달하고 있는데, 보통 무법자들끼리 총을 쏴대는 다른 서부극 영화들과 달리 무법자들은 민간인들이 죽는 것에 아랑곳 없이 총을 쏴댄다. 클로즈업 쇼트로 보여지는 민간인들의 공포스런 표정과 그들 사이에서 총을 맞고 쓰러지는 인물들의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담은 쇼트는 전투의 공포감을 인상적으로 전달한다. 끔찍한 아수라장 속에서 인물들이 상대방을 총을 쏴대는 와중에 현금사냥꾼의 리더인 딕 숀튼은 말을 타려는 무법자의 우두머리인 파이크를 발견한다. 딕은 무방비에 있는 파이크를 보고 총을 쏘지 않은 체 잠시 머뭇거린다. 두 사람의 마주침은 후에 있을 두 사람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치열한 전투 끝에 두 세력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된다. 무법자 무리들은 전투 끝에 여섯 명만이 살아남게 된다. 하지만 눈에 총을 맞은 파이크의 부하는 끝내 가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파이크는 더 이상 이동이 불가능한 그의 부하를 사살한 후 길을 재촉한다. 이후 다섯 남자는 멕시코의 경계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파이크의 옛 동료인 한 노인을 만난다. 이 곳에서 잠시 머문 다섯 남자는 서로의 재산 배분을 두고 갈등하게 된다. 작전의 실패를 들면서 파이크의 리더쉽을 지적하는 소치 형제와 그들을 조롱하고 깐쭉거리는 멕시코 인 엔젤 그리고 파이크와 더치 사이에서 흐르는 긴장감은 돈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갈라설 수 인간들의 천박한 탐욕을 드러낸다. 하지만 주머니에서 훔친 금화를 풀어본 다섯 남자는 그들이 훔친 물건들이 가짜였음이 드러난다. 그들이 훔친 돈이 아무 쓸모 없음을 깨달은 다섯 남자와 노인은 화를 내며 분노하지만 이내 껄껄거리며 웃는다. 이처럼 다섯 남자들은 자신의 부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서로를 향해 공격할 마음이 있는 탐욕을 가졌지만 한편으론 서로에 대한 감정을 금새 잊고 다시 합칠 수 있는 의기로운 심성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한편 현금 사냥꾼들은 무법자들과 싸워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을 뿐 실질적으로 잡은 무법자는 잔챙이들에 불과하다. 멍청한 현금 사냥꾼들은 마치 하이에나처럼 죽은 사람의 시체에 매달려 그들의 물건을 탐낼 뿐이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도덕적 양심이나 이성이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철도회사의 사장은 딕 숀튼을 찾아가 많은 돈을 투입하고도 도둑들을 잡지 못한 딕 숀튼을 비난한다. 딕은 형편없는 현금 사냥꾼들을 비난하면서 자신에게 더 좋은 베테랑 사냥꾼들을 고용해줄 것을 요청하지만 철도회사 사장은 그의 약점을 건드리면서 기한내에 서둘러 무법자들을 잡도록 협박한다. 영화는 철도회사의 사장의 대사와 무법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파이크와 딕의 숨겨진 관계를 드러낸다. 사실 이 두 사람은 한때 동료 였지만 그들의 아지트를 습격한 보안관들의 총격으로 부상을 입은 딕만이 감옥에 갇히게 된다. 결국 딕 숀튼은 자유의 댓가로 파이크를 잡아야 한다. 이처럼 무법자들을 처단하는 현금 사냥꾼들의 모습은 악행을 저지르는 무법자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임이 드러난다. 철도회사의 사장은 자신이 고용한 남자의 약점을 이용해 딕을 닦달해대고, 딕의 부하들은 파이크의 부하보다 더할 정도로 흉폭하고 제멋대로인 모습을 보여준다. 딕 숀튼은 이런 추악한 인간들과 일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만 생존을 위해 그들을 데리고 자신의 옛 동료인 파이크를 잡기 위해 무법자들을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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