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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노인을 위한 영화는 있다 <로큰롤 인생>

영화 <로큰롤 인생>을 처음 접했던 건 뮤직비디오 <Fix You>를 조악한 음질로 보았을 때였다. 평소 애청곡인 콜드플레이의 명곡을 할아버지가 웅얼거리며 부르는 것을 잠깐 듣고는, "크리스 마틴의 노래를 할아버지가 부르다니, 이게 뭐야." 하고는 지나쳐 버렸었는데... 오늘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날의 경솔함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연인에게 부드럽게 불러주는 듯한 크리스 마틴의 <Fix You>는 프레드 니들 할아버지의 중후한 음성을 통해서 인생의 연륜을 담아서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음악으로 훌륭하게 재탄생했다.

프레드 니들 할아버지는 <로큰롤 인생>의 원제이자 코러스 밴드 이름인 "영 앳 하트"의 멤버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목소리를 지닌 인물이다. 성악가처럼 넓은 음역을 넘나드는 동시에, 부드러우면서도 풍부한 음량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성의 스펙트럼을 가득 채우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엄격하면서도 솔직한 밴드의 단장 밥 실먼이 그에 대해서 찬사를 아끼지 않는 것처럼.



평균연령 81세의 노인들로 이루어진 이 합창단이 개성을 가지게 된 요인 중 하나는 아마도 단장 밥 실먼의 대담한 선곡에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여서 찬송가를 부르거나 올드 팝을 불렀다면 동네 어딘가에 있을 듯한 평범한 합창단이 되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전정신에 불타는 밥 실먼은 클래식과 오페라를 즐겨 듣던 노인분들에게 로큰롤은 물론이요, 이들에게는 영 낯설은 펑크 뮤직 악보까지 들이민다. 그리하여, 한계라는 것이 없는 듯한 이들의 레파토리는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는 기본이고, 클래쉬와 소닉 유스, 지미 헨드릭스를 넘나들게 된다.

하지만 음악은 인류 공통의 언어가 아닌가. 젊은이들의 혈기 넘치던 음악은 템포는 다소 느려질 망정 노인들이 목청껏 외치는, 그래서 놀랍게도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도발적인 일탈로 재해석된다. 제임스 브라운의 소울풀한 "I Feel Good"에서의 흥겨움은 여유 넘치면서도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출이 되며, 93세 할머니 아일린은 "Should I stay or Should I go"을 부르면서 클래쉬에 뒤지지 않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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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앳 하트" 멤버들의 음악적 재해석은 뛰어난 수준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그들의 가사 전달이다. 단어 하나하나를 천천히 또박또박 전달하는 노인들은 가사를 결코 무심코 내뱉지 않는다. 감정을 담아서 의미를 되새기면서 부르는 그들의 노래는 한 소절 한 소절이 깊이를 지닌다. 자신들이 일생을 통해서 얻은 인생의 교훈을 들려주려는 것만 같은 그들의 음성은 우리 가슴을 파고든다. 그들이 부르는 "Forever Young"은 그들 마음 속에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는 젊음을 들려주며, 그들이 말하는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는 그들이 몸소 체험한 인생의 진실을 말해주고, 그들이 합창하는 "Yes We can can" 을 통해서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이 그대로 전달된다.

제목에 "노인을 위한 영화"라고 썼지만 <로큰롤 인생>은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감동을 줄 것이 분명하다. 아이들처럼 순수한 듯이 보이면서도, 동시에 인생의 쓴맛을 겪어낸 후 얻은 소중한 지혜를 지닌 어르신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진솔한 인터뷰, 그리고 따뜻한 동료애가 추운 겨울날씨에 움츠러든 심장을 따스하게 녹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락 음악 애호가라면, 훌륭한 감각으로 선곡된 이들의 연주 목록과 뛰어난 리메이크 실력에 놀랄 준비를 하시기 바란다.


ps.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영화를 볼 때, 특히 음악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것은 사운드가 꽤 만족스럽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다른 극장들에서처럼 음량만 키워서 강조하려고 하는 찢어지는 듯한 음향이 아니라, 풍부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색을 즐길 수가 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카페>도 서둘러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