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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それでもボクはやってない, 2007)

'10명의 범죄인을 놓치는 것보다 1명의 죄없는 사람에게 벌을 내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첫 문구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는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한 남자의 사연을 통해 일본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는 치한 혐의로 붙잡힌 두 사람을 대비시키면서 죄가 없는 사람과 죄를 저지른 사람 간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람들로 가득찬 지하철에서 한 중년 남자가 치한 행위로 붙잡힌 뒤 주인공인 가네코 텟페이가 영문도 모른 채 경찰서에 동행하게 된다. 중년 남자는 피해자인 여성을 성추행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히지만 경찰이 손에 묻은 섬유로 그의 주장을 확인하려는 순간 무릎을 꿇으며 자신의 죄를 고백 한다. 중년 남자에게 진술을 받아낸 경찰은 치한 혐의로 붙잡힌 텟페이를 심문하기 위해 그에게 죄를 인정하라고 윽박지른다. 하지만 중년 남자와 달리 텟페이는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로 그들을 바라본다.

텟페이의 심문 과정 속에서 보여지는 경찰의 모습은 범죄자들을 판단하는 경찰의 편협한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형사는 범죄자로 들어온 사람을 판단하기 위해 물적인 증거를 수집하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체 피해자인 여학생의 심문을 바탕으로 그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텟페이를 윽박지른다. 게다가 형사는 텟페이에게 유죄를 인정하면 마치 딱지를 떼는 것처럼 벌금으로 합의를 보고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에게 자신의 혐의를 인정할 것을 권유한다. 그를 변호하기 위해 온 당번 변호사마저도 현실적으로 재판에서 무죄를 입증하는 것은 1%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텟페이에게 벌금을 내고 나오도록 설득한다. 하지만 아무런 죄를 저지르지 않은 텟페이로서는 그들의 권유가 어이 없을 뿐이다. 텟페이는 그들의 권유에 굴하지 않은 체 당연하게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치한범죄를 저지른 중년 남자가 벌금을 내고 풀려나오는 모습과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경찰서에 남은 청년이 범죄자 취급을 받으면서 감옥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텟페이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경찰서 내의 감옥에 수감되어 범죄자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검찰청에서 기소 여부를 판별하는 동안 보여지는 영화 속 장면들은 범죄자들의 열악한 인권을 잘 드러낸다. 도주의 우려를 막기 위해 범죄자들의 수갑에 끈을 매달아 놓고 검사가 기소 여부를 판별하는 동안 좁은 공간에 앉아 그 곳에서 끼니를 때우고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모습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배려가 부족해 보인다. 텟페이는 경찰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검사에게 자신의 무죄를 외치지만 검사는 그의 주장을 한 귀로 듣고 흘려 보낼 뿐이다. 결국 텟페이는 저지르지도 않은 자신의 죄로 인해 형사고발을 당하는 범죄자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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