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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home

란 (乱,1985)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1985 / 프랑스, 일본)
출연 나카다이 타츠야, 테라오 아키라, 네즈 진파치, 류 다이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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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 방영한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란'을 감상했다. 쿠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는 여지껏 한 번도 보지 못해서 과연 그의 명성에 비해 작품이 어떨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전국 시대 풍의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소한 느낌을 받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한 차례의 지루함도 없이 흥미진진한 느낌이 들었다. 권력의 욕구를 위해 싸우는 인물들의 모습과 그 속에서 비극적인 삶을 겪게 되는 사람들, 그리고 마치 신의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로 충격적인 마지막 결말까지 드라마적인 구성이 탄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란'의 초반부는 이치몬지 히데토라라는 성주가 멧돼지 사냥을 마친 후 잠시 천막에서 휴식을 취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겉으로 보기에 서로의 공을 치하하고 술을 나누는 모습은 화기애애하지만 각 인물들이 서로를 경계하는 모습은 어딘가 모를 위화감과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치몬지 성주와 동맹 관계에 있는 아야베와 후지마키 영주는 이치몬지의 셋째 아들인 사부로와 자신들의 딸을 혼인시켜 달라고 요구를 하게 되고 세 아들 중 막내 아들인 사부로는 이런 두 영주를 토끼에 비유함으로써 갈등을 조성하고 있다. 이 때 노쇠한 이치몬지는 갑자기 잠이 들게 되어 잠시나마 갈등이 해소된다. 하지만 사부로의 직설적인 발언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두 형과 그들을 보고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부로의 모습은 형제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음이 드러난다. 악몽을 꾼 이치몬지는 놀란 듯이 천막 밖을 튀어나와 자신이 황량한 들판에 홀로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이후 아들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꿈에서 깨어났다고 고백한 이치몬지는 세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아버지의 부정에 감동하는 두 아들과 달리 사부로는 노쇠해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놀라한다.


꿈에서 깨어난 이치몬지는 모든 사람을 불러 모은 뒤 자신의 권력을 장남인 타로에게 이양할 것을 선언한다. 이제 자신은 세 아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고 싶다고 고백한 이치몬지는 화살을 가져온 뒤 형제의 우애를 지킬 것을 가르친다. 하지만 사부로는 억지로 화살 뭉치를 분질러 형제 간에 우애를 지키라는 아버지의 정감있는 행동에 반감을 드러낸다. 사부로의 형인 타로와 지로는 직설적인 사부로의 행동에 화를 내지만 사부로는 이에 개의치 않고 아버지의 행동을 비난한다. 이치몬지에게 공손한 태도를 취하는 타로와 지로와 달리 사부로는 건방지고 직설적인 행동을 취하지만 사부로는 직설적인 발언을 통해 현실을 제대로 볼 것을 요구한다. 그는 난세에서 평생 인정과 용서 없이 상대방을 살해하여 성주의 자리에 오른 이치몬지가 노년에 난세의 자식들에게 의지하는 것은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부로의 직설적인 말과 행동을 오만하다고 여긴 이치몬지는 사부로를 파문시킨 후 그를 자신의 영지에서 추방시킨다. 사부로와 그의 충신인 탄고는 자신들의 충고를 묵살한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 탄식한 후 조만간 불어올 피바람으로 인해 아버지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 때 사부로의 행동을 지켜본 후지마키가 나타나 그를 사위로 삼고 싶다고 고백한다. 사부로는 자신의 행동의 진심을 이해한 후지마키와 함께 하기로 결심하고 영지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