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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리튼] 그리고 이야기는 계속된다


리튼 (Written)
김병우 감독, 2007년

저예산 독립영화만이 지닌 가능성

한 남자가 욕조에서 깨어난다. 폐쇄된 공간 속에서 남자는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건지 기억하지 못한다. 정신을 차린 뒤에야 남자는 자신의 배에 난 수술자국을 보고 누군가가 자신이 기억을 잃은 사이 신장을 훔쳐갔음을 알게 된다.

알 수 없는 곳에 감금된 채 장기를 강탈당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리튼>은 남자의 강탈당한 신장이 곧 맥거핀이었음을 밝히면서 이야기를 점점 미궁 속으로 끌고 간다. 남자는 자신을 작가라 부르는 여자를 만나 자신이 그녀가 쓴 작품 속의 등장인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당혹스러움에 빠진다. 여기에 그녀가 쓴 작품을 영화화하려는 감독과 배우를 등장시키면서 <리튼>은 영화 속 영화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복잡한 내러티브의 영화로 탈바꿈한다. 표면적으로는 스릴러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그 속에는 텍스트에 대한 철학적 담론을 담고 있는 말 그대로 인텔리전트한 영화다.


등장인물과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과 배우, 이렇게 네 인물이 영화 안과 밖에서 맺어가는 복잡한 갈등관계는 난해하지만 흥미롭다. 특히 자신의 작품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등장인물에 대한 연민으로 작품의 결말을 밝히지 않은 채 잠적을 하는(죽음을 선택하는) 작가의 행동은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논문 ‘저자의 죽음’을 연상케 한다.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의도를 텍스트의 해석 기준으로 삼는 것에 반대하기 위해 ‘저자의 죽음’을 통해 텍스트의 독자성을 주장하며 저자의 죽음을 선언했다. 이후 바르트의 논의는 푸코와 데리다를 거치며 텍스트의 무한한 해석 가능성에 대한 포스트모던 담론으로 이어져갔다. 그러므로 <리튼>의 복잡하고 난해한 갈등구조도 결국 텍스트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작가-등장인물과 텍스트를 하나의 의미로 봉합하려는 감독-배우의 대립양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작품의 결말을 밝히지 않은 채 이야기를 열어 놓으려는 작가와 작품의 결말을 영화에 담아냄으로써 이야기를 닫으려는 감독의 갈등은 곧 영화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쫓고 쫓는 등장인물과 배우의 추격전으로 발전한다. 그 속에서 등장인물은 이야기를 스스로 쓸 것인가(write) 아니면 쓰임을 당할 것인가(written)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마침내 등장인물이 도달한 곳은 자신이 속한 영화 속 세계도, 그 영화를 만들고 있던 영화 밖 세계도 아닌 제3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등장인물은 TV 화면조정시간에 흘러나오는 화면처럼 색이 칠해진 벽을 바라본다. 결국 <리튼>은 모든 이야기가 무(無)의 상태로 돌아오면서 끝이 난다. 그것은 또한 앞으로도 이야기는 계속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리튼>은 2천만 원의 저예산으로 독특한 발상의 이야기를 스타일리시한 영상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독립영화만이 지닌 가능성을 보여준다. 복잡하고 난해한 내러티브 구조와 기교 넘치는 연출에서 보이는 젠체하는 태도는 어쩌면 저예산으로도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감독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막 두 편의 독립장편영화를 발표한 김병우 감독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영화다.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