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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Angst Essen Seele Auf,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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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회 씨네아트 블로거 상영회를 통해 '누구나 다 아는 제목이지만 실제로 본 사람은 몇 명 안되는 영화들' 가운데 하나인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감상했습니다. 이 작품 역시 이름만 들어도 괜히 황홀해지는(보다 정확히는 괜히 주눅들게 만드는) 감독들 가운데 하나인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작품이죠. 예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1972)을 보다가 곤히 잠들었던 각별한 인연이 있는 감독입니다.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1979)은 아주 어렸을 때 TV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이 작품 역시 제목을 하도 자주 들어서 어느새 본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흑인 노동자와 20세 연상의 독일인 할머니의 사랑 이야기라니 생각만 해도 몹시 불안해지고 영혼이 송두리채 잠식되어도 별로 할 말이 없을 것 같은 설정입니다. 시대배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는 사랑을 다룬 작품들은 셀 수도 없이 많죠.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보기 전에 가장 유사하다고 생각했던 작품은 로저 미첼 감독, 다니엘 크레이그와 앤 레이드 주연의 영국 영화 <마더>(2003) 였습니다. <마더>를 보고 얻었던 '가슴 한켠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를 연말에 더 얹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컴컴해지더군요. 그러나 미리 불안에 영혼이 잠식된 상태에서 본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마더>의 원전에 해당하는 내용으로만 그치는 작품이 아니더군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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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소외된 두 사람, 혼자 사는 노년의 여성 에미(브리지테 미라)과 6명이 한 방을 쓰는 모로코 출신의 노동자 알리(엘 헤디 벤 살렘)가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보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편견과 이로 인한 갈등 역시 약간 과장된 듯 하지만 그만큼 명쾌하게 전달됩니다. 이웃들과 직장 동료들은 물론이고 장성한 자식들과 싹퉁머리 없는 사위(파스빈더가 직접 출연했더군요)들, 그리고 알리의 아랍 커뮤니티에서조차 두 사람의 만남에 노골적인 반감을 표출합니다. 이제 주변의 압박으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서서히 파국으로 치닫게 될 차례일텐데, 그러나 두 사람은 오히려 결혼이라는 강수를 두면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더군요. 에미가 심적인 고통을 호소하며 오열을 하면서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들 앞에 알리와의 사랑을 재확인하는 장면은 확실히 제가 예상했던 전개와는 상반된 것이었습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의 진가는 두 사람이 짧은 여행을 다녀온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더군요. 생각해보면 주변 인물들 가운데 두 사람의 '금지된 사랑'에 무관한 듯 대처했던 인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에미가 세들어 사는 아파트의 젊은 건물주인데요, 아마도 이웃들의 제보로 찾아온 듯 했지만 에미가 알리를 세입자로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물러가 버리죠. 에미와 알리의 다른 주변 인물들과는 달리 자신의 이해관계와 무관한 일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식의 태도를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나중에 에미와 알리가 다투었을 때 울고 있는 에미를 보고도 그냥 지나쳐버리는, 오히려 더 냉혹한 측면도 갖고 있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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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와 알리의 여행을 기점으로 주변 인물들은 서서히 다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일방적으로 반대하고 배척하던 태도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에미와 알리를 수용하기 시작합니다. 지하실에 공간이 필요했던 이웃집 여인이나 가뜩이나 물건이 안팔려 고민이 많으신 대머리 수퍼마켓 사장님이나, 에미와 알리는 정서적으로는 불편하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사회 구성원의 하나였던 것이죠. 어머니에 대한 분노로 텔레비전을 박살냈던 아들도 손주 좀 돌봐달라며 어머니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죠. 이 가운데 새로운 직장 동료인 유고 여성을 따돌리고 에미와 다시 앞날을 상의하는 청소부 아주머니들의 태도는 단연 압권입니다. 독일말이 서툰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자신들과는 급여 인상률이 다르다는 것이 따돌림의 이유가 됩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부분은 주변과의 화해가 에미의 심리적 고통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면서 에미와 알리의 관계에 내부적인 균열이 시작되었다는 점일 것입니다.(이 대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차별과 편견의 벽은 사실 바깥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 안에서부터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었다는 이 성찰과 반성이야말로 <불안과 영혼을 잠식한다>의 진정한 백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는 완전한 비극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책임한 희망으로만 가득하지도 않은 결말을 선택하고 있더군요. 전체적으로 약간 나열하는 식의 구성이기는 했지만 씨퀀스마다에 담겨있는 냉정한 현실 인식은 파스빈더와 이 작품 앞에 바쳐진 그간의 헌사들이 결코 공치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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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12월 블로거 상영회의 상영작으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가 선택된 데에 영혼을 잠식하는 불만이 좀 있었습니다. 다른 때도 아니고 요즘 같은 연말에는 좀 피하고 싶은 영화였다고 할까요. 그러나 매번 상영회를 할 때마다 경험하는 바이지만, 제가 점 찍었던 작품이 상영작으로 결정되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고(<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소개글을 쓰긴 했지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작품은 <리컨스트럭션>이 었습니다) 그리고 막상 상영회를 하고 나면 투표에 의해 결정된 상영작이 어떤 면에서는 무작위로 선택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적합한 작품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곤 합니다. 씨네아트 블로거 상영회에서 어느새 3편의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원더풀 라이프>와 <쥴 앤 짐>, 그리고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까지 그다지 공통점도 없어보이는 선택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한 작품 잘못 선정되었던 적은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관객이 영화를 선택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값진 기회가 내년과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져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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