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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상영회

제 3회 블로거 상영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씨네토크 후기

지난 토요일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상영한 '불안은 영혼을 장식한다' 블로거 상영회를 다녀왔다. 사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라는 감독의 이름은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적인 감독 중의 하나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지 영화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어서 다소 난해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는데 보는 내내 많은 점을 깨닫게 해준 영화였다. 서로 다른 연령과 인종이라는 특색을 가진 남녀의 사랑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질시,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을 달리 하는 인간들의 이중적인 면을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가는 점이 인상 깊었던 영화였다.

영화가 끝난 후 씨네토크를 시작할 시점부터 몇몇 관객 분 들이 상영관을 빠져 나오셔서 영화가 생각보다 난해하고 재미없었나 하는 생각이 걱정이 들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관객 분들이 끝까지 자리에 남아 씨네토크에 함께 참여하셨다는 점이 다행스러웠다. 초반 어색한 분위기에서 시작한 씨네토크는 한 분씩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하시면서 점점 활기를 되찾아갔다. 심지어 마이크가 잠시 이상이 생겨 발언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크게 하시면서 자신의 의견을 내신 분들을 보니 그 적극적인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또한 한 분씩 말씀하신 이야기들은 전혀 생각치 못한 예리한 시선과 생각들을 담고 있었다. 그 때 발언하신 모든 관객분들의 말씀 하나 하나가 많은 공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 분들의 의견을 노트에 적은 후 이렇게 글로 적고 나니 많이 곡해된 부분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부족한 글이지만 블로거 상영회에 참석하신 관객 분들의 넓은 양해를 바랄 뿐이다.


Photograph by 신어지 님

-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으신 신어지님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느낀 인상을 설명하셨는데, 다니엘 크레이크가 출연한 영국 영화 '마더'와 토드 헤인즈 감독의 '파 프롬 헤븐'이 생각났다고 말씀하셨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을 갖는 과정이 인상 깊었으며 슈퍼마켓 주인을 비롯한 주민들이 변심하는 모습이 이익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고 설명하셨다. 워낙 옛 필름이어서 그런지 마지막 엔딩 크레딧 없이 영화가 끝난 것이 아쉬웠으며, 알리의 대화가 후시녹음된 것에서 70년대의 옛스러움이 느껴진다고 말씀하셨다.

- 블로거 상영회의 작품으로 선정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감상하신 많은 관객 분들이 이 영화를 다양한 이유로 보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블로거 상영회를 통해 다시 영화를 감상하신 분, 씨네아트 홈페이지에서 영화의 제목과 시놉시스를 읽으신 후 영화를 선택하신 분이 있었으며 학교 수업에서 들은 것이 계기가 되어 영화를 감상하신 분도 계셨다. 특히 학교 수업을 통해 영화를 알게 되었다는 관객 분은 한국어 제목인 '잠식한다'라는 의미가 독일어로 '파도처럼 한 번에 집어삼킴'의 의미라고 지적 해주셨다.

- 에미와 알리 부부에 관한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인 두 여성 관객의 대화가 흥미로웠다. 비교적 젊은 여성분은 에미와 알리의 대화가 '~하세요'의 식의 명령을 내리는 느낌이 든다는 점을 지적하시면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두 남녀의 사랑보다는 나이 든 여인의 모성애 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반해 다른 여성 관객 분은 노인의 사랑이 반드시 모성애가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인간은 마음속에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있으면 겉모습과 관계없이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감상하고 난 후 이 영화의 내용이 70년대의 독일 사회만이 아닌 현재의 대한민국 내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한 관객 분들이 많이 있었다. 한 관객 분은 쿠스쿠스를 먹고 싶어 하는 알리의 모습이 한국인에게 김치를 못 먹게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발언하셨는데, 사회자인 세뼘왕자님께서 반월공단의 한 음식점에서 외국인이 건네준 김치를 머뭇거리며 받았다고 고백하신 점이 인상 깊었다.

- 한편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두 인물 간의 사랑을 다룬 이 영화가 감독 자신의 관점이 담겨있음을 지적하신 분도 있었다. 어떤 관객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에미와 알리가 양쪽 벽의 가운데 틈에서 보이는 장면이 벽으로 갇혀 있는 느낌이 들며 감독 자신의 내면을 보는 것 같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다른 분은 영화를 보면서 감독의 냉소적인 시선과 유머러스한 감정이 동시에 들었으며,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동성애자인 감독 자신이 겪었던 마음이 담겨있다고 말씀하셨다.

- 한 관객은 영화에서 소외받는 사람들끼리 패거리를 만드는 점을 언급하셨는데, 이러한 패거리가 형성되는 연결요소가 '불안'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집단에서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심리 때문에 영화 속의 인물들은 서로 패거리를 만들게 되는 것이며 자신과 다른 상대방을 차별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고 설명하셨지만 왜 차별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고백하셨다. '너무 행복해서 불안하다'라는 에미의 대사를 언급하면서 패거리끼리 뭉칠수록 행복은 줄어들지만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그 집단을 나올 용기를 내면 불안해지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한편 다른 관객은 예전에 본 다큐멘터리를 언급하셨는데, 미군 부대의 양공주끼리 자신들의 남성이 백인인가 흑인인가에 따라 패거리를 만들어 서로 차별하는 메커니즘의 원인을 이 영화를 통해 이해하셨다고 고백하셨다.

- 에미가 유고슬라비아 여인을 배척하는 장면에 관해 의견을 내신 관객들도 있었다. 한 관객은 에미와 알리가 서로의 외로움에서 사랑이 발전했지만 그 외로움이 충족되면서 에미는 보통의 독일인의 시선으로 회귀된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에미가 자신을 따돌림 했던 회사 동료와 함께 유고슬라비아 여인을 배척하는 장면에서 자신에 처한 현실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다양성을 느꼈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았다. 한편 에미의 유고슬라비아 여인에 대한 배척과 에미를 모욕하는 모로코 동료의 말을 들으며 웃는 알리의 모습에 대해 의견을 내신 분도 있었다. 즉, 에미와 알리가 서로의 욕망에 충실하기 위해 부부가 되었지만 관계가 파괴될까봐 두려워하게 되며,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기존의 집단과 관계를 맺게 된다고 설명하셨다.  

- 영화의 마지막 엔딩에 대한 관객들의 시선이 다양하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한 관객은 에미와 알리가 서로 손을 맞잡는 장면이 서로 노력해서 불안을 없애야 한다는 점에서 서로의 존재에 매달리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반해 다른 분은 제목과 시놉시스에서 불안에 잠식당한 주인공들이 파국을 당하는 과정을 연상했지만 '우리 서로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모습이 희망을 제시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설명하셨다.

- 영화의 전개 속도에 대해 설명을 해주신 관객 분도 계셨다. 알리와 에미가 처음 만나 결혼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10여 분 동안 해결될 정도로 빠른 속도를 보여주던 영화가 알리와 에미가 결혼 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 등에선 길게 느껴졌다고 설명하시면서 이러한 속도감의 차이를 통해 영화 속 장면을 섬세하게 이끌어가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씀하셨다.

- 마지막으로 발언을 하신 분은 영화를 보시고 난 후 '바그다드 카페'의 장면이 연상된다고 하셨는데,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상처를 회복한다는 점이 유사하다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