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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비카인드 리와인드 (Be Kind Rewind, 2008)



작년 말부터 유독 "영화에 관한 영화"들을 자주 본다. 미타니 코키 감독의 신작 <매직 아워>(2008)가 그랬고, 타셈 싱 감독이 6년만에 내놓은 작품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2006)도 결국엔 그들 각자의 시네마 천국을 보여주는 영화들이었다. 루이 말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 <굿바이 칠드런>(1987) 에서도 무성 영화에 대한 추억담을 볼 수 있었다.

2009년 첫 주말 개봉작인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바로 미셸 공드리 감독 자신의 시네마 천국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뉴저지의 아주 자그마한 비디오 대여점과 그 주변의 인물들이 영화를 가지고 어떻게 노는지, 그리고 영화가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따뜻한 시선 위에 담아 보여준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시네마 천국이 다른 감독들의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영화의 과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미래형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국가와 영화의 관계에 대해서도 풍자는 하되 비난만으로 끝나지는 않도록 다뤄주고 있는 작품이 <비카인드 리와인드>다.




미 셸 공드리 감독의 천재성은 어린 시절에나 가졌을 법한 천진한 호기심과 실험 정신을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하고 있는 데에서 나오고 있는 것 같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그와 같은 미셸 공드리 감독의 진면목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이크(모스 데프)와 제리(잭 블랙)의 기발한 아이디어들과 '스웨디드'(Sweded) 영화 만들기, 그리고 말장난에 가까운 대사와 감정 싸움들에는 미셸 공드리의 오리지널리티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찰리 카우프먼의 재능에 의존해야 했던 <휴먼 네이터>(2001)나 <이터널 선샤인>(2004)은 물론이고 성장을 멈춘 자아의 불편함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다뤄보려고 했던 <수면의 과학>(2005)과는 달리, <비카인드 리와인드>에서는 그야말로 초등학교 장난꾸러기 수준의 설정과 전개, 그리고 영화에 대한 순진무구한 애정을 고스란히 담아놓았다. 심지어 외형적인 만듬새에 있어서도 조잡한 홈비디오 영화를 만드는 극중 인물들처럼 듬성듬성하고 있는 흔적마저 엿보인다. 그런 미셸 공드리의 흔적들로 인해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더욱 좋아해줄 수 있다면 그는 미셸 공드리의 시네마 천국에 제대로 초대받은 사람이다.

< 비카인드 리와인드>에서 미국에 대한 언급이 발견된다는 것은 문화적 유산의 뿌리가 그리 깊지 않은 미국이 뉴욕과 헐리웃 영화를 통해 스스로에 대한 조작된 이미지를 양산해왔던 사실이 팻 왈러스라는 가상의 재즈 연주자에 대한 일화 속에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해 영화라는 매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프랑스 사람인 미셸 공드리는 '언급은 하되 비난 보다는 따뜻하게 감싸주는' 톤으로 <비카인드 리와인드>에서 다루고 있다. 어쩌면 스웨덴(Sweden)이라는 나라의 이름을 이용한 농담도 유럽에 대한 미국의 문화적 컴플렉스를 은연 중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마이크와 제리, 그리고 동네 사람들의 그들 스스로를 위한 영화 만들기를 제 3자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면서 웃고 끝낼 것이냐 아니면 진심으로 그들의 즐거움에 동참해줄 것이냐가 <비카인드 리와인드>의 작품 수준을 판가름하는 현실적인 갈림길이라고 생각된다. <비카인드 리와인드>를 보고 나면 본인은 과연 어느 쪽 편에서 보고 있었는지 스스로 묻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잭 블랙의 폭소 코미디인 것으로 홍보되고 있는 <비카인드 리와인드>에서 잭 블랙은 분명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기는 하지만 잭 블랙이 혼자서 일당백을 하고 있는 영화인 것은 결코 아니다. 영화에 대한 미셸 공드리의 생각과 취향이 <비카인드 리와인드>의 실제 주인공이고 줄거리 상으로는 잭 블랙이 연기한 제리 보다는 마이크(모스 데프)가 좀 더 중심 인물인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영화는 결국 팻 월러스의 신화가 실제인 것으로 믿기를 원하는 동네 사람들 모두가 주인공임을 보여준다. 그것이 곧 미셸 공드리가 보여주고 싶었던 영화 천국의 모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