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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아임 낫 데어 /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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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을 아는가. 그의 노래를 즐겨 듣고, 그에 관한 영화를 보고, 심지어 그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어도 정말로 밥 딜런을 아느냐는 질문에는 아마 멈칫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 자신이 밥 딜런이라 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무릇 사람은 삶을 살아가며 복잡한 변화를 겪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인생에서는 기술된 전기와는 달리 논리적인 통일성을 찾기 어렵다. 게다가 밥 딜런처럼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을 하나의 영혼으로 축소한다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일 수도 있다. 토드 헤인즈는 이 점에 주목하여 <아임 낫 데어>에서 진짜 밥 딜런의 이야기를 담는 대신 그의 다양한 면모를 재현하고 있는 여러 얼굴을 보여준다. 우디, 랭보, 잭, 로비, 쥬드, 빌리는 이름과 인종과 외모와 살고 있는 시대와 처한 상황까지 다들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밥 딜런이다.

빌리 더 키드(리처드 기어)는 토드 헤인즈의 <벨벳 골드마인>이 글램록의 기원을 오스카 와일드에게서 찾은 것처럼, 밥 딜런의 예술적인 태도가 혼란스럽고 절망적인 시대를 바라보던 무법자, 혹은 은둔자의 시선에서 나왔음을 뜻하는 인물이다. 그를 잡으려고 하는 팻 가렛이 쥬드를 비판하는 미스터 존스와 동일 인물이고, 빌리가 자기 자신과도 같은 우디를 마주치는 장면처럼 다음 시대를 반영하는 부분들과 함께, 커다란 기린과 기괴하게 분칠한 사람들의 이미지 등은 영화의 환상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또한 가사에서 드러나듯이 음유시인적인 밥 딜런의 모습은 아르튀르 랭보(벤 위쇼)라는 또 하나의 원형을 통해 나타난다. 영화 내내 계속되는 랭보의 독백은 시대를 관통하는 어떤 정신의 존재를 모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아마 밥 딜런과 랭보라는 훌륭한 두 시인의 가장 큰 공통점은 예술로 벌거벗은 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는 목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혼들이 현대 미국으로 넘어와서 다시 다른 영혼으로 탈바꿈했을 때,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빌리와 마주쳤던 떠돌이 흑인 소년 우디 거스리(마커스 칼 프랭클린)이다. 포크 뮤지션인 우디 거스리를 존경하는 젊은 시절의 밥 딜런과 닮은 우디는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성공을 꿈꾸는 치기어린 소년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파시스트를 격퇴하는 도구인 기타를 들고 자신의 시대를 노래하려는 꿈을 가진 방랑자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잭(크리스천 베일)은 저항성을 가진 민중 음악으로 상업적인 성공까지 거두게 된다. 특히 잭의 에피소드에서는 다큐멘터리와도 흡사한 구성이 돋보인다. 그러나 잭의 단편적인 모습과 킴 고든이나 줄리안 무어 등이 연기한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이러한 구성 방식은 픽션과 달리 곧잘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던 다큐멘터리 또한 대상의 본질을 완벽하게 보여줄 수 없다는 진리만을 내비칠 따름이다.

결국 밥 딜런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 앞에서 다시 밥 딜런은 여러 인물로 분열된다. 잭은 잠적 후에 가스펠을 부르는 목사 존으로 되돌아오고, 영화 속 영화에서 잭을 연기한 로비(히스 레저)는 성공을 거두면서 사랑했던 아내와 멀어지게 되며, 쥬드(케이트 블란쳇)는 가장 큰 내적 갈등을 드러내면서 전쟁처럼 공연을 치른다. 이러한 변화들은 밥 딜런이 일렉트릭 기타를 잡고 포크 록으로 전향하는 과정에서 들은 비난들과 사생활에서의 변화, 그리고 의도적인 은둔 생활을 함축하고 있다. 특히 쥬드를 따라다니는 미스터 존스는 그가 저항 정신을 잃었으며 다시 자유를 노래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밥 딜런을 한 방향으로만 고정시키려 한다는 게 얼마나 보수적인 생각인지 깨닫지 못하는 비평가들을 상징한다.

사실 밥 딜런은 저항성과 예술성이라는 어느 한 측면에서만 볼 수 있는 예술가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감정의 자유에 열중한 위대한 인간이었다. 그를 서로 다른 방향에서만 바라봤기에 밥 딜런은 시대의 양심으로 불리기도 했고,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를 팔아서 자신의 이름을 떨치려 했던 유다와도 같은 인물로 욕을 먹기도 했다. 그러므로 아마도 토드 헤인즈는 밥 딜런의 초상을 더욱 충실하게 그리기 위해 실제 밥 딜런과 더불어 그에 대한 획일적인 고정관념 또한 제외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아임 낫 데어>가 묘사한 밥 딜런의 해방된 정신은 밥 딜런이 없었기에 가능한 성취였을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 자유분방한 그를 위한 가장 성공적인 캐스팅은 여자인 케이트 블란쳇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이렇게 재구성된 밥 딜런 또한 결국 토드 헤인즈의 시선 안에서만 머물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밥 딜런은? 바람만이 알고 있겠지(Blowin' in the W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