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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체인질링 (Changeling, 2008)



러닝타임이 140 여 분이나 되는 작품이라 혹시나 중간에 졸리기라도 할까 싶어 캔음료를 하나 사가지고 들어갔었는데, 영화 끝날 때까지 음료수 찾아 마실 생각을 전혀 못하고 봤습니다. 이런 비슷한 경험이 언제 또 있었던고 하니, 작년 5월에 <아이언 맨>(2008) 을 보면서 버터구이 오징어 사갖고 들어간 것을 까맣게 잊었던 이후 두번째입니다. <아이언 맨>과 <체인질링>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영화인 것 같습니다만 사실은 매우 비슷한 작품들입니다. 미학적인 수준이고 뭐고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쾌하게 전달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 그리하여 영화 보는 도중에 뭐 먹고 싶은 생각 따위는 일절 떠오르지 않게 만드는 작품들이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체인질링>은 꽤 지루한 140 분이 될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정말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계속 따라오게 만드는 작품이더군요. 사실 미학적으로는 그다지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이 영화의 긴 러닝타임은 그냥 길기만한 시간이 아니라 다양한 장소와 인물들을 오가며 꽤 많은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데에 할애되고 있는데요, 중심 인물이라고 보기 힘든 인물들이 중간에 너무 강조되고 있어서 감정의 맥을 끊어먹기도 하고 극적인 효과를 얻기 위한 작위적인 연출이 군데군데 눈에 띄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형식적인 단점들을 극복해내는 매직 워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뜨는 짦은 자막 한 마디, 이 이야기는 실화(A True Story)라는 겁니다. 보통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정도로 밝혀두는 것으로 충분할 것을 굳이 '이 이야기는 실화다'라고 단정했던 데에는 대체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요.




애초에 미학적인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체인질링>을 만들고자 했었다면 아마도 꽤 많은 내용들이 생략되었을 겁니다. 선악의 구분도 좀 덜 분명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실화를 통해서 얻어진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일종의 사명감은 세련된 화법 보다는 다소 산만한 듯한 직설 화법을 택하게 만들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관객들 역시 영화가 시작되면서 이 이야기가 과거의 일이기는 하지만 실화라는 사실에 상당히 고무된 상태로 관람하게 됩니다. 부패한 경찰 조직과 의사나 소위 전문가 집단들이 하나가 되어 모성을 짓밟으며 공권력을 남용하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히 혈압이 치솟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체인질링>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과 오버랩되어 보여진다면 그것은 덤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물론 <체인질링>이 형편없는 미학적 완성도를 '실화'라는 단 한 마디로 둘러대고 있는 작품이라는 반대의 논리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체인질링>이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라는 사실과 뭐 솔직히 그리 세련된 화법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거의 지루해할 틈도 없이 정신없이 빠져들면서 보게 되는 영화라는 사실입니다. 요즘 '막장 드라마'라는 말이 유행이던데 딱 그런 작품에 걸려든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1930년생이시더군요. 그야말로 살아있는 영화계의 전설께서 자기 나이 만큼이나 오래된 이야기를 필름 안에 담아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엘에이가 <체인질링>입니다. 솔직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제작자 겸 감독으로서의 작품 성향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실화의 힘은 역시나 강했고 <체인질링>은 그나마 지루할 틈도 주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