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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씨네큐브

박찬욱 감독, 김영진 평론가와 함께 한 <광란의 사랑> 씨네토크


1월 29일(목)부터 2월 4일(수)까지 씨네큐브 광화문에서는 "데이빗 린치 감독전: 아름다운 악몽을 꾸다" 가 열리고 있다. 영화제 상영작으로는 그의 데뷔작이자 컬트 영화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이레이저 헤드>, 데이빗 린치 영화 중에서 (<스트레이트 스토리>를 제외하고는) 가장 대중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광란의 사랑>, 그리고 미궁과 같은 데이빗 린치 스타일이 절정이 달했던 <멀홀랜드 드라이브>, 마지막으로 그가 또다시 새로운 디지털 미학을 개척한 듯한 혼돈의 미스테리 <인랜드 엠파이어> 등이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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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서도 15년 만에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광란의 사랑>은 29일 특별한 게스트들의 방문과 함께 상영되었다. 평소 데이빗 린치 감독의 팬으로 알려져 있는 박찬욱 감독과 김영진 평론가의 대담 형식으로 "데이빗 린치의 영화 세계"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후, <광란의 사랑>을 함께 감상하는 특별 이벤트가 개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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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박찬욱 감독과 김영진 평론가는 데이빗 린치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관객들에게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박찬욱 감독은 1990년에 <광란의 사랑>에 수여되었던 칸느 황금종려상은 <광란의 사랑> 한 작품에 대한 수상이라기보다는 그 때까지 만들어졌던 데이빗 린치의 작품들 전체를 고려하여 수상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하면서 그만큼 그의 전작들이 독특하고 훌륭했음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광란의 사랑>이 개봉되었을 당시 우리나라에는 <이레이저 헤드>나 <블루 벨벳>이 아직 개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도 하였다. 미국 대중 문화에 대한 이해, 즉 <오즈의 마법사>라든가 "도로시 컴플렉스" 등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영화를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조언도 곁들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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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평론가는 데이빗 린치의 작품 세계가 심야 극장 문화에 기반을 가지고 시작되었으며 그것이 컬트 무비팬들의 열광으로 이어졌다고 언급했다. 그리하여 그의 일관된 작품 성향은 TV, 그리고 아날로그 영화 필름, 디지털 필름, 인터넷 상영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매체의 끊임없는 변화를 겪으면서 지금까지 계속해서 창의적으로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특히나 <인랜드 엠파이어>에서 볼 수 있는 캠코더 촬영은 포커스의 정확도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개인적인 창작에 몰두한 그의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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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데이빗 린치를 호텔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감격스런 경험과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을 맡았을 때, 까뜨린느 드뉘브와 함께 심사위원단 전체가 <인랜드 엠파이어>를 보러가서 흥분했던 일들 등등 개인적인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흥미로운 씨네토크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또한 그 유명한 데이빗 린치가 헐리웃에서는 은둔하여 지내는 외로운 영화인이며, 오히려 최근에는 유럽에서 지원을 받아 작품 활동을 하는 편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또한 화가이기도 한 린치는 최근에 파리의 까르띠에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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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제의 기획의 발단이 되었던 그책  출판사의 <데이빗 린치의 빨간 방>에 대한 책 이야기도 함께 나누었는데, 박찬욱 감독은 린치가 어린 시절에 친구 아버지가 화가라는 것을 알고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고, "한 시간 동안 멋진 그림을 그리려면 적어도 네 시간 동안 방해받지 않아야 해."라는 린치 친구의 아버지 말을 인용하면서, 창작을 하기 전에 예술가에 필요한 준비 과정에 대한 이야기에 많은 공감이 갔다고 하였다. 그리고 김영진 평론가의 경우에는 책 안에 소개된 다른 감독들과 얽힌 에피소드 - 스탠리 큐브릭이나 페데리코 펠리니 - 들이 인상깊었다고 했다.

나이를 먹을 수록 상업주의와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아방가르드한 고유의
작품 세계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데이빗 린치.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영화를 만드는 예술가이자, 영화라는 매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창의적인 예술가인 데이빗 린치에 대한 존경을 표하면서 씨네토크는 마무리되었다.

씨네토크 직후에는 정말로 오래된 필름 느낌이 물씬 나는  - 자막 글씨체도 낯설고, 화면에서는 종종 비가 내리는 스크래치가 보이는 - <광란의 사랑>의 감격스러운 상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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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출간된 데이빗 린치의 에세이 <데이빗 린치의 빨간 방>은 "컬트의 제왕이 들려주는 창조와 직관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지만, 생뚱맞게도 "명상"에 대한 린치의 적극 추천의 글이 에세이 곳곳에서 튀어나오곤 한다. "진정한 행복은 자기 내부에 있다."라는 린치의 충고는 그의 영화와는 왠지 안 어울리지만, 글에 담겨있는 그의 흥미로운 창작 에피소드들이나 진지한 예술 철학 등은 곱씹어 볼 만한 부분이 의외로 많이 있다. 영화를 이해하는 것은 지적인 능력보다는 직관적인 능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나, 남들은 신경쓰지 말고 "그냥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어라."라는 명쾌한 충고, "나는 사람들이 어둠에서 걸어나오는 장면을 좋아한다."라는 그의 진솔한 고백, DVD 코멘터리에 대한 그의 의견, 매체의 대한 그의 진보성 등을 엿볼 수 있는 등등 예술을 창작하려는 사람으로서 한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데이빗 린치의 작품들을 돌아보자면, TV 시리즈 <트윈 픽스>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영화 <블루 벨벳>의 몽환적인 분위기에도 꽤나 매료되었었다. 하지만 기괴하면서도 폭력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 초기 작품들보다는 <멀홀랜드 드라이브>부터 <인랜드 엠파이어>까지의 심리적인 혼돈의 궁극을 보여주는 그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더욱 좋아하는 편이다. 우리를 빨간 색 커튼 너머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해 주는 그의 영화는 언제까지나 나의 흥미를 자극할 것이다. 더불어 박찬욱 감독의 신작인 <박쥐>의 개봉도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