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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 Suppositions on a Film Concerning Dylan,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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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고 있는 밥 딜런은 '뮤지션들의 뮤지션'이랄까요. 일반 대중들은 그리 좋은 줄을 잘 모르는데 다른 뮤지션들이나 예술가들에 의해 추앙받는 그런 음악을 하는 뮤지션 말씀입니다. 밥 딜런이 저와 동시대의 음악가가 아니기 때문에 더 그런 인상을 갖는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과거형으로만 접할 수 밖에 없었던 60 ~ 70년대의 대중 음악가들 가운데에서도 밥 딜런은 음악의 창고 가장 깊숙한 곳에 틀어박힌 비밀의 박스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가끔씩 접하게 되는 그의 노래들은 '이렇게 노래를 못불러도 가수가 될 수 있다'는 표본이었다고 할까요. 말랑말랑한 멜로디와 가창력의 80년대 팝 음악에 익숙했던 귀에는 밥 딜런의 음악이란 너무 단조로운 멜로디에 노래도 못부르는 가수가 이름만 굉장히 유명했던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더군다나 포크 뮤직이란 것이 원래 가사를 못알아듣고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들어도 듣는 게 아니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마크 노플러가 밥 딜런 덕분에 자신도 노래를 직접 부를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했으니 저 혼자만 그렇게 느꼈던 건 아닌 듯 합니다. 국내 라디오 방송에서도 밥 딜런의 노래는 그리 자주 들을 수 있는 편은 아니었죠. 다들 아는 이름이긴 하지만 그 실체를 접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마치 고대어로 씌어진 신화의 원전 같은 인물이 밥 딜런이 아닌가 싶습니다.

평소에 즐겨 듣던 뮤지션의 전기 영화라면 모를까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에 관한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원전을 접한 사람은 극히 드물고 그나마 번역본을 읽은 몇몇이 담론을 주도하는 화석 같은 대상이 밥 딜런이니까요. 밥 딜런에 비하면 커트 코베인은 전기 영화를 관람하는 입장에서 훨씬 편한 소재였습니다. 하지만 거스 반 산트는 <라스트 데이즈>(2005)를 너무 난해하게 만들어 버렸죠. <라스트 데이즈>와 같은 접근에 비하면 <아임 낫 데어>는 훨씬 수월한 편이라고 생각됩니다. 알려진 대로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이라는 인물을 대표하는 7개의 이미지를 각기 다른 배우들이 연기한 작품입니다. 어떤 인물은 다른 실존 인물을 데려와 밥 딜런의 한 측면으로 묘사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인물은 완전히 새롭게 창조해낸 경우이기도 합니다. 러닝타임을 일관하는 단일한 내러티브 없이 그야말로 편집의 예술을 펼쳐보이는 <아임 낫 데어>의 최종적인 상영 버전이 만들기까지 수많은 장면들이 촬영되고 삭제되고, 때로는 그 순서가 뒤바뀌기도 했을테지요. 그런 과정을 통해 <아임 낫 데어>는 신화 속에 묻혀 잊혀져있던 밥 딜런의 동시대성을 형상화해내는 동시에 그것만으로는 밥 딜런을, 아니 한 인간의 삶을 규정해버릴 수가 없다는 중요한 전제 사항을 스스로 지켜내고 있습니다. <아임 낫 데어>를 봤다고 해서 밥 딜런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밥 딜런을 통해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바는 충분히 전달받을 수 있겠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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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던 소년(마커스 칼 프랭클린)은 자기가 직접 보고 경험하는 일들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기로 하고 일약 저항 음악의 아이콘(크리스챤 베일)으로서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유명인이 됨에 따라 타인들에 의한 자기 규정에 염증을 느낀 그는 시상식에서 술주정을 하며 시대와의 불화를 경험하기도 하고 목회자로 변신하여 복음성가를 부르기도 합니다. 한 여인의 남편이자 인기 연예인(히스 레저)으로서 사랑과 이별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아임 낫 데어>가 핵심으로 다루고 있는 측면은 기존의 음악 팬들로부터 야유를 받거나 음악 평론가와 갈등하는 모습(케이트 블란쳇)입니다. 자신의 이름과 음악을 버리고 은둔자(리차드 기어)로 살아갈 때에도 세상의 강요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마침내 소년이었을 때의 그 열차에 다시 올라 기타를 손에 쥐는 장면은 밥 딜런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경험치에 상관없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합니다. <아임 낫 데어>가 밥 딜런이라는 인물을 소재로 하면서도 결국 은둔과 구원, 그리고 자유에 관한 영화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엔딩 크리딧과 함께 밥 딜런의 곡들을 추가로 감상할 수 있는데 마지막 곡 Knockin' On Heaven's Door의 리메이크 버전(Anthony & the Johnsons)은 이제까지 들어본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경험일 수 밖에 없습니다.

케이트 블란쳇이 <아임 낫 데어>로 베니스 영화제와 골든글로브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죠. 히쓰 레저의 유작이기도 한 <아임 낫 데어>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배우는 단연 크리스챤 베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포크 싱어 잭 롤린스와 목회자로 돌아온 존(실제 밥 딜런은 기독교에 심취한 곡들을 발표했을 뿐 목회자로 전향한 일은 없다는군요)을 연기한 크리스챤 베일은 최근 블럭버스터 영화에 자주 출연하면서 완전히 뜬 배우로 인정받고 있지만 양적인 성장 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결코 소홀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확인시켜줍니다. 찬양 예배에서의 Pressing On(실제로는 John Doe가 불렀습니다) 연주 장면은 복잡한 인간적인 감정들이 뒤엉킨 가슴 뭉클함을 전해주더군요. 케이트 블란쳇의 여우주연상도 자격이 충분하고 다른 배우들도 훌륭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크리스챤 베일이야말로 남우주연상을 줘야할 정말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앨리스(줄리안 무어가 연기한 조안 바에즈) 등의 인터뷰가 섞이면서 가장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으로 다뤄진 에피소드라서 훨씬 사실적으로 느껴진 탓도 있을테고 무엇보다 유명인으로서의 명성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완전히 다른 생활을 통해 자기 구원을 찾고자 했던 간절한 심정이 잘 다뤄져서 그런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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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밥 딜런의 곡이 OST로 사용된 작품은 1965년부터 TV 시리즈를 비롯해 약 230 여 편에 달하고 있는데요 이 가운데 수록곡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2005년 다큐멘터리 <No Direction Home : Bob Dylan>이 눈에 띄더군요. 토드 헤인스의 상상에 토대를 제공해준 밥 딜런에 관한 '사실'들이 잘 정리된 작품일 것으로 기대됩니다. 200분이 넘는 대작인데 EBS 같은 채널에서 한번 방영해주면 정말 좋겠어요.

ps2. <아임 낫 데어>에 밥 딜런의 상징 인물들로 출연한 주연급 배우들의 옆에는 마찬가지로 주연급인 다른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서 밥 딜런의 주변 인물들을 연기하고 있는데요, 영화의 맥락상 밥 딜런의 최고 상대역은 런던의 음악 평론가 키넌 존스(브루스 그린우드)였다고 생각됩니다. 브루스 그린우드는 아톰 에고이안 감독의 작품에 단골로 출연하던 캐나다 출신 배우인데 <디데이 13>(2000)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 역을 맡아 주가를 한껏 올렸었죠. 오랜만에 보는 상영작에서 살떨리는 악역(?)을 연기하시는 모습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덕분에 "상처받기를 거부하겠다"는 케이트 블란쳇의 명대사가 아주 돋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