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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레저베이션 로드 (Reservation Road, 2007)



테리 조지 감독은 연출자이기 이전에 훌륭한 영화 제작자이고 작가입니다. 짐 쉐리단 감독,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의 <아버지의 이름으로>(1993)와 <더 복서>(1997)는 테리 조지 감독이 각본과 제작자로서 참여했던 대표작들이죠. 테리 조지 감독이 직접 연출한 첫 작품은 헬렌 미렌 주연의 <어느 어머니의 아들>(1996)이었고, 최근에 돈 치들 주연의 <호텔 르완다>(2004) 가 국내 개봉을 했었습니다. 사실 <호텔 르완다>를 통해서 본 연출자로서 테리 조지 감독의 역량은 그리 인상적인 편은 못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르완다 현지 로케이션에 따른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반면에 이번 <레저베이션 로드>는 테리 조지 감독의 연출 스타일과 역량을 좀 더 정확하게 확인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좀 더 일반적인 작업 환경에서 만들어진 영화이고 배우들 또한 그야말로 내노라 하는 훌륭한 연기파 배우들이었으니, 이 정도 여건에서조차 영화가 산만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때는 정말 연출자로서는 재능이 없으시니 시나리오와 제작에만 전념해주시는 편이 낫겠다는 말씀을 감히 드릴 수 밖에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레저베이션 로드>는 존 버냄 슈왈츠의 원작 소설을 테리 조지 감독이 공동 각색해서 만든 작품입니다. 어린 아이가 교통 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죽는 사건으로 시작되어 아이의 아버지(호아킨 피닉스)와 가해자(마크 러팔로)의 이야기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펼쳐지게 되지요. 문제는 이 동전의 양면들이 서로 맞부딛히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다소 작위적인 전개를 펼쳐보인다는 점입니다. 특히 죽은 아이의 아버지가 찾아간 변호사 사무실이 하필이면 가해자가 일하는 법률 사무소이고 결국 가해자가 피해자의 법적 소송을 맞게 되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그보다 더 기가 막히는 일이 있을 수도 있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현실성이 확 떨어지는 부분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는 필시 원작에서부터 시작된 허구성일텐데 이것을 영화로 만들어질 때에는 과감하게 바꿔버리거나 아니면 최대한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도록 연출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말 그대로 '소설 같은 이야기'를 너무 곧이 곧대로 영화의 내러티브로 가져온 탓에 어쩔 수 없이 작위적인 느낌이 들더라는 얘깁니다.

내러티브 상에서의 일부 아쉬운 점들을 제외한 전반적인 <레저베이션 로드>의 느낌은 그야말로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들어진 드라마의 전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감정의 결들이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통해 시종일관 잘 살아나고 있어서 특별한 플롯을 갖지 않고도 계속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특히 호아퀸 피닉스의 헌신적인 연기는 큰 박수를 받을 만한 수준입니다. 제니퍼 코넬리는 최근에 출연한 <지구가 멈추는 날>, 마크 러팔로는 <눈먼 자들의 도시>에 서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레저베이션 로드>에서의 연기가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쉽게 알 수가 있을 정도입니다. <레저베이션 로드>는 무엇보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일상적인 죽음 또는 살인의 형태이면서도 그것을 직접 겪게 되었을 때의 고통스러움을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연민의 시선을 굳건하게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TV 드라마가 아닌 영화이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 라는 질문에는 딱히 답할 말이 생각나진 않습니다만 기왕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 관객으로서 후회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