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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레볼루셔너리 로드] 현실에 파묻힌 우울한 현대인의 초상


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ary Road)
샘 멘데스 감독, 2008년

잔인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다

밤하늘이 무색할 정도로 눈부시게 빛나는 맨해튼, 잠을 잊은 뉴요커들이 모여든 파티에서 두 남녀가 만난다. 연기 공부를 하고 있는 여자와 부두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살아가는 남자. 무엇을 하고 있냐는 질문에 여자는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남자는 현실 속에서 갖고 있는 직업을 이야기한다. 둘의 아주 사소한 차이.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바로 이 차이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영화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대한 일차적인 관심은 아무래도 <타이타닉>의 커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11년 만에 다시 스크린에서 만났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타이타닉>처럼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사랑을 낭만적으로 그린 <타이타닉>과 달리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사랑의 낭만을 철저하게 배제한 채 최대한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는 영화다. 당연한 일이다. 샘 멘데스가 연출을 맡은 이상 <타이타닉> 같은 영화가 나올 리 없기 때문이다.

샘 멘데스는 언제나 냉소적이었다. 데뷔작 <아메리칸 뷰티>부터 그는 희망의 가능성은 한줌도 남겨놓지 않은 채 세상과 현실의 단면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조소했다. 미국 중산층 가족의 허상을 남김없이 까발린 <아메리칸 뷰티> 한 편만으로 순식간에 명성을 얻은 그는 금주령으로 갱들이 세상을 지배하던 1930년대 미국으로 넘어가 미국 사회의 폭력의 근원을 파헤친 <로드 투 퍼디션>을 발표한 뒤, 다시 현대로 돌아와 끝내 사람 한 명 죽이지 못하고 전쟁에서 돌아오는 해병대의 이야기 <자헤드>로 패권주의에 사로잡힌 미국을 조롱했다. 이를 통해 그는 현실을 건드리는 불편한 이야기들을 영화적으로 재창조해내는 재능을 한껏 펼쳐보였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도 샘 멘데스의 재능은 변함이 없다. 이번에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1950년대의 미국이다.


미국에게 1950년대는 풍요로 가득했던 시대였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자유 진영의 지도자로 전 세계에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기 시작한 미국은 경제에서도 그동안의 공황을 극복하고 성장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자본주의 문화가 완전히 자리 잡기 시작한 때였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급격한 변화가 다가오는 시기였다. 그러나 급속한 성장은 그만큼의 풍요로움을 선사함과 동시에 갑작스런 변화로 인한 심리적 불안도 함께 안겨주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첫 장면에서 감지되는 두 주인공 사이의 조용한 긴장은 곧 이 불안의 징후나 다름없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이 자리한 곳이다. 초원의 집이라는 표현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보기만 해도 행복이 느껴지는 그 집에서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은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현실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남들과 똑같은 양복을 입고 똑같은 중절모를 쓰고 출근하는 프랭크는 군중들 속에서 개성을 잃은 채 의욕 없이 일을 하고 있고, 배우를 꿈꾸던 에이프릴은 남편과 두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연기에 전념하지 못한 채 그나마 하게 된 연극에서도 악평만을 들으며 한때의 꿈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의욕을 되찾게 되는 것은 끔찍할 정도로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부터다. 언젠가 파리에 같이 가자는 프랭크의 말을 기억해낸 에이프릴은 프랭크에게 선뜻 파리로 떠나자는 제안을 하고, 처음에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라며 잠시 고민하던 프랭크도 그녀의 제안을 승낙한다. 그제야 두 사람의 얼굴에서는 빛이 돈다. 군중 속에 파묻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던 프랭크가 군중 속에서 남다르게 보이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가 않다. 공허하고 절망적인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다짐하는 순간, 현실은 그들을 옥죄어 오며 그들을 현실에 눌러앉게 하기 위한 갖은 노력을 다한다. 직장 동료들은 프랭크와 에이프릴의 계획을 비현실적이라며 비웃을 뿐이고, 이웃에 사는 친구 부부도 속으로는 그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안타까운 척 유감을 표한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에게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집을 소개시켜 준 부동사 중개인 헬렌(케시 베이츠) 역시 아쉬움을 가득 드러낸다. 그들에게 프랭크와 에이프릴, 그리고 둘이 살고 있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집은 자신들의 행복을 보여주는 상징과 다름없다. 그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들 스스로도 프랭크와 에이프릴처럼 자신들의 풍요로운 삶 이면에 감춰진 허무와 절망을 직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 뒤에 감춰진 잔인한 현실을 외면하고픈 욕망의 반영이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랭크에게는 지금보다 더 나은 조건의 승진 기회까지 제공되고, 에이프릴은 셋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면서 현실에서 벗어나려던 두 사람의 계획은 위기에 처하고 만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누가 뭐래도 헬렌의 아들 존(마이클 섀넌)일 것이다. 수학자 출신으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지식인이지만 정신 이상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한 마디로 사회에서 배제된 인물인 존은 유일하게 영화 속에서 진실을 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의 계획에 유일하게 공감을 나타내고, 또한 그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가장 냉철하게 그들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존은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이나 다름없다. 현실이 행복하지 않다면, 상식적인 삶이 허무와 절망으로 가득 차있다면 오히려 미친 삶이 더 행복할 수 있지 않냐는 질문을 영화는 존을 통해 던진다. 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행복이라는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다.

현실에 맞서 이상을 찾아가려던 프랭크와 에이프릴의 계획은 결국 물거품이 되고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있던 초원의 집도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프랭크와 에이프릴 부부를 칭찬하느라 여념이 없던 헬렌이 그동안의 태도를 벗어던지고 남편에게 하는 이야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다. 그 이중적인 태도, 그리고 그 속에 감춰진 허영이 곧 현대인이 추구하는 행복의 진실이라고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거대한 컴퓨터에 자리 잡은 진공관처럼 개성을 상실한 채 남들과 같은 적당한 꿈과 희망을 갖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초상임을 무덤덤하게 말한다. 잔인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그리고 샘 멘데스가 놀라운 이유다.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