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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평양> 아버지를 보다


<디어, 평양> 아버지를 보다


Japan; 2006; 107mm; Documentary; Color
Director: 앙영희
Cast: 감독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들

 
2005년에 암으로 갑자기 타계한 전인권 선생이 쓴 <남자의 탄생>이라는 책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남자'가 신체적 탄생을 넘어 정치적, 사회적으로 태어나는지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는 책으로 기억된다. 디테일까지 세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 책의 논리는 대략 '아버지'로부터 출발한다. 한국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전근대적이고 권위적인 사고의 근원이 '아버지'로 대변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유년시절의 경험을 녹여내면서 글의 논리를 풍부하게 채워나간다. 이 책의 가장 클라이막스는 결론에 등장한다. "네 안의 아버지를 살해하라" 도발적인 문장을 통해 저자는 과감히 자신 안의 내재된 '부성(父性)'을 제거하라고 말한다. 학교 교육을 통해 익힌 민주주의적 가치들과 알게 모르게 형성된 전근대적인 가치들의 충돌과 모순에 힘들어 하는 한국 남자들이 '아버지의 사고'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갓 군대를 제대하고 20대 초반 이 책을 읽고 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평소 가지고 있었지만 죄스러워 꺼내지 못했던 말을 거림낌 없이 글로 뱉어낸 작가의 문장에 적지 않게 놀랐었던 것 같다. 그만큼 아버지를 감히 평가한다는 것조차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해 끊임없이 불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옳지 못한 생각이라며 애써 외면해왔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아들'들이 이렇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점점 그 불만이 커지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다.

20대 중반을 넘기면서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가 아닌 어른이기에 아버지를 이전보다 동등한 위치에서 볼 수 있다고 믿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기준에 맞춰 아버지를 하나하나 평가하기 시작했고, 결국 난 스스로 아버지를 뛰어 넘는 신인류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 때는 "네 안의 아버지를 제거하라."는 말을 내가 평생을 안고 가야할 신념처럼 여겼던 것 같다. 문장을 과도하게 교조적으로 받아들이게 됐고, 아버지는 무조건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됐다. 불만이 없는 것처럼 꾸미는 것이 아닌 애초에 아버지 세대를 인정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들이 가진 사고와 행동, 그리고 고집과 완고함, 무표정, 권위 등 아버지들과 함께 연상되는 것들에 극도로 염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심하게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결국 그런 행동들이 오히려 나를 점점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애초에 무엇을 피해 어디로 도망을 가야 하는지도 정확히 몰랐다. 때문에 상처받는 건 나였고, 아버지와의 관계는 불편해졌다. 관계가 불편해질수록 나의 방향성은 더욱 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 힘들게 했던 건 아빠의 변한 모습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빠는 점점 나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 30년 가까이 봐왔던 권위적인 아빠의 모습이 아니었다. 난 그런 아빠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았다. "아빠들은 나이 들면 다 그래..." 다들 그런다는 친구들의 말도 '우리 아빠'이기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익숙하지 않았기에 난 더 도망치고 피했다. '이럴 거면 어렸을 때부터 살갑게 대해주지 이제와서 불편하게 왜 이러느냐.'는 말이 치솟았던 적도 있다. 이 때부터 난 아빠와 나의 관계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됐던 것 같다. "왜 나는 아빠와 친해질 수 없을까?" 하지만 문제를 직면한 순간 의외로 답을 찾는 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내가 항상 도망만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답을 천천히 찾아 갈 때 쯤, 그 답에 확신을 심어준 하나의 영화를 만났다. 융이 말한 동시성의 이론이란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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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DVD로 <디어, 평양>을 봤다. 개인적으로 관심 있게 공부하는 쪽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북한이나 총련과 관련된 작품들은 꼭 챙겨보는 편이다. <송환>, <우리학교>, <안녕, 사요나라>, <강을 건너는 사람들>부터 대니얼 고든의 다큐멘터리, BBC나 CNN 등 외국 방송들까지... 워낙에 이 쪽과 관련해서 공개된 자료도 희박하고, 자료를 구하기도 어려워 실제 현지를 촬영한 영상들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업 자료로도 많이 사용한다.) 어느 때는 책에서 찾기 힘든 정보를 얻기도 하고, 어느 때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화두를 던져주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답을 몰라 고민하던 문제들의 해답을 찾는 '짜릿한' 순간들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난 작품들을 '지적대상'으로서만 봤을 뿐 장르로서 영화의 한 창작물로 고려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머리는 뜨거웠어도, 가슴의 온도는 큰 변함이 없었다.

<디어, 평양>은 '조총련 간부의 삶'에 대한 호기심에서 찾아 봤지만, 오히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뜨거워졌던 영화였다. 부연 설명 필요 없이 <디어, 평양>은 한 마디로 '아버지와 딸의 용서와 화해'에 관한 이야기이다. 평생을 조총련 간부로 살아오며 북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던 아버지와 그의 자식으로 태어나 조총련의 울타리 속에서 성장해야 했던 딸(감독 자신). 영화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부녀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세 명의 아들을 북으로 보내고 딸 역시 그들과 같은 길을 걷길 바라는 아버지와 북한이 처한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고 다른 길을 가고 싶어했던 딸 사이의 '이념 차이'는 분명 많은 갈등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 문제는 딸의 국적 변경 문제로 등장한다. 북한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딸이 생활에 많은 불편을 겪으며 국적을 바꾸겠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이를 반대한다.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문제로 아버지와 관계가 많이 어색해져 한동안 떨어져 살았다고 한다.


그녀가 다시 아버지를 찾은 것은 카메라에 아버지를 담기 위해서였다. 다큐멘터리를 공부한 감독은 제일 먼저 아버지의 삶을 필름에 옮기고 싶어 했고, 그녀는 무작정 아버지 앞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이제는 텃밭에 물을 주거나, 자전거로 동네 한바퀴를 도는 일로 하루를 채우는 늙은 아버지지만 자신의 신념 만큼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당의 간부로서 충성을 다짐하고, 언제가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 세계에 우뚝 설 날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감독은 그런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통해 지금까지 한 적 없었던 대화를 시작한다. 아버지의 일과를 따라나서고,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표정을 읽는다. 렌즈를 통해 바라본 아버지는 이념과 신념, 정치색으로만 읽힐 수 없는 그저 평범한 노년의 남자였다. 양복 상의에 줄줄이 이어붙인 훈장과 사회주의 조국에 대한 신념만이 그를 온전히 설명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손주들의 재롱에 입꼬리가 올라가고, 딸이 주는 용돈에 흐뭇해하는 비범하지 않은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감독은 그런 아버지의 뒤를 쫓으며 천천히 아버지 역시 자신만의 삶을 가진 한 인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영화가 끝날 때쯤, 아버지는 그토록 반대하던 딸의 국적 변경을 허락한다. 아버지 역시 자신과 다른 딸만의 삶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인 것일까. "나는 죽어도 바꾸지 않지만 영희는 괜찮다."는 아버지의 말이 보고 있는 이의 가슴까지 묵직하게 만드는 이유다. "아버지 왜 이렇게 많이 변하셨어요?" 라고 묻는 딸의 질문에 아버지는 그냥 웃을 뿐 애써 대답을 피한다. 딸의 인생을 인정하기까지, 자신이 세운 가정의 법을 허무는 일이 그에게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지 아버지의 웃는 표정에서 깊은 고민의 흔적이 묻어 난다. "이제부터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의 말씀을 많이 듣고 싶었다. 내 생각도 말씀 드리고 싶었다."는 감독의 나레이션은 결국 아버지와 딸이 서로의 다른 삶을 그대로 받아들인 이후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들의 소통은 과거에 대한 용서이자, 갈등의 화해이고, 상처에 대한 치유였다. 그리고 우연처럼 아버지는 며칠 후 병원에 입원을 하고 긴 투병을 시작한다. 딸에 대한 마지막 선물인 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역사적 사실이나 애초에 내가 관심이 있었던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전 같으면 난 북한의 전력 수급 상태를 눈여겨 보고, 북송 사업 시기 북으로 간 재일동포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펜을 끄적여가며 기록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시선을 집중시켰던 것은 아버지와 딸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가진 서로에 대한 태도는 내가 그토록 어렵게 돌아와 찾고 싶었던 답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디어, 평양>의 아버지를 보면서 우리 아빠를 많이 떠올렸던 것 같다. 아빠를 무서워했고, 아빠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빠가 걸어온 길에 대단함을 느꼈지만, 그 삶의 무게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아빠가 불편했고, 친해질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방향을 잃었던 건 나였다. 문제가 있었지만 계속 도망만 다녔다. 이제는 아빠에게 받은 상처만큼 내가 아빠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그 불편한 관계에 한계를 느꼈을 때, 난 그 때서야 문제를 정면으로 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도 가지게 됐다.

내가 찾은 답은 <디어, 평양>의 감독이 그랬듯 '아빠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자.' 는 것이었다. 아빠의 모든 것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둘의 관계는 언제나 평행선일 수밖에 없다. 받아들여야지만 대화가 가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 속 아버지와 딸이 소통에 성공해 결국 서로의 상처를 치유했듯이 말이다. 어찌 보면 아빠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변한 아빠 모습에 적응 못하고 피해다녔던 건 나였기 때문이다. <안녕, 평양>에서 감독은 예전과 다르게 아버지가 카메라를 통해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카메라를 들고 따라다니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 역시도 딸이 자신에게 다가와 말해주길 기다렸을 것이다. 이미 자식의 인생을 그대로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제 답은 알았다. 문제는 행동에 있다. 분명 아빠를 대할 때 불편함이 줄어든 건 확실하지만, 아직까지 말이나 표정에서 묻어나는 어색함은 어쩔 수 없다. 30년 가까운 습관을 한 번에 없앨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쪼록 내가 가진 답에 확신을 심어준 <디어, 평양> 속 아버지와 딸에게 고마운 마음 뿐이다. 그들의 화해와 치유가 내게 큰 힘이 됐다. 



또 하나. 내게 일어난 변화는 엄마의 영향이 크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엄마에게 있어 아빠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하면 옳은 표현일까? 내가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이건 아빠에게 비할 수 없다. 혼자 있을 엄마를 생각하면 아빠의 존재가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 난 아빠가 엄마를 대하는 태도가 싫었고, 그런 엄마가 늘 안쓰러웠다. 그래서 아빠에 대한 미운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얼마 전 끝난 KBS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엄마(나문희)에게 아빠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아들(현빈)의 모습이 나온다. 아들의 말을 들으면서 엄마는 그만하라며 아들에게 말한다. "아빠랑 같이 사는 사람은 엄만데, 니가 자꾸 아빠를 미워하면 어떻게. 엄마는 듣기 싫지." 난 이 장면을 브라운관에서 보며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엄마를 힘들게, 불안하게 했었는지 미쳐 알지 못했다. 아빠를 인정하자고 마음을 먹은 건 엄마의 입장에서 아빠를 볼 수 있게 된 영향이 크다. <디어, 평양>의 마지막, 감독은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확인시키려한다. 그건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 하는 어머니를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머니의 자식으로서 감독 자신을 위한 확인일 수도 있다.


이 리뷰를 몇 번이나 썼다 지웠는지 모른다. 다 써놓고 포스팅을 할지 말지를 두고도 상당히 고민했다. 영화 리뷰라기보다 자기고백서 같은 느낌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내 치부를, 인간으로서 나의 부족함을 모두 드러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올해 초 했던 다짐 때문에 용기가 생겼다. 그 동안 너무 꽁꽁 싸매고 있어서 덧났던 내 문제들을 이제는 풀어 놓을 필요를 느꼈다. 그것이 내게 있어 '치유의 과정'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