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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ary Road, 2009)



타이타닉의 커플이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동반 출연이라는 점이 눈길을 끄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포스터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초장부터 두 사람의 격렬한 대립을 보여준다. 파티에서 만난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한 눈에 반하게 되고 결혼에 이르게 되지만 초반부에서 보여지는 두 사람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은 모래성 같이 위태로운 상태이다. 배우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에이프릴은 자신의 마지막 경력이 될 연극무대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다. 막이 내리는 순간 울상이 된 그녀의 모습은 모든 것이 무너진듯한 느낌이 든다. 프랭크는 상심한 에이프릴을 위로하기 위해 애써 거짓말을 하며 그녀를 설득하지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에이프릴은 그의 위로를 위선으로 받아들인다. 결국 두 사람은 고속도로에서 내려 서로 숨기고 있었던 상대방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붓고 끝내 프랭크는 에이프릴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 한다. 격앙된 두 사람의 모습은 언제라도 산산조각날 것 같은 위태로운 부부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셈이다.

이후 영화는 레볼루셔너리 로드라는 주택가에 있는 하얀 집에 살고 있는 에이프릴과 프랭크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겉으로 평온해 보이지만 공허하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미국의 중산층의 삶의 실상을 보여준다. 기차를 타고 출근하는 프랭크는 사무기기를 파는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지만 그의 모습은 반복된 일상에 지쳐있는 모습이다. 프랭크는 그가 만든 기획안에 대해 닦달해대는 상사에 대한 피로감과 잘 알지도 못하는 계획안을 반복해서 수정해야 한다는 공허함으로 쪄들어 있다. 프랭크는 자신에게 관심있어 보이는 한 여인과 외도를 시도하면서 지루한 삶에 대해 일탈을 시도한다. 한편 에이프릴은 배우였던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이제 평범한 가정 주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평온하고 조용한 길가에서 쓰레기를 버리면서 그녀는 프랭크와 부부로서 살던 과거의 추억을 상기해 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해답을 찾던 그녀는 우연히 사진첩에서 파리를 배경으로 한 프랭크의 사진을 발견한다. 에이프릴은 사진을 바라보면서 가정을 먹여살리기 위해 억지로 출퇴근을 반복하는 남편 프랭크가 아닌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가득찼던 청년 프랭크를 회상한다.

외도를 한 후 집에 도착한 프랭크는 에이프릴에 대한 죄책감으로 머뭇거리지만 문을 연 순간, 그는 생각지도 못한 에이프릴의 모습을 발견한다. 지난 날 격앙된 모습으로 다투었던 에이프릴은 남편을 맞이하기 위해 다정한 아내가 되어 그에게 나타나 있던 것이었다. 에이프릴의 모습에 당황하며 불안해하던 프랭크는 그녀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는다. 그것은 다름아닌 집과 직장을 정리하고 파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에이프릴은 국제기구의 비서로 일하면 프랭크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자신이 일하는 동안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의 꿈을 되찾으라고 말한다. 프랭크는 파리로 새로운 삶을 살자는 에이프릴의 제안이 황당하고 현실성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제안을 듣고 나서 그 역시 에이프릴의 제안에 솔깃해한다. 비교적 중산층에 가까운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사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걸맞는 가정을 이루기 위해 억지로 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던 그들은 파리라는 목표가 생기자 삶의 희망과 기쁨을 얻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활과 비슷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일생을 보냈던 그들은 파리라는 이상향을 발견한 순간 모든 것이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프랭크는 이제 회사를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지루한 회사의 업무가 즐겁고 기쁘다. 에이프릴 역시 파리로 간다는 희망에 부풀게 되자 주부로서의 삶 마저 기쁘게 받아들인다. 한 때 치고받고 싸우며 갈등을 이루었던 두 연인은 이제 그들이 처음 만난 그 순간처럼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며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갈망한다. 에이프릴과 프랭크가 공허하고 희망없는 미국 중산층의 삶에서 벗어나 유럽에서 새로운 시작을 시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주변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기 시작한다. 휠러 부부의 집 근처에 사는 이웃인 셉과 그의 아내는 그들이 파리로 떠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다소 당황스러운 태도로 그들을 바라본다. 또한 휠러 부부에게 집을 소개한 헬렌도 여기에서 굳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데 왜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하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에이프릴과 프랭크를 둘러싼 인물들의 모습은 사실 휠러 부부와 다를 바 없이 공허한 삶을 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셉과 밀리를 들 수 있는데, 그는 프랭크처럼 가정을 이루고 여러 명을 자식을 키우는 부부이다. 하지만 에이프릴을 손님으로 맞이하기 전 그들의 모습은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삶의 피로감에 젖어 있다. 셉은 그의 아내의 모습에 불만이 있으면서도 억지로 그녀에게 예쁘다는 거짓말을 체면치레로 하며 그의 아내는 남편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옷을 갈아입는다. 또한 셉은 아이들에게 친근한 말을 건네지만 그들은 아버지를 무시한 체 TV를 본 체 열중할 뿐이다. 그는 집에서 나와 아래쪽에 있는 에이프릴의 집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 본다. 그 역시 한 가족을 양육하는 가장으로서의 임무와 역할에 지쳐 있는 것이다. 휠러 부부가 파리로 떠난다는 말을 들은 후 셉은 어떻게 아내가 일을 해서 남편을 부양할 수 있냐고 말하며 그들의 말이 터무니없다고 비웃자 밀리는 그의 말을 맞장구치며 동의하지만 동시에 눈물을 흘리는 복합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셉과 밀리는 휠러 부부의 삶에서 부러움을 느끼고 질투를 느끼지만 그들은 가정을 지키고 이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지키기 위해 애써 그 충동을 억누르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헬렌의 아들인 존이라는 사람이다. 헬렌의 아들이 정신병자인 이유로 아무도 그를 만나지 않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에이프릴은 자신의 집으로 존을 초대한다. 헬렌의 부모와 함께 온 존이란 남자는 행복해 보이는 프랭크와 에이프릴을 시니컬한 태도로 바라본다. 음식을 접대받으며 감사의 표시를 아끼지 않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존은 그들의 위선에 대해 냉소적인 말을 쏟아낸다. 그의 말은 예의바른 일반인들이 보기에 독설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거짓된 위선이 없는 진실된 감정이 담긴 말들이다. 마치 '리어 왕'의 광대처럼 그는 미친 것처럼 사람들에게 인식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솔직하고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셈이다. 파리로 갈 것이라는 휠러 부부의 말을 들은 존은 마치 그들을 심문하듯이 질문을 쏟아낸다. 숲에서 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존은 휠러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며 좀전까지의 냉소적인 태도를 버리고 그들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공허하고 희망없는 이 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는 휠러 부부의 말을 들은 존은 보통의 사람들은 공허하다는 말은 하지만 희망이 없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고 고백하면서 위선없는 부부의 모습을 바라본다. 휠러 부부도 존의 모습을 보며 그가 정신병자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그들의 의견을 이해해준 존을 칭찬하며 행복할 수 있다면 그처럼 미치는게 낫겠다고 고백한다.


ps. 포스터는 영화의 내용에 비해 너무 깔끔하고 멜로틱한 느낌이다. 사실 이 영화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의 포스터 같이 격앙된 인물들의 모습이 더 잘 어울릴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ps2. 토마스 뉴만의 배경음악이 매우 인상적인데,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하다가 점점 고조되는 음을 통해 불안감과 긴장감을 잘 살려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