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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다우트 (Doubt, 2008)



올해 본 영화들 가운데 내용면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기대했던 수준 그 이상인데 특히 메릴 스트립은 말 그대로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다. 이런 류의 영화들이 흔히 그렇듯이 서로 다른 입장을 대변하는 두 인물, 플린 신부(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와 알로이시스 수녀(메릴 스트립)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는 장면을 최종 목표 지점으로 삼아 영화는 몇 단계에 걸쳐 솟구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게 된다. 그러고 보니 기승전결식 구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시범을 보여주는 듯한 아주 잘 정돈된 내러티브다. 제임스 수녀 역의 에이미 아담스는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에 출연했던 것 외에는 기억에 남는 작품이 없었는데 이번에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주목할 만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는 밀러 부인(도널드의 어머니) 역의 비올라 데이비스다. 어디에선가 "메릴 스트립에게서 10분을 빼앗았다"는 평을 들었다던데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다우트>의 원작 희곡은 아마도 위에 언급한 4명 정도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극장용 드라마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영화 <다우트>는 60년대 뉴욕의 어느 카톨릭 학교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도 주요 인물들 외에 많은 학생들과 신부, 수녀, 그리고 천주교 신도들이 등장한다. 그러면서 작품의 핵심 주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거나, 때로는 단순히 시대 분위기만을 묘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은 에피소드들을 추가한 것 같다. 영화 <다우트>의 초중반은 뭔가 어수선하고 끊임없이 불안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 이는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얼핏 연출이 미숙해서 결과적으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직접 각색과 연출까지 맡은 원작자 존 패트릭 샤인리의 의도된 연출이었다고 한다면 <다우트>는 이런 부분들마저 결국 훌륭했다고 해줘야 할 작품이 아닌가 싶다.

<다우트>는 종교적인 관점에서의 의심과 그 반대말인 확신에 관한 영화, 또는 옮고 그름에 관한 영화에서 그치지 않고 최종적으로 어느 한쪽 편에도 마음 편히 서기 힘든 가치 판단의 딜레마에 관한 영화에 도달한다. 이 작품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제임스 수녀(에이미 아담스)의 대사에 나오는 '인간의 굴레'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작품 속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철저한 대립항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인간 존재의 두 얼굴이라는 측면에서 결국 하나가 된다. 여기에 제임스 수녀까지 더해지면 <다우트>의 인물 구도는 <플래툰>(1986)의 반즈(톰 베린저)와 엘리어스(윌렘 데포), 그리고 크리스(찰리 쉰)의 트라이앵글을 그대로 닮게 된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구약(알로이시스 수녀)과 신약(플린 신부)의 대결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괴롭힘을 당하던 흑인 소년을 일으켜 안아주던 신부의 모습은 예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우트>는 같은 소재를 가지고 진실 공방과 함께 거대 권력(플린 신부)에 도전하는 용기(알로이시스 & 제임스 수녀)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했었더라도 재미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어느 한쪽편을 택하라고 한다면 사실 나는 플린 신부의 편이다. 그러나 쉽게 그럴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작품이 바로 <다우트>다. 그래서 지금 이대로의 <다우트>가 너무 좋다. 가장 인간적인 시선으로 본 인간의 굴레에 관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