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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레이첼, 결혼하다] 또 다른 가족의 탄생


레이첼, 결혼하다 (Rachel Getting Married)
조나단 드미 감독, 2008년

홈비디오처럼 자연스러운 연출

제목만 보면 말랑말랑한 로맨스영화가 연상된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 <나의 그리스식 웨딩> 등 제목에 결혼이 들어간 영화치고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영화란 드물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린세스 다이어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주로 트렌디한 영화들을 통해 유명해진 앤 해서웨이가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은 이러한 추측에 심증을 더한다. 그러나 <레이첼, 결혼하다>는 결혼을 통해 드러나는 가족의 문제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낸, 말랑말랑함과는 거리가 먼 영화다.

영화는 마약 중독으로 재활시설에 있는 킴(앤 해서웨이)이 언니 레이첼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9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시작된다. 가족들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킴을 반갑게 맞이하지만, 킴은 자신으로 인해 그들 사이에서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음을 눈치 챈다. 한 순간의 평온함은 킴과 가족들의 충돌과 갈등으로 이내 깨져버린다. 영화는 킴과 그녀의 가족들이 결혼식을 준비하는 동안 겪게 되는 갈등 속에 드러나는 가슴 속 깊이 감춰둔, 이제는 과거의 일이 돼버렸지만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맺음의 연속이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서로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것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그것은 변함이 없다. 문제는 가족은 타인처럼 쉽게 관계를 맺거나 끊을 수 없는, 친밀함이란 이름으로 묶여 있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족들 사이에서 생겨난 상처의 깊이는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킴의 가족들이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가슴 속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용서를 구하는 것도, 용서를 받는 것도 쉽지 않다. 아물지 않은 상처는 그렇게 그들 가슴 속에 응어리진 채 그들의 삶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레이첼, 결혼하다>는 상처의 치유는 쉽지 않을지라도 상처를 감추는 것보다는 드러내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말한다. 상처를 숨긴 채 가식적인 행복을 추구할 바에는 그냥 솔직하게 상처 자체를 인정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레이첼의 결혼식이 한낱 겉치레가 아닌 진정한 축제로 묘사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서로가 깊은 감정의 골을 지니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들은 가족이기에 그렇게 서로를 껴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상처는 아물지 않고 언젠가 다시 킴의 가족들 앞에 나타나 그들을 괴롭힐 것이다. 또한 용서 역시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고 죄책감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가족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결국 모든 관계란 상처 속에서 더욱 견고해지는 것임을 <레이첼, 결혼하다>는 이야기하고 있다.


가족들 사이의 작은 감정 변화까지 포착해내려는 영화는 핸드헬드를 통해 인물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다. 또한 최대한 자연스러운 연출로 사실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는 마치 홈비디오 같은 느낌이 주고 있다. 인물들이 중심이 되는 영화인만큼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배우들의 연기다. 특히 킴 역을 맡은 앤 해서웨이는 가족들 앞에서 “수녀가 된다고 해도 뭐가 달라질까요? 행복할 자격조차 없는 거겠죠?”라며 눈물 흘리는 순간 짙은 호소력을 선사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양들의 침묵> <필라델피아> 이후 이렇다 할 행보를 보이지 못한 조나단 드미 감독은 이전과 전혀 다른 스타일로 완성한 <레이첼, 결혼하다>를 통해 완벽한 연출 솜씨로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을 부각시키는데 성공했다.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

-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축제 같은 결혼식이 아닐까. 겉치레는 집어 던지고 모두가 즐겁게 어울리는 그 순간의 흥분만으로도 오래 기억하고 싶은 영화.
- 영화 보고 나면 앤 해서웨이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한다. 이제부터 나는 그녀의 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