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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미치 컬린, <타이드랜드>

텍사스의 어느 황량한 벌판 위에 있는 '왓락스'라는 낡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젤리자 로즈라는 소녀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 부닥치게 된다. 한물 가버린 락 뮤지션인 그녀의 아버지는 집에 도착한 날부터 소파에 앉은 체 도통 일어나지 않으며, 주변에는 로즈에게 따뜻한 말을 건넬 상대조차 없다. 만약 나라면 이 암울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감이 서지 않는다.

소설의 주인공인 로즈는 자신에게 닥친 이러한 현실을 환상을 통해 극복하려 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남겨진 유일한 친구이자 장난감인 바비인형 목을 손가락에 낀 체 '클라시크'라는 가상의 존재와 이야기를 나눈다. 로즈가 낯선 집에서 클라시크와 함께 주변의 세계를 호기심있게 탐험하는 모습은 암울한 현실을 환상을 통해 잊으려하는 소녀의 안타까운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무덤덤하게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 로즈라는 소녀가 얼마나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자라왔는지 깨닫게 된다. 로즈의 부모들은 항상 약에 쩔어 있다. 그들은 아이가 자신들의 주사기를 준비하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는 침대에 누운 체 아이에게 마사지를 하도록 요구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폭력과 욕설을 서슴치 않는다. 그나마 그녀의 아버지만이 아이에 대한 애정을 동화같은 이야기를 통해 표현할 뿐이다. 소녀는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비참한 현실을 환상으로 치유한다. 아버지에게서 들은 엘리스의 모험, 그리고 죽은 체 미라가 되어버린 '보그맨'이란 존재 등 소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그저 환상으로 여기면서 그녀의 친구이자 말상대인 클라시크와 함께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유령같은 몰골을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한쪽만 검은 렌즈로 가린 기이한 용모를 가졌고 벌을 유난히 두려워하는 델을 만나면서 소녀는 처음으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지만 델은 소녀의 말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델은 자신의 집에 기웃거리는 로즈를 불쾌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소파에 앉아있는 그녀의 아버지를 발견하고 나서 호의적인 태도로 돌변한다. 델과 로즈의 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일 덕분에 로즈는 이제 크래커에 의존하던 굶주림을 해소하게 된다. 한편 델의 동생인 디킨즈란 아이가 등장하면서 로즈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친구를 만난다. 자신을 고래를 잡는 선장이라 소개하는 디킨즈는 머리에 큰 상처가 있는 점을 보더라도 그가 제정신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지만 로즈에게는 남자 아이가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디킨즈의 말처럼 자신이 걷는 길이 바다이며 철로를 지나가는 기차가 상어처럼 보일 뿐이다. 로즈는 디킨즈와 함께 델의 집을 드나들면서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그저 모험처럼 느낀다. 이제 로즈에게는 상어를 잡기 위해 잠수함을 타고 모험을 떠나는 선장인 디킨즈라는 남자친구가 있다. 어린 소녀인 로즈에게 인생은 더 이상 잔인하지 않은 모험과 행복으로 넘친 환상의 공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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