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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 기괴, 환상

에도가와 란포라는 이름은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이라는 명성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가 쓴 추리소설은 막상 접하기 쉽지 않다. 국내에서 나온 에도가와 란포의 책은 동서미스터리북스에서 나온 '음울한 짐승'과 '외딴섬 악마'를 제외하고 전무한 상태인데, 최근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을 모은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본격 추리'와 '기괴 환상'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세 권의 책이 출간되었는데 그 중 세번째로 출간된 '기괴 환상'을 읽어보게 되었다.

사실 단편이란 특성 상 22편에 달하는 단편들은 작품의 만족도가 천차만별이었으며 몇몇 작품들은 결론이 마무리되지 못한 단점이 있었지만 책에 수록된 단편들이 작품의 주제에 맞는 기괴하면서 음울한 환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흥미로운 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적인 특성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우선 몇몇 작품에선 유흥이나 오락 등의 다양한 쾌락을 즐기다 못해 기상천외한 쾌락을 찾아다니는 인간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쾌락을 얻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게 99명을 살해했다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붉은 방), 기상천외한 경험을 얻는다는 명목으로 생전부지의 여인과 가면무도회를 하는 남자 (복면 무도회), 새로운 경험을 얻기 위해 자신의 아내 잠자리에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남자 (1인 2역) 등 자신들이 느끼지 못한 새로운 쾌락을 찾아다니는 인물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작가는 이들이 겪는 독특한 경험을 통해 당황스러워 하는 인간들의 내면을 드러낸다. 예를 들면 '붉은 방'에서는 모임에 있는 사람들이 99명을 죽였다는 남자의 사연을 듣다가 뜻하지 않은 남자의 돌발적인 행동에 충격을 받게 되며, '1인 2역'의 주인공은 아내가 자신이 만든 가공의 남자에게 사랑에 빠진 사실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스스로 찾은 쾌락으로 인해 당혹감을 겪는 인물들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자신의 행위에 대해 갈등하는 인물들의 내면을 그린 작품들이 많다는 점도 흥미롭다. '고구마벌레'라는 작품에선 전쟁에서 불구가 되어 돌아온 남편을 보살피는 아내가 겪는 이중적인 심리를 효과적으로 서술한다. 장애인이 되어버린 남편을 버리지 않고 보살피는 여인의 선한 심성과 마치 벌레처럼 되어버린 남편의 몸을 괴롭히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악한 감정이 공존하는 아내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내면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세이의 등장'이란 작품에선 폐병에 걸린 남편을 외면한 체 바람을 피우며 다니던 오세이라는 여인을 그리고 있는데,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끔찍한 선택을 하면서도 자신이 그런 선택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워 한다. 단순히 악인의 행동을 3인칭에서 그리지 않고 1인칭의 관점에서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편 '기괴 환상'이라는 제목에 맞게 단편들이 기괴하면서도 음울한 환상을 표현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우선 인간의 신체에 대한 글이 많다는 점이 특징인데 '고구마벌레'나 '벌레'라는 작품이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불구가 된 인간의 기괴한 모습을 정상인의 관점에서 공포스러운 느낌으로 표현한 '고구마벌레'는 마치 벌레처럼 기괴한 신체를 가지게 된 남자를 바라보는 아내의 이중적인 내면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한편 신체에 대한 집요한 욕망을 드러낸 '벌레'라는 작품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자신의 사랑을 시체를 통해 영원히 소유하는 한 남자의 어긋난 사랑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 작품이다. 또한 '공기사나이'나 '쌍생아'란 작품에선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공기사나이'에선 친구의 악의에 의해 기억에 혼란을 겪는 인물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쌍생아'는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 쌍둥이형을 살해한 남자가 점점 스스로 몰락하게 되는 모습을 공포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이외에도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한 체 기묘한 풍경을 바라보는 인물의 모습을 그린 '백일몽'이나 '화성의 운하' 등의 작품이나 인간이 아닌 다른 대상에 대해 사랑에 빠져버린 남자들이 등장하는 '누름꽃과 여행하는 남자'나 '사람이 아닌 슬픔' 등의 작품은 '기괴 환상'이라는 주제에 잘 들어맞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