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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home

숀 코네리의 신문 (The Offence, 1973)


시드니 루멧의 '신문'은 한 형사가 심문실에서 벌인 폭력적인 행동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의 내면의 심리를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영화는 신문 도중 살인을 일으킨 당사자인 존슨 경사의 모습을 독특한 영상을 통해 보여준다. 하얀 빛으로 둘러싸인 영상과 슬로우 모션처럼 움직이는 인물들의 모습 그리고 심문실을 향해 줌인하는 카메라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 한 남자의 당혹스런 표정을 보여준다.

영화의 전반부는 심문실에서 일어난 사건의 경위를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연쇄 아동 성추행 사건으로 학교 주변을 탐문 수사하던 존슨은 한 소녀가 귀가 도중에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근처를 수색하기 시작한다. 가까스로 피해자인 소녀를 찾아 병원에 후송한 경찰은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끼는 상사의 명령으로 혐의가 있는 범죄자들을 모두 수사할 것을 의뢰한다. 경찰들이 혐의자들을 수사하는 동안, 한 남자가 밤 늦은 시간에 힘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손에 흙을 잔뜩 묻힌 더러운 몰골로 나타난 남자의 행동을 수상하게 본 경찰은 그를 잡은 뒤 정보를 얻기 위해 심문실에 가둬 놓는다. 다혈질적인 성격을 가진 존슨은 박스터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를 보고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한다. 심문실을 지키는 경찰을 보낸 후 홀로 심문을 맡은 존슨은 좀처럼 말을 열지 않는 박스터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오히려 상대방을 자극하듯 쓴웃음을 짓는 박스터를 본 존슨은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한 체 그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이후 영화는 초반부 인트로 장면에서 보여준 장면을 다시 보여주면서 존슨의 당혹스런 표정의 원인을 드러낸다.

경찰로부터 대기 명령을 받은 존슨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영화는 차를 운전하는 존슨의 모습 중간 마다 끔찍한 장면들을 삽입함으로써 존슨의 숨겨진 내면을 드러낸다. 잔혹한 범죄자들에 의해 끔찍한 모습이 된 피해자들의 모습, 경찰의 추적을 피하듯 거리를 달리다가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남자의 모습, 그리고 나무에 매달린 시체 등의 영상들을 통해 영화는 그가 자신의 내면 속에 사건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못한 체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도착한 존슨은 다혈질적인 성격을 폭발하며 집 안의 물건을 부순다. 잠이 들었던 아내가 나타나자 존슨은 그 날 있었던 사건의 경위를 이야기한다. 존슨은 자신이 아직도 끔찍한 사건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음을 고백하면서 그녀가 자신을 도와줄 것 같은 희망을 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아내가 구토를 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분노한 존슨은 아내를 침대에 눕힌 체 그녀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점은 아내를 향한 존슨의 분노 속에서 간간히 성폭행을 당한 소녀의 모습이 오버랩된다는 점이다. 그만 하라고 요청하는 아내의 모습과 소녀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존슨은 자신의 아내를 마치 피해자처럼 바라보며 자신이 살해한 용의자에 대한 분노를 터트린다.

박스터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소환된 존슨은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온 카트라이트 총경과 대면하게 된다. 두 사람의 신문은 비교적 정중한 분위기에서 시작하지만 밀폐된 공간 안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점점 공격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박스터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존슨은 그에 대한 적의를 공연히 노출하기 시작한다. 박스터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는 존슨의 모습을 통해 그가 박스터를 살해한 것이 피의자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영화는 그의 심리가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심문 도중에 간간히 보여지는 존슨의 내면은 성폭행을 당한 여자아이에 대한 그의 감정이 단순히 분노가 아님을 암시한다. 환하게 웃는 여자 아이를 바라보는 존슨의 표정과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는 손의 모습은 피해자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마치 아이를 성적인 충족 대상으로 보는 가해자의 시선 같은 느낌을 준다.

심문이 끝난 후 존슨은 동료에게 이야기하듯이 독백하며 심문실에서 있었던 사건의 진실을 드러낸다. 심문실에서 박스터와 대면한 존슨이 분노를 이기지 못해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과정까지 전반부와 특이하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지만 초반부에서 등장했던 특유의 하얀 빛의 실루엣이 오버랩되면서 그 뒤에 있었던 숨겨진 사실을 드러낸다. 존슨에게 얻어맞은 박스터는 자신의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혀댔던 동급생을 기억해낸다. 그 후 그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한다. 자신을 학대하면서 괴롭혔던 동급생은 사실 박스터를 필요로 했다고 말이다. 즉 그 동급생은 박스터라는 괴롭힐 대상이 없으면 자신의 폭력적 기질을 폭발할 수 없는 아이러니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박스터는 겉으로 그에게 괴롭힘을 당했지만 속으론 그를 철저히 조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존슨 역시 박스터의 동급생처럼 비슷한 성질을 갖춘 인물이다. 그는 피해자에 대한 분노에 기인하여 용의자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만 사실 그는 자신의 내면 속에 남아있는 범죄의 기억들을 통해 폭력성과 성욕을 분출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존슨은 그것을 간신히 자신의 내면 속에 남김으로써 악의 경계선을 넘지 않았지만 그의 기질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박스터에 의해 존슨의 숨겨진 욕구가 드러나고 만 것이다. 존슨은 그의 손을 부여잡고 도와달라고 간절히 요청한다. 박스터를 폭력적으로 대하며 그를 압도했던 존슨은 이제 반대로 그에게 의지하듯이 절실히 해결책을 묻는다. 하지만 박스터는 그의 요청을 메몰차게 거절하면서 손을 뿌리친다. 결국 존슨은 자신의 폭력성을 참지 못한 체 박스터를 구타함으로써 그를 사망에 이르게 만든다. 심문실의 기억을 회상하던 존은 그를 구타한 것이 자신이 경험하고 싶었던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 환영한다 (Welcome home)고 말이야.'라고 말하는 존슨의 마지막 대사는 끝내 악에 빠져들고 만 인간의 충격적인 고백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