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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

A형 비키와 B형 크리스티나, AB형 부부를 바르셀로나에서 만나다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이 근거없는 속설이라는 건 알지만, 우연이든 아니든 가끔씩 잘 들어맞는 분석은 재미있게 즐기는 편이다. 그리고 영화 속 캐릭터에서는 어느 정도의 스테레오타이핑이 허용되는 법이니까...

변화보다는 안정을 원하고,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타입이며, 모범생스러운 약혼자를 둔 비키(레베카 홀). 지루하거나 진부한 것은 절대 참지 못하고, 열정적이며 충동적인 모험을 즐기는 크리스티나(스칼렛 요한슨). 이 두 미국인이 바르셀로나에 여행을 갔다가 정열과 자유로움으로 꿈틀대는 예술가 부부인 후안 안토니오(하비에르 바르뎀)와 마리아 엘레나(페넬로페 크루즈)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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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진지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키는 후안 안토니오가 자신의 타입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그를 경계하고 떨쳐내려 하지만 로맨틱한 그에게 점점 빠져들기 시작한다. 크리스티나는 자신이 갈구하던 자유분방함과 열정을 줄 것만 같은, 게다가 예술가적 기질이 넘치는 후안 안토니오와 사랑을 시작하지만, 전처 마리아 엘레나의 갑작스런 등장에 당황하게 된다. 자신과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남자에 끌리기 시작한 비키와 자신이 원하는 삶의 열정을 줄 것만 같은 남자에게 끌리는 크리스티나, 하지만 두 여자 모두 후안 안토니오와 마리아 엘레나의 과도한 로맨티시즘과 불같은 애증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데...

우디 알렌 특유의 수다스러움은, 위트 넘치는 나레이션과 배우들의 쉴새없는 대사로 빛을 발하고, 바르셀로나의 멋진 도시 디자인과 휴양지스러운 낭만이 넘치는 아름다운 풍경들, 그리고 스패니쉬 기타의 섬세하면서도 열정적인 감성이 영화에 매력적인 색을 입히고 있다. 캐릭터와 완전히 일치되어 버린 배우들의 연기는 최상이며, 일흔이 넘은 나이에 이렇게 재기발랄한 이야기를 만드는 우디 알렌은 역시나 대단한 감독이다. 가벼운 농담 속에 담긴 사랑과 결혼에 관한 날카로운 성찰은 노장의 지혜의 깊이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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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ex-wife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란 정말 골치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페넬로페 크루즈 정도의 귀여움을 극복할 수 있는 남자가 어디 있겠나 싶기도 하다. 바르셀로나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심하게 부추기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