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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모든 쾌락을 갈구한다<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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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박찬욱의 신작 <박쥐>가 공개되었다.
드디어 라는 표현이 이만큼 잘 어울리는 작품이 있을까 싶다.
엄청난 세간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언론시사 하루 전에 칸느 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 초청이라는, 더 이상 화제의 중심일 수 없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적어도 칸느 수상작의 결과가 발표되는 5월 말까지 <박쥐>는 화제의 중심에
설 것 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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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자잔. 하고 등장한 <박쥐>의 실체는 '허걱'과 '뜨악'의 연속이었다.
관객이나 평단 모두 분명 '호오'가 뚜렷이 갈릴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대중적인 재미나 장르적인 쾌감을 기대했다면 악플로 응대할 것이고
영화 외적으로 갈수록 비대해져가던 '박찬욱'이라는 브랜드를 기대했다면
이건 뭐 거의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트레일러에서 이미 느꼈지만 '박찬욱'의 인장이 또렷하다.
사라지진 않았지만 희미했던 악취미는 진동을 하고, 성적인 뉘앙스는
과도하다 싶을 만큼 전면에 부각된다. 하긴, 언제 박찬욱의 작품이
장르적 재미나 대중적 접점이 분명했던 적이 있기나 했던가.
괴상망측한 여자에게 친절하다고 하지를 않나,
싸이보그지만 괜찮다고 하질 않나,그는 늘, '많이' 독특한 감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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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른다. '뱀파이어 치정 멜로'라는 홍보사의
장르 규정처럼 핵심은 저 세 단어에 있다.
뱀파이어가 주인공이고 그 뱀파이어가 치정극에 휩싸이는데
뱀파이어인데다 하물며 '신부'인 그 남자의 치정극은
생애 처음 느껴보는 에로스로부터 태동한 설렘과 집착이 함께
하는 멜로 드라마인 것이다.

그러나 박찬욱이라는 감독, 멜로에만 집중할리는 없다. <장화 홍련>의 기괴함을
연상시키는 가족괴담에 '이브가 눈뜰 때'식의 여성 캐릭터 영화가 뒤섞이고
눈부시게 황홀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는 실험영화가 더해진다.
게다가 일순간 붕붕 날라다니는 와이어 액션 영화로 탈바꿈하더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기괴한 블랙 유머가 군데 군데서 빵빵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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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적 쾌감은 없다. 그러나 모든 쾌락을 갈구한다.

<박쥐>는 과잉의 영화다. 욕망을 서두르고 욕정을 에둘러 덮어두지 않는다.
류성희 미술감독과 정정훈 촬영 감독을 비롯 일급 스탭들이 갈고 닦은 실력을
전시하는 장면마다 '대표작'을 만들겠다는 욕심이 눈에 보인다.
따라잡기에 어렵지는 않으나 공감하기엔 쉽지 않은 이야기를 박진감 넘치게
끌고 가는 것은 '욕망'이라는 동력이다.

이건 열심히 만든 정도가 아니라 선수들이 작정하고 덤벼든 경연장이자
한 번 붙은 속도를 늦추지 않는 카레이싱 경기장과도 같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배우들의 연기를 비롯해서 도저히 잊기 힘든 충격적인
장면들과 섬세한 묘사력이 압도적이다. 어디 한 번 두고 보자라는 심정으로
쳐다 봐도 몇 장면에서는 이 영화에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차갑고 뜨거운 에너지가 객석을 휘감는데 아무나 글로벌한 감독이 되는 거
아니다. 다크한 포스가 다스베이더 수준이다.

극 중 주인공 상현의 말처럼 이 영화는 '모든 쾌락을 갈구한다.'
화력의 시발점이 육욕이었던 것처럼 이 영화의 육체는 또 다른 언어로 기능한다.
말 그대로 용감무쌍한 여배우(신이 내렸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밖에 없다. 하물며
진심으로 무섭다) 김옥빈이 연기한 '애완용 주부'태주와 '뱀파이어 신부'상현의
도킹은 난데없고 갑작스럽고 강렬하다. 눈을 마주치자 몸이 부딪치고 피고 솟구치자
일상이 요동한다. 카메라를 눈빛으로 걷어찰듯한 두 배우의 베드씬은 기괴한데다
<쌍화점>을 소프 오페라로 만들정도로 수위가 높다. 그들은 아주 잠깐 흔들리고
내내 요동친다. 욕망을 멈추고자 하는 행위마저도 파열음이 불꽃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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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역겹거나 가장 불쾌하거나 혹은 무시무시하게 야하게
느껴지는 성교 장면들은 새파란 조명 아래 새하얗게 질린 인간의 육체를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전시한다. 다른 건 몰라도 '신부'와 '주부'라는 대상의 욕망을 주체적으로
표현한 점은 단순한 남녀의 치정극을 훌쩍 넘어선다.
박찬욱의 영화가 끝임없이 질문하고 욕망하는 인간, 심연의 요동을 이 무시무시한
만남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전달한다.

중반부까지 <박쥐>는 피냄새를 맡은 짐승처럼 강렬하게 비행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욕망의 주체를 강렬하게 연기한 배우 김옥빈의 커다란
동공을 네비게이터 삼아 낮고 치열한 비행과 높고 가파른 비행을 멈추지 않는다.
아주 적절하게 이루어진 로케이션 장면들과 흥미로운 전개,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만듦새가 감탄스럽다.

재미있고 아쉬운 점은 이 영화가 '멜로'라는 장르의 트루기를 강화할 수록
맥이 빠진다는 점이다. 욕망의 발화점이 낮고 성급했던 데 비해 로맨스는
성기고 둔탁하다. 중반이후 동어반복, 중언부언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미 마지막
장면을 완벽히 생각했던 감독의 욕심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미 갈 때까지 가버린 치명적 관계를 사랑의 완성이라는 지나치게
광의적인 의미로 마무리 짓기엔 전개의 공감대가 약하고 힘에 부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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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아쉬움이 있지만 <박쥐>는 훌륭한 작품이다.
이토록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자신만만하게 새길 감독이 있다는 점이
자랑스럽고 거의 '발견'에 가까운 배우 김옥빈이라는 원석은 번쩍이게
눈부실 앞날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밀양>에서처럼 자신을 숨기고 캐릭터를 온전히 전시하는 송강호에
대한 신뢰는 물론, 스크린에 안착한 중견배우 김해숙과 오랜만에
제 몸에 맞는 옷을 꼭 맞춰 입은 신하균도 반갑기 그지 없다.

칸느 영화제 수상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너무 과도한 기대로
이 그로테스크하고 특별한 영화가 확대해석되거나 왜곡되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영화가 당연히 그러하지만 <박쥐>는 특별히 모두를
위한 해석을 열어놓은 영화다. 사랑하거나 싫어하거나 혐오하거나
열광하거나. 어쩌면 이런 관객의 분명한 호감과 비호감이 감독
박찬욱을 성장하게 만든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불타버려 재가 되버릴만큼 모든 것을 쏟아낸 이 영화는 두고 두고
할 말이 많은 영화일 것이라는 점 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