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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인도로 가는 길 (A Passage To India, 1984)



데이비드 린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인도로 가는 길'을 보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작품인 '인도에서 생긴 일 (Heat and Dust)'이 연상되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두 작품을 비교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임스 아이보리가 E.M. 포스터의 저서들을 영화화한 작품들이 많아서 그런지 '인도에서 생긴 일'도 처음엔 포스터의 작품이 원작인 줄 알고 있었다.) 특이한 건 두 작품이 유사한 부분이 많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인도 사회에 배타적인 영국인들 사이에 인도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가진 여인이 등장한다는 점과 한 영국 여인과 인도인의 기묘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두 영화의 공통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인도에서 생긴 일'이 금지된 로맨스 영화의 측면이 많다면, '인도로 가는 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영화이다. 전반부에서 두 영국여인과 한 인도인의 만남을 통해 인도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라보려는 영국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후반부는 기묘한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인도인과 영국인의 대립을 통해 영국의 인도 식민통치 시기의 갈등을 드러낸다.

영화의 초반부는 인도에서 근무하는 약혼자인 로니를 만나기 위해 인도로 여행을 떠나는 두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로니의 어머니인 무어 부인과 로니의 약혼녀인 아델라는 처음으로 접해보는 인도라는 곳을 인종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들의 문화를 신기한 태도로 받아들인다. 인도에 도착한 뒤 로니를 비롯한 터틀 부부 등의 영국인들을 만나 일상을 보내지만 두 여인은 인도 사람들과 거리를 둔 체 그들만의 문화 생활을 즐기는 영국인들의 태도를 불편하게 느낀다. 아델라와 무어 부인은 인도 안에서 영국 사회의 틀을 지키는 영국인들과 만나기 보다는 인도인들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인도의 참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한편 영화는 영국이 지배하는 인도 지역인 찬드라포어의 의사인 아지즈란 남자를 등장시킨다. 그의 첫 등장은 인도 식민정부의 관리인 터틀 부부의 자동차가 그의 자전거를 부딪치고도 아무런 사과없이 지나가는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뜻하지 않은 봉변을 당한 뒤 아지즈와 그의 친구가 영국인들의 태도를 비난하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인도인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은 체 무시하는 영국인들의 오만을 비판한다. 자전거 사고 이후 아지즈의 계속된 봉변은 현지인들을 깔보는 영국인들의 안하무인한 태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아지즈의 시련은 뜻하지 않은 만남을 갖게 된다. 우연히 사원에 들어온 무어 부인과 만나게 된 아지즈는 다른 영국인들과 달리 타문화에 대한 존경과 예의를 지키는 무어 부인의 태도에 감명을 받는다. 인도인들을 만남으로써 그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했던 무어 부인 역시 아지즈라는 선량한 남자에게 마음을 열어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인도인들을 만남으로써 인도의 참모습을 경험하고 싶어하던 무어 부인과 아델라는 인도의 대학의 학과장인 필딩이란 남자를 통해 인도인 교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인도인의 집을 보고 싶어하던 두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아지즈는 지나칠 정도로 그들의 호의에 응하기 위해 마라바 동굴 여행을 제안한다. 인도의 명소를 관광할 수 있겠다는 호기심이 생긴 두 여인은 기쁘게 호의를 받아들이지만, 누추한 자신의 집을 보여주기 싫어 충동적으로 여행을 제안한 아지즈는 그들을 어떻게 대접할지 고민하게 된다. 아지즈의 고민을 알고 있는 하딩은 그의 집을 방문해 그의 계획을 재고할 것을 충고하지만 순진한 아지즈는 계획을 관철한다. 영화는 하딩이 아지즈의 집을 찾아가는 모습을 통해 하딩의 성격을 부여하고 있는데, 아지즈의 집을 몸소 찾아가 허물없이 인도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모습을 통해 인도 문화와 사회에 대해 포용력을 갖춘 그의 태도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반면 자신의 집을 찾아온 하딩에게 지나칠 정도로 친절을 대하는 아지즈의 모습은 자신의 지배자인 영국인들에게 스스로 굽신거리는 나약한 태도를 보여준다. 비록 하딩이란 인물이 인도인들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줄 아는 포용력을 갖춘 사람이지만 누추한 집을 찾아왔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옛 아내의 사진을 보여주는 아지즈의 태도는 너무나 공손하고 소극적인 느낌이다. 흥미로운 건 바로 아지즈의 소극적인 모습인데, 영국인들에게 공손한 그의 태도가 후에 있을 사건을 통해 변화된다는 점이다.

마라바 동굴 여행을 떠나기 위해 새벽에 두 여인을 기차역에서 기다린 아지즈는 만반의 준비를 한 뒤 두 여인과 함께 기차 여행을 떠난다. 항상 종교적인 의식을 치르고 형식을 중시하는 인도인 교수인 고드볼리 때문에 기차역에 늦게 도착한 하딩을 두고 온 체 세 사람은 마라바 동굴을 향한 여정을 떠난다. 영화는 마라바 동굴로 가는 기차의 풍경을 통해 광활한 인도의 자연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산을 향해 올라가는 기찻길의 풍경과 그 아래로 펼쳐진 자연의 모습, 그리고 바위 언덕을 향해 올라가는 코끼리의 모습을 롱쇼트를 통해 담아내고 있다. 마라바 동굴에 도착한 일행은 소리를 내면 기묘한 환청이 들린다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 직접 체험을 해보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동굴의 소리의 정체이다. 사람의 메아리가 울려퍼지면서 들려오는 환청은 다름아닌 두 영국 여인에게 커다란 정서적인 충격을 안겨준다. 마치 숨기고 있던 내면의 목소리를 불러 일으키는 듯한 환청은 무어 부인을 괴롭혀댄다. 동굴을 빠져나와 간신히 숨을 돌린 무어 부인은 수행원들을 모두 떼어내고 아지즈와 아델라 따로 동굴을 탐험할 것을 제안한다. 그녀의 제안은 두 사람의 운명을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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