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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JIFF 2009] 낯설기에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아무래도 라브 디아즈 감독의 <멜랑콜리아>를 먼저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다. <멜랑콜리아>를 선택한 것은 480분이라는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러닝타임을 지닌 이 영화야말로 오직 전주에서만이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이 살인적인 영화에 도전하고 싶은 객기 아닌 객기 탓도 컸다. 하지만 역시 8시간이 넘는 영화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간에 20분씩의 쉬는 시간이 두 번이나 주어졌지만, 그럼에도 영화 보는 내내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가만히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라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일 정도였으니, 말 그래도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영화도 만만치가 않았다. 시간과 공간의 극적인 압축이 없이, 오로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는 8시간 동안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기를 원했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을 연달아 보면 9시간이 넘는다지만, 그런 영화와 <멜랑콜리아> 같은 영화는 애초에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멜랑콜리아>는 정말 긴 호흡으로 우리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2, 3시간만 참아내면 영화에 빠져들게 될 거라는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말처럼 <멜랑콜리아>는 오랜 시간을 참아내고 영화에 흠뻑 빠져들어야만 하는 놀라운 영화다. 이 시간을 견뎌내는 순간 영화는 쉽게 지울 수 없는 깊은 잔상을 보는 이의 가슴 속에 새겨 넣는다. 상업영화의 한계를 벗어나 예술영화로서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계속해서 긴 러닝타임의 영화 작업을 해오고 있다는 라브 디아즈 감독의 말 역시 우리로 하여금 영화와 예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지독할 정도로 길지만, 지독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영화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쉬린> 역시 <멜랑콜리아> 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사실 나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들을 잘 알지 못한다. 얼마 전 재개봉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제외하면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올리브 나무 사이로> <체리 향기> 등은 아직 보지 못했고, 그가 처음으로 선보인 디지털영화 <텐> 역시 만날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쉬린>을 통해 그의 작업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다만 이런 것도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그들 각자의 영화관>에 참여한 단편을 통해 비슷한 실험을 시도한 바 있다. <쉬린>은 그 단편의 확장판이다. 90분 동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코스로우와 쉬린’이라는 연극(혹은 영화)을 보고 있는(혹은 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여인들의 얼굴이다. 연극을 보며 감상에 젖어드는 배우들의 얼굴을 스크린을 통해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묘한 경험이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연극, 혹은 영화를 본다는 것, 이를 통해 감정을 느끼고 표현한다는 것에 대해서. <쉬린>은 감상에 대한 놀라운 성찰을 제시하는 영화다. (단, 지루함에 쏟아지는 졸음만 견뎌낸다면 말이다.)


브래들리 러스트 그레이 감독의 <익스플로딩 걸>은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올 전주에서 본 영화제 베스트로 꼽는 영화다. 이 영화는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뉴요커들을 주인공으로 다시 찍은 일본식 순정만화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여태껏 뉴욕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들을 보아왔지만, 이만큼 여린 감성을 지닌 영화는 없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남자친구와 헤어진 아이비와, 그런 아이비와 함께 방학을 보내게 된 친구 알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싹트는 사랑의 감정을 그린 <익스플로딩 걸>은 그 섬세한 연출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동양인은 섬세하고 서양인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도 편견에 불과한 것이다. 올해 전주에서 가장 가슴 설렜던 순간. (참고로 <익스플로딩 걸>을 연출한 브래들리 러스트 그레이 감독은 <방황의 날들>로 주목 받았고 <나무 없는 산>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김소영 감독의 남편. 김소영 감독은 이 영화에 제작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내 가슴을 설레게 만든 또 한 편의 영화는 바로 지아장커의 16분 남짓한 단편 <하상적 애정: 물 위의 사랑>이 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 위에서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미학적 성취를 선보였던 지아장커 감독의 이 단편은 놀랍게도 사랑에 대한 영화다. 그것도 지나간 사랑에 대한 영화. 은사의 생일을 맞아 네 남녀가 다시 모인다. 한때 연인 사이였던 그들은 물 위를 유유히 떠가는 배 위에서, 그리고 녹음이 짙게 늘어진 숲 속을 걸으며 이미 옛 것이 돼버린 감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예의 변함없는 지아장커 감독만의 카메라 워킹과 롱 테이크는 영화를 한층 아련한 정서로 채우고 있다. 16분밖에 안 되는 단편이지만 영화가 끝나는 순간의 여운만은 장편 못지않은 영화다.


홍기선 감독의 데뷔작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는 지금도 가끔씩 사람들이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하는 새우잡이 배에 대한 영화다. 조재현의 주연 데뷔작이기도 한 영화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났던 시절을 배경으로 새우잡이 배에 갇힌 밑바닥 인생들의 인생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쉬지 않고 등장하는 라디오 뉴스는 새우잡이 배 속에서 갈등을 겪게 되는 이들의 이야기와 맞물리며 한국 사회의 단면을 잡아낸다.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는 텍스트인 동시에, 시대와 인물들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영화다. 같이 상영된 단편 <바람이 분다>는 김영하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90년대 말 21세기 초의 음울한 청춘들의 일상을 장영규의 음악과 함께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그밖에도 홍상수, 가와세 나오미, 라브 디아즈 감독이 참여한 <디지털 삼인삼색 2009 - 어떤 방문>,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 회고전의 <문라이팅> <출발>, 경쟁부문에 초청된 <페라고스토 런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 <토니 타키타니>을 연출한 이치가와 준 감독의 유작이자 미완성 단편 <옷 한 벌 살까요?> 등을 봤는데, 일일이 멘트는 달지 않는다. 몇 편은 피곤함에 제대로 감상을 못 한 영화도 있었고, 몇 편은 딱히 가슴에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삼인삼색 2009 - 어떤 만남>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 <옷 한 벌 살까요?>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버려진 땅> <마사지사>에 대한 이야기들은 링크 참조.)

지난해에는 관객평론가로 참여해 한국영화를 대부분 만날 수 있었고, 덕분에 <낮술> <우린 액션배우다> <고양이가 있었다>와 같은 의외의 발견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개봉이 될 한국영화는 최대한 배제한다는 기준을 내세워 한국영화를 거의 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작년보다 더욱 실험적이고 독특한 영화들을 많이 만났다. 익숙해진 영화적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은 없었지만, 낯설기에 깊은 잔상을 남기는 작품들은 많았다. 덕분에 영화에 대한 생각도,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관습에서 벗어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전주국제영화제가 좋다. 아담한 전주 고사동 영화의 거리를 빼곡하게 채운 관객들처럼 규모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전주국제영화제는 언제나 소박함을 잃지 않는 영화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