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 home

미지의 코드 (Code Inconnu: Recit Incomplet De Divers Voyages, 2000)

'다양한 여행의 불완전한 이야기'라는 부제목을 가진 '미지의 코드'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단편적인 컷의 나열로 보여준다. 마치 5~6 개의 단편 영화들을 컷마다 잘라 붙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비극이나 옴니버스 형식을 고려한다면 '바벨'을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바벨'과는 달리 '미지의 코드'는 초반 장면을 제외하면 각 인물들 간의 관련성이 없다. 처음 거리 씬을 제외하면 각 인물들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주제와 내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해석하는 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달려 있는 셈이다.


이 영화의 인상적인 점은 처음 거리 씬인데, 화면이 다음 장면으로 전환되지 않은 체로 카메라가 수평적인 움직임으로 천천히 인물들의 걸음에 맞춰 움직임으로써 인물들의 연기가 마치 실제로 걸으면서 일상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리얼하다. 이 거리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재미있는 것은 한 프랑스 남자아이가 벌인 악행이 거리를 혼란으로 몰아넣는다는 점이다. 초반에 영화의 주인공인 안느를 만나면서 집을 나왔다고 말하는 장이라는 소년이 화가 나 있는 상태로 무심코 거리에서 돈을 구걸하는 여인에게 쓰레기를 던지고 길을 걷는데, 갑자기 뒤에서 한 흑인 청년이 나와 그를 잡더니 '네가 한 짓이 옳다고 생각하냐'면서 그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두 소년 간에 시비가 붙어 평온했던 거리는 순식간에 혼란스럽게 되고 그 과정에서 경찰이 달려와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흑인 청년은 자초지종을 설명하지만 정작 프랑스 경찰은 모욕을 받은 거리의 여인이 불체자라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잡아가고 같이 경찰서에 가자는 흑인청년이 말을 듣지 않자 그를 강제로 수갑을 채운다.

거리 씬 이후, 영화는 영화를 찍는 안느와 농장에서 벗어나려고 반항하는 장이라는 소년, 장이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보고 그에게 화를 낸 흑인 청년과 그의 가족, 그리고 우연히 거리 싸움에 휘말려 프랑스에서 쫓겨난 루마니아 여인의 모습 등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감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 확실히 해석하기는 어려웠다. 이야기를 내 멋대로 해석하면 2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 우선 루마니아 여인이 고국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프랑스로 가는 과정을 통해 불체자에 대한 반감이 심한 프랑스의 이중적인 모습을 폭로하려고 한 게 아닌가 싶다. 초반부와 유사한 카메라 워크를 보여주는 후반부 씬에서 프랑스로 돌아온 루마니아 여인이 구걸을 하기 위해 거리에 앉았다가 불량배들의 협박으로 거리에서 도망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롱테이크로 인물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담아내면서 프랑스의 불체자에 대한 반감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영화를 찍는 안느와 끔찍한 살육이 벌어지는 코소보 같은 전장 지역에서 사진을 찍는 조르주의 모습을 통해 현실에 무관심한 인물들에게 현실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감독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안느가 찍는 영화 씬들 중 인상적인 장면이 있는데 영화 촬영 중 리허설을 하는 동안 감독이 가스가 새고 있다고 말하자 마치 정말로 몰랐다는 듯이 놀라면서 숨이 막힌듯이 고통스러워 한다. 원하는게 뭐냐고 말하는 안느에게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너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줘. 네게 벌어지는 일에 반응해'라고 말이다. 이후 영화는 안느의 일상적인 생활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바깥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도 아무 반응이 없는 안느의 모습을 담아 현실에 관여하지 않고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것 같다.


감독은 후반부에 충격적인 장면을 삽입해 안느가 현실 속에서 고통받고 있을 동안 현실에 참여하지 않고 바라만 보는 인물들을 표현함으로써 모욕당하는 인간들에 대한 무관심이 얼마나 가혹한지를 반대의 입장에서 보여준다. 안느에게 시비를 거는 아랍인 불량배가 그녀를 희롱하면서 급기야 그녀에게 침을 뱉는데 아랍계 노인을 제외하고 그를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처럼 감독은 안느의 모습을 통해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그녀를 모욕함으로써 거꾸로 모욕당하는 사람의 심정을 느끼도록 표현한다. 그리고 사진기자인 조르주가 독백으로 말하는 대사를 통해 비록 사진을 찍는 행위가 세상을 바꿀수는 없어도 사회에 파급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면서 사진을 찍는 행위에 대해 냉소하는 인물들을 비판하고 있다. 결국 모욕당하는 안느를 보고도 외면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거시적으로 보면 불체자나 코소보 사태 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는 프랑스의 이중적인 모습을 표현하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ps. 이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이 영화의 유일한 배경음악이 나오는데 북을 리듬감 있게 쳐대는 북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인물의 움직임을 수평적인 롱테이크로 표현하는 영상과 어울려져 묘한 긴장감을 일으킨다. 인물들이 초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음악의 리듬에 맞춰 움직여저서 마치 뭔가가 터질 것만 같은 긴장감을 조성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