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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보이 A (Boy A, 2007)

존 크로울리 감독의 '보이 A'는 소년 시절 저지른 과거의 죄를 지우고 새로운 삶을 사려는 한 청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이름을 새롭게 지을 수 있다는 말에 감동하여 어쩔 줄 모르는 청년의 모습은 마치 자신의 삶을 새롭게 부여받은 기쁨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이키 운동화에 쓰여있는 'Escape'라는 단어처럼 청년도 과거의 삶을 탈출하고 잭 버러지(Jack Burridge)라는 한 남자의 삶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어한다. 차창으로 반사되는 거리의 풍경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청년의 모습은 마치 아이가 새로운 세상을 접하는 것처럼 순수하고 밝아 보인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둘러본 후 잭은 잠을 청하지만 과거의 끔찍한 기억을 드러내는 장면들을 통해 결코 잊기 힘든 과거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후 영화는 한 청년의 과거를 시간 순으로 전개하면서 드러내면서도 잭 버러지로 살아가는 청년의 모습과 대비해 청년의 어린 시절 끔찍한 죄를 저질렀던 에릭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한 사람의 두 가지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드러난 에릭의 모습은 사랑을 받지 못한 체 반에서 따돌림 당하는 소극적인 소년이다. 자신보다 큰 상급생 아이들에게 얻어 맞으며 다니며, 암으로 인해 고립된 방에서 홀로 지내는 어머니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 체 먼 거리에서 바라만 보는 소년의 모습은 힘겨워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필립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필립과 친해지면서 에릭은 조금이나마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를 찾게 되지만, 사회에 대한 분노를 억제하지 못한 체 폭력을 휘두르고 범죄를 저지르는 필립을 바라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의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그들이 살인이란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동기가 단순히 인간의 악한 천성이 아닌 무엇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지 못한 소년들의 방황에서 비롯되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한편 청년인 잭은 자신의 보호 감찰 담당인 테리의 도움으로 조금씩 사회에 적응해 간다. 처음으로 구한 직장의 직원들은 그를 동료로 받아들이며 함께 술을 마시며 친해지기 시작한다. 삶의 기쁨을 얻어가며 '잭'으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지만 과거의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클럽에서 우연히 벌어진 몸싸움으로 인해 자신의 동료가 불량배들로부터 얻어맞자 잭은 그를 돕기 위해 싸움에 뛰어든다. 하지만 폭력을 목격한 잭은 자신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에릭처럼 폭력을 분출한다. 과격할 정도로 폭력을 휘두르는 잭의 행동은 마치 과거의 기억처럼 데자뷰되는 느낌이 든다. 세면대에 비춰진 거울 속의 잭의 모습은 벗어나려고 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은 체 잠재되어 있는 과거의 에릭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고속도로를 지나던 잭은 언덕에 매달린 차를 발견한다. 칼로 안전벨트를 잘라 소녀를 구출한 잭과 그의 동료는 덕분에 회사 직원들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잭의 선의는 그의 일생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어 간다. 영웅을 취재하기 위해 찾아온 신문사의 기자는 잭과 그의 동료의 사진을 찍지만 과거의 기억이 드러나길 원하지 않았던 잭은 마치 죄인처럼 모자를 눌러쓴 체 카메라의 시야를 피하려고 한다. 잭의 삶은 겉보기엔 아무런 위험이 없이 평온하게 느껴지지만 그 속에선 언제가 깨질지 모르는 불안 요소가 잠재되어 있다. TV방송이나 신문 등을 통해 과거의 사건의 피의자에 대한 몽타주를 드러내며 과거의 범죄자가 사회에 등장했다고 지적하는 언론 매체들의 공격은 그의 삶을 흔들리게 한다. 게다가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지 못한 체 살아가는 잭 자신의 갈등은 그의 삶을 힘들게 만든다. 자신의 첫 사랑인 미쉘과 사랑을 나누면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욕구에 빠진다. 그녀에게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지만 과거의 살인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언론 매체들의 공격을 염려한 테리는 잭을 만류한다. 계단의 난간을 붙잡으며 자신의 삶이 힘들다고 고백하는 청년의 모습은 과거의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남자의 고뇌를 잘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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