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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윌로씨의 휴가 (Les Vacances de M. Hulot, 1953)


'윌로씨의 휴가'의 초반부는 바캉스를 보내기 위해 도시에서 해변이 있는 휴양지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차 역의 방송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들의 행렬의 모습이나 버스 안으로 몰려든 나머지 아이가 버스 운전대에 끼어 버린 장면 등은 웃음을 유발한다. 이후 영화는 빠른 속도로 도로를 지나가는 차 뒤로 힘겹게 도로를 이동하는 낡은 차를 등장시킨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낡은 차의 우스꽝스런 모습은 영화의 주인공인 윌로 씨라는 인물의 모습을 암시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해변이 있는 휴양지는 겉으로 보기엔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처럼 보이지만 이 곳도 현실과 다름없이 일정한 규칙으로 이루어진 장소이다. 예를 들어 해변에서 바캉스를 지내던 사람들은 별장의 웨이터가 종을 울리면 식사를 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간다. 식당에 앉아 식사를 마치고 난 후 투숙객들은 조용히 자신들만의 일과에 몰두한다. 일정한 자리에 배치된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일과에 열중하는 사람들과 라디오로 경제 및 시사 소식들을 듣는 사람들의 모습은 결국 휴양지에서도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 체 여가를 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별장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도 잊은 체 달려가는 남자의 모습은 이러한 예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인 윌로 씨가 등장하면서 별장 안의 조용한 분위기는 시끌벅적하면서도 혼란스럽게 변하기 시작한다. 윌로 씨가 별장 안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테이블 안의 사람들은 그가 열어논 대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곤란을 겪는다. 종이들이 날라가고 찻잔에 들어붓던 찻줄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등 일정하게 유지되던 공간이 엉망진창이 되자 그 곳의 사람들은 윌로 씨에 대한 매몰찬 시선을 보낸다. 윌로 씨는 마치 허락받지 못한 공간에 진입한 것처럼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며 테이블 안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누며 조심스럽게 별장 안으로 들어서지만, 별장 안의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아 보인다.

윌로 씨의 행동은 별장에서 조용한 일과를 보내는 사람들의 일상을 깨뜨린다. 프랑스의 경제와 시사 관련 소식을 들려주던 라디오 소리는 윌로 씨가 트는 턴테이블의 경쾌한 음악으로 대체되기도 하며, 윌로 씨가 밤마다 벌이는 엉뚱한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은 잠을 깨며 불을 켠다. 윌로 씨가 벌이는 엉뚱한 행동 중 가장 압권은 개들에게 쫓기던 그가 창고에 들어간 뒤 폭죽들이 터지는 장면인데, 사정없이 터져대는 폭죽들을 수습하려는 윌로 씨의 눈물겨운 노력이 굉장히 코믹하다. 폭죽을 바라보며 들뜬 기분에 빠진 아이들과 달리 어른들은 폭죽 소리에 깨어난 뒤에도 마치 하루가 시작된 것처럼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이처럼 별장 안의 사람들의 행동은 낮에 해변가에서 휴가를 보낸 뒤 밤이 되면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정형적인 형태이다. 그들은 윌로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며 그를 무시하면서 일상의 규칙을 준수한다. 윌로 씨와 그가 사모하는 한 여인 그리고 아이들 소수가 모여 가면 무도회를 즐기는 모습은 즐거움을 찾지 못한 체 반복된 일상에 갇힌 사람들과 대비되는 느낌이 든다.

휴가가 끝나는 마지막 날, 사람들이 윌로 씨를 무시한 체 단체로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윌로 씨는 수줍게 모랫가에 앉아 아이들과 소꿉 장난을 한다. 온갖 사고를 저지른 탓에 사람들 눈 밖에 난 윌로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어느 새 아이들과 어울려 장난을 치는 윌로의 행동이 천진난만하게 느껴진다. 모든 사람들이 떠나고 난 후 조용한 해변을 담은 장면을 엽서로 표현한 마지막 장면은 마치 짧은 휴가의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