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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처음 만난 사람들] 아무도 닦아주지 않는 그들의 눈물


처음 만난 사람들 (Hello, Stranger)
김동현 감독, 2007년

인간을 향한 너무나도 따스한 시선

“무슨 사람이 인간미가 저렇게 없어?” 탈북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향하던 진욱이 소리친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베트남에서 온 팅윤이 버스를 잘못 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진욱은 버스 운전사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운전사는 무심하게 그들을 휴게소에 놔둔 채 제 갈 길을 떠난 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 곁을 스쳐 지나가지만 누구 하나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끼리 길을 떠난다. 처음 만난 사람들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된다.

김동현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처음 만난 사람들>은 제목 그대로 처음 만난 낯선 이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이제 막 대한민국 사회에 발을 내딛은 탈북자 진욱, 10년째 한국에서 생활하며 택시운전사로 일하고 있는 탈북자 혜정, 헤어진 여자친구를 찾아 한국에 온 베트남인 팅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과 어울리지는 못하는 소수자라는 사실이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이 우연한 계기로 만나 관계를 맺어 가는 과정을 통해 영화는 삭막한 도시의 풍경과 함께 한국 사회의 단면을 담아낸다. 나아가 영화는 인간다움에 대한 짙은 호소력을 보이며 보는 이의 감정까지 움직인다.


<처음 만난 사람들>에는 독특한 촬영도, 자극적인 편집도 존재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그저 인물들을 넌지시 바라볼 뿐이다. 그런데도 영화는 신기하게 관객의 시선을 끈다.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인간을 향한 온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홀로 살아가는 이방인들의 이야기인 만큼 영화는 각자 속한 공간 속에서 이들이 겪는 감정의 사소한 변화까지도 잡아내기 위해 카메라를 그들의 얼굴에 드리운다. 스크린 가득 담긴 그들의 표정에서 관객들은 너무 쉽게 이들이 느끼는 불안과 초조를 읽어낼 수 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아파트와 온갖 상품들로 빽빽하게 나열된 대형마트의 모습 등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들도 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에는 낯설고 생경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처음 만난 사람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진욱, 혜정, 팅윤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진욱, 혜정, 팅윤은 비록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너무나도 쉽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한다. 혜정이 집으로 가는 길을 잊은 진욱을 돕는 것도, 진욱이 부산행 버스를 부안행 버스로 착각한 팅윤을 돕는 것도 그들 모두가 그들끼리 돕지 않으면 안 되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사람이 인간미가 저렇게 없냐는 진욱의 외침은 곧 영화가 우리에게 내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탈북자 혹은 이주노동자라는 낙인을 찍으며 이들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우리의 모습을 과연 인간답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지닌 짙은 호소력의 정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여자친구를 만나게 되지만 오히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확인해야 했던 팅윤은 진욱 앞에서 서러운 눈물을 흘린다. 진욱 역시 팅윤의 눈물에 끝내 자신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그동안 가슴 속에 쌓아둔 것들을 터뜨린다. 그들이 서럽게 눈물 흘릴 때, 관객들의 감정도 벅차오른다. 그들의 눈물을 그동안 외면해왔음을,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때야 비로소 <처음 만난 사람들>은 관객의 가슴을 파고들어온다. 이 놀라운 순간이야말로 <처음 만난 사람들>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택시를 운전하던 혜정은 문득 차에서 내려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별 하나 찾아보기 힘든 어두컴컴한 하늘이 혜정을 내려다보고 있다. 밤하늘을 수놓아야 할 별들을 더 이상 도시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처럼, 우리들 역시 이 거대한 도시 안에서 인간다움을 잃은 채 어둠 속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안에서 팅윤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게 된 진욱 역시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거기에는 도시와 달리 눈부신 별들이 한껏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서로가 함께 빛을 내며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절망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영화지만 마지막은 다행히도 희망적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혜정에게 전화를 건 진욱은 그제야 웃음을 짓는다. 혜정 역시 그런 진욱을 웃음으로 반겨준다. 그렇게 <처음 만난 사람들>은 작은 희망의 조짐을 관객들의 마음속에 던지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