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 theater

[시선1318] 다섯 가지 색깔, 청소년 인권 이야기


시선1318 (If You Were Me 4)
방은진, 전계수, 이현승, 윤성호, 김태용 감독, 2008년

청소년 문제로 시선을 돌리다

<시선1318>은 국가인권위원회가 2003년부터 제작해온 옴니버스영화 <시선>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다. 그동안 <시선> 시리즈는 <여섯 개의 시선>(2003) <다섯 개의 시선>(2005) <세 번째 시선>(2006) 등을 통해 이주노동자, 장애인, 어린이, 탈북자 등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에게 시선을 돌리게 하며 인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제목에서부터 감지되듯 <시선1318>은 지금까지의 <시선> 시리즈가 보편적인 인권 전체에 초점을 둔 것과 달리 13세부터 18세에 해당하는 청소년들의 인권을 본격적인 화두로 끄집어내고 있다.

이번 <시선1318>에는 방은진, 전계수, 이현승, 윤성호, 김태용 등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다섯 감독이 참여했다. 시험으로 인한 스트레스,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 나아가 미혼모 문제와 같은 예민한 주제까지 건드리는 각각의 단편은 다섯 감독의 손을 거쳐 나름의 색깔을 뽐내는 작품들로 완성됐다. 방은진 감독의 <진주는 공부중>과 이현승 감독의 <릴레이>가 각각 뮤지컬과 코미디를 빌려 청소년 문제를 무겁지 않고 친숙하게 다루는 한편, 드라마에 초점을 둔 전계수 감독의 <유.앤.미>와 김태용 감독의 <달리는 차은>이 영화의 진중함을 책임지고 있다. 그들 사이에서 윤성호 감독은 장편데뷔작 <은하해방전선>에서 보여줬던 독특한 감성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를 통해 재기발랄함을 한껏 뽐내고 있다.


옴니버스영화의 매력은 뷔페처럼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다양한 영화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여러 편의 영화에서 고른 맛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은 옴니버스영화의 한계이기도 하다. <시선1318>은 옴니버스영화의 이러한 매력과 한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다섯 편의 단편사이에서 고르지 못한 편차가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청소년 인권이라는 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권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영화적으로 풀어내고 있느냐에 따라 다섯 단편은 각기 다른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방은진 감독의 <진주는 공부중>과 이현승 감독의 <릴레이>는 각각 시험 스트레스와 미혼모 문제라는 첨예한 청소년 문제를 소재로 내세웠으나, 청소년 문제를 어른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피상적인 느낌으로 인해 큰 감흥을 남기지 못한다. 뮤지컬과 코미디라는 장르 역시 이들 영화가 내세운 청소년 문제와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전계수 감독이 데뷔작 <삼거리 극장>과 전혀 다른 스타일로 선보인 <유.앤.미>의 경우 주인공들의 감정을 스테디캠을 통해 섬세하게 잡아냄으로써 10대 시절 누구나 겪을 미래에 대한 불안과 답답함을 포착하는데 성공하지만,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상징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큰 울림을 남기지 못한다.

<시선1318>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는 바로 윤성호 감독과 김태용 감독의 작품이다. 윤성호 감독이 직접 인터뷰한 10대 학생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시나리오로 풀어낸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는 어른의 시각이 아닌 청소년의 시각에서 청소년 문제를 담아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대선을 앞두고 청소년들이 나누는 대화는 정해진 형식 없이 중구난방으로 나열되지만 그 속에서 정치에 대한, 그리고 미래와 꿈에 대한 10대들의 생각이 엿보인다. 비트박스와 함께 화면에 펼쳐지는 자막은 그들 스스로가 우주이고 선물이며 언어인 10대들의 자의식이 고스란히 투영된다. 윤성호 감독이 자신만의 기발하고 독특한 발상으로 <시선1318>에 자신의 존재감을 새긴다면, 김태용 감독은 <달리는 차은>을 통해 청소년 인권이라는 소재를 드라마로 풀어내는 놀라운 연출력으로 강한 흔적을 남긴다. <가족의 탄생>을 통해 이미 대안가족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던 김태용 감독은 이번에도 다문화 가정이라는 대안가족을 통해 청소년 인권에서 나아가 보편적인 인권까지 주제를 확장시킨다. 육상부가 없어지는 바람에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된 소녀 차은과 그녀를 끝까지 응원하는 필리핀 엄마 사이의 교감은 그 자체로도 감동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소외 받는 이들의 교감이라는 점에서 더 큰 마음의 울림을 낳는다.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했음에도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달리는 차은>은 단편임에도 장편에서 느낄 법한 드라마를 선사하는 수작이다. <시선1318>을 주목해야 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달리는 차은>에 있다.


다섯 단편이 서로 다른 색깔을 뽐내고 있는 <시선1318>이지만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청소년 인권 역시 어른들의 인권처럼 소중하다는 사실이다. 청소년영화를 쉽게 만나볼 수 없는 현 시점에서 <시선1318>의 등장은 더 없이 반갑다. 또한 영화를 통해 인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영화 제작 프로젝트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긍정적이다. 앞으로도 계속 될 프로젝트에 지지와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