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 theater

블러디 선데이 (Bloody Sunday, 2002)


1922년 북아일랜드가 영국의 구역으로 편입된 이후 카톨릭 계 주민들은 개신교 연합주의자들로 구성된 정부의 차별로 고통받고 있었다. 제한된 선거구 지역에 카톨릭계 주민들이 살 수 있는 공공주택을 할당함으로써 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카톨릭 계 의원의 수를 제한할 수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가난한 카톨릭계 주민들의 선거권을 줄이기 위해 세금을 내는 사람들에게만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개신교 연합주의자들은 정치, 경제적으로 카톨릭계 주민들을 지배할 수 있었다. 1960년 중반 이후 미국 공민권 운동(Civil Rights Movement)에 영감을 받은 북아일랜드 공민권 연합 (Northern Ireland Civil Rights Association, NICRA)은 비폭력적인 거리 행진을 통해 불공평한 참정권과 차별정책을 철폐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의 운동은 경찰의 탄압을 받으면서 과격적인 폭력 사태로 발전하게 된다. 게다가 급진주의적 북아일랜드 공화국군(Provisional Irish Republican Army, PIRA)와 얼스터 의용대(Ulster Volunteer Force) 간의 대립이 계속되면서 북아일랜드는 혼돈을 겪게 된다. 결국 북아일랜드 정부는 소요를 안정시키기 위해 영국 정부에 군대를 요청하게 되었고, 고발이나 재판없이 시위자들을 체포, 억류함으로써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다.

1972년 1월 30일, 시위자들을 강제로 억류하는 북아일랜드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NICRA은 비폭력적인 거리 행진을 진행하지만 영국 공수부대가 발포한 총탄으로 인해 14명이 숨지는 비극이 발생한다. 폴 그린그래스의 '블러디 선데이'는 그 날 있었던 비극의 과정을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정도로 객관적인 시선에서 양측의 인물들을 바라본다. 영화는 당시 북아일랜드 하원 의원이면서 NICRA의 거리 행진에 참여한 아이반 쿠퍼의 행적을 따라다니면서 그 날 있었던 사건의 비극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개신교도임에도 불구하고 차별적인 정책으로 고통받는 카톨릭 계 주민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한 아이반은 비폭력적인 행진을 통해 그들의 요구를 실행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시위를 비폭력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아이반은 영국군에 대한 분노로 돌을 던지는 아이들을 말리고 영국군에게 타격을 입힐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IRA에게 무력 대응을 자제하도록 부탁한다.

하지만 그 날의 시위는 아이반의 바람과 달리 복잡한 양상으로 발전한다. 바리케이트 너머로 대기해있던 영국 군인들을 목격한 일부 청년들은 시위대에서 이탈한 뒤 그들을 향해 돌을 던지며 상대방을 자극한다. 바리케이트 외부에서 시위자들을 검거하기 위해 대기해 있던 영국 공수부대원들이 현장에 투입되길 기다리는 동안 참모부의 지휘관들은 진압의 방법을 두고 갈등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현장에 있던 공수부대원들은 북아일랜드인에 대한 반감을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그들 중 한 명의 군인만이 시민의 안전을 염려해야 한다고 언급하지만 대부분의 군인들은 거리에 나선 북아일랜드인들을 적으로 바라볼 뿐이다.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으로 폭발 직전이던 두 진영의 갈등은 결국 어디선가 들려오는 총소리로 인해 폭력적인 학살로 변모되고 만다. 자신들을 향해 총을 쐈다고 오인한 영국 공수부대원들은 시위대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무차별적으로 사격을 개시하고 만 것이다.

총격의 과정이 있기 전까지 양측을 오가며 두 집단 간의 입장을 보여주던 영화는 핸드헬드 기법으로 학살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흔들리는 카메라 속에 담겨진 희생자들의 모습과 그들을 바라본 체 분노와 눈물을 삼키는 시위자들의 목소리는 그 날 있었던 비극을 잘 드러낸다. 아무런 경고 조치없이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한 체 등을 돌린 민간인들을 향해 총을 발사하는 군인들의 과잉대응도 충격적이지만 더욱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사건이 벌어진 뒤 자신들의 실수를 회피하려는 군인들의 모습이다. 총격 후 시위자들에게서 총기가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해 영국 공수부대의 진압이 완벽하게 잘못된 것임을 드러내지만, 사령관은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했음을 주장한다. 하지만 한 희생자의 몸 속에 폭탄과 총기들을 숨겨 사실을 조작하려는 영국군의 모습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체 책임을 회피하려는 비열한 행동이었음을 보여준다.

'블러디 선데이'의 비극은 비폭력적인 저항 운동이 무자비한 공권력에 의해 파괴된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공민권 운동처럼 평화적인 행진을 통해 이상을 실천하려던 사람들의 희망은 공수부대원들의 총격으로 인해 철저히 짓밟혀 버린다. 희생자들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희생자들의 부모와 친척들을 마주하는 아이반 쿠퍼의 무기력한 모습은 씁쓸함과 안타까움을 절실하게 전달한다. 피를 보게 된 카톨릭 계 북아일랜드 사람들이 IRA를 찾아가 총을 받아가는 모습은 이후 계속될 신-구교도 분쟁의 비극을 예고하는 의미심장한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위에 언급된 역사적 사실들은 위키피디아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일부 단체의 한글명과 역사적 사실 등은 오역의 가능성이 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