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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씨의 '100℃'는 1987년에 있었던 6월 민주 항쟁의 과정을 영호라는 한 대학생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다. 책의 초반부는 한 때 반공 소년이었던 영호가 대학교에 들어서면서 민주화 투쟁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투사가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웅변 대회에서 반공 연설을 하는 영호의 모습을 마치 초등학생이 그린 일기책처럼 표현했다는 점인데, 사회에 대한 영호의 인식이 초등학생의 일기처럼 미숙했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교정을 들어서던 영호가 진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과 그가 어린 시절 외쳤던 반공 연설이 겹쳐지는 장면은 왠지 모르게 씁쓸하게 느껴진다.

영호가 대학교 써클에 가입한 뒤 시위에 참가하는 장면 속엔 민주화 운동에 대한 사람들의 냉소적인 시선이 보여진다. 최루탄으로 뒤덮힌 거리에서 학생들을 나무라는 어른들 그리고 지겨워 죽겠다고 하소연하는 노점상 아주머니의 모습 등은 시위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선입견이 잘 드러난다. 독재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를 불편하게 느끼는 어른들의 모습은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 간 이해할 수 없는 장벽처럼 느껴진다. 그럼 기성 세대들이 학생들의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학생들의 시위가 곧 북한 세력의 사주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TV 등의 언론매체들은 학생들의 시위를 북한의 김일성의 명령으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믿도록 하며, 금강산 댐이 무너질 경우 서울이 전복될 수 있다고 위협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적화 통일의 공포감을 심어준다. 다양한 관점의 정보를 취할 수 없는 기성세대들로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느낄 때마다 50년대 시절에 겪었던 6.25 전쟁의 기억을 상기하며 움츠러들고 학생들의 시위가 무엇을 주장하든 간에 그것을 부정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로 현실과 유리된 어른들의 모습은 영호의 어머니인 옥분을 통해 드러낸다. 어린 시절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어머니를 잃은 옥분에게 빨갱이란 단어는 금기 그 자체였다. 영호가 경찰에게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옥분은 경찰서를 찾아가 아무 죄 없는 아들을 잡아간 경찰에게 항의하기는 커녕 마치 자신의 아들이 반역자가 된 것처럼 움츠러들면서 경찰에게 사과한다. 산사람에게 밥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려 처형당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굳혀진 옥분은 자신의 아들이 빨갱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마치 조선시대에 역적으로 몰려 가문이 풍비박산나는 것처럼 두려워한다. 하지만 옥분은 한 여성의 인도로 영호와 비슷한 이유로 부당한 처벌을 받는 사람들을 직접 목격하면서 각성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아무 죄없는 사람들이 권력의 횡포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그녀는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전두환 정부에 대해 대항한다.

하지만 좀처럼 무너질 것 같지 않은 독재체재의 견고함에 사람들은 점점 갈등하기 시작한다. 독재타도를 외치며 거리 투쟁을 하던 영호의 조직은 경찰의 탄압으로 점점 힘을 잃어간다. 게다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으로 소중한 선배를 잃은 영호는 자신의 투쟁으로 부당한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 두려워한다. 작가는 영호 옆에 수감된 한 남자의 대화를 통해 현실에 두려워하지 않고 조금만 끓어 오른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암시한다. 몇 도인지 알 수 없는 불안한 현실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끓어 오른다면 100도씨가 되어 물이 끓는 것처럼 좀처럼 흔들리지 않던 독재 체재도 시민들의 힘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임을 드러낸다. '한 사람의 열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이라고 외치는 동수의 말처럼 계층과 나이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이 함께 조금씩 끓어오른다면 물을 끓는 것을 막기 위해 엎어놓은 냄비를 걷어찰 수 있는 것이다.

6월 10일을 앞두고 다양한 계층, 종교, 연령, 성별을 가진 사람들은 교회에 모여 범국민적인 저항 운동을 준비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뒤집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국민들을 억누르던 전두환 정부에 맞서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모습은 부당한 현실에 맞서 싸우기 위해 하나씩 힘을 보탠 사람들의 열기가 느껴진다. 카운트다운을 앞두고 시계를 바로보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평소 옥분을 구박하고 감옥에 갖힌 영호를 외면하던 외골수였던 영호의 아버지가 택시기사와 함께 클렉션을 누르는 마지막 장면은 6월 민주 항쟁이 99도씨를 넘어 함께 끓어 오른 힘찬 물결이었음을 보여준다. 에필로그를 통해 작가는 범국민적인 저항 운동으로 얻어낸 것은 하얀 백지 한 장(투표권)밖에 없지만, 그 백지를 통해 소수 권력자의 의도가 아닌 우리 국민의 손으로 세상을 바꿀 수도 퇴보 시킬 수 있음을 드러낸다.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와 눈물과
빼앗긴 젊음과 생명들

우리는 그것의 댓가로
소중한 백지 한 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통받던 이는 고통이 사라지길 바랐고
누울 곳 없던 이는 보금자리를 바랐고
차별받던 이는 고른 대접을...

그렇게 각자의 꿈을 꾸었겠지만
우리가 얻어낸 것은 단지 백지 한 장이었습니다.

조금만 함부로 대하면 구겨져 쓰레기가 될 수도 있고
잠시만 한 눈을 팔면 누군가가 낙서를 해버릴 수도 있지만

그것 없이는 꿈꿀 수 없는 약하면서도 소중한
그런 백지 말입니다. (p168~171)


부록인 '그래서 어쩌자고?'는 마치 학습만화를 연상케하는 만화인데, 촛농소녀와 녹용 그리고 브이를 통해 대의제로 대표되는 현재의 정치 체재에 순응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되묻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이후 1년이 지났지만 현 정부는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며 국민들의 실망만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MB 정부의 실정(失政)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촛불 집회같은 시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기 보단 무관심으로 정치를 외면했다. 사람들이 정치를 외면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의 진로와 미래를 걱정하기에 바빠서 일지도 모르고 정치란 속성이 머리로 이해하기엔 너무 복잡한 이론과 법칙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의제적인 정치체재로 정해진 현재의 정부를 그냥 인정하고 5년만 지나면 끝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현실을 외면한다.

하지만 다수결 방식으로 모든 것이 정해져 있으니 불공평하더라도 그냥 참고 지내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작가는 이런 사고 방식을 사실 명제를 토대로 당위명제의 참을 주장하는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다수결의 투표로 정해진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는 사실 명제가 참이므로 '다수결의 법칙에 따라 정해졌으므로 현 정부를 따라야 한다'는 당위 명제가 참으로 연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다수결로 정해진 결과에 불만족스럽더라도 이것을 수긍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작가는 다수결의 결과를 수긍할 수 있는 근거로 '정당성(Legitimacy)'을 들고 있다. 즉 다수결로 정해진 결과가 정당하고 합법적이라면 그 결과가 나에게 불리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현정부는 정당성의 관점에서 국민들이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정책을 추진하는 방법보다는 성과라는 목표를 위해 설득의 과정을 무시하고 기습적으로 정책을 강행한다. 미디어법을 통해 국민의 의사를 막고 대다수 국민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근거를 내놓지 않은체 무작적 경제논리를 앞세워 비정규직 정책이나 4대강 정비 정책을 강행하려고 한다.

만화는 정당성이 훼손된 체 소수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추진하는 정치인들을 감시하고 국민들의 의사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심의된 국민의 의사가 반영된 정당정치가 구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정당에 적극적인 참여와 후원을 함으로써 소수의 의사가 반영된 정책에 정당성을 조금이나마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보다 발전된 정치체재를 만들 수 있도록 국민 스스로 정치에 대한 많은 고민과 학습이 병행된다면 조금이나마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의 주장은 어떻게 보면 원론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치는 우리의 수준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그림처럼 거울에 비춰진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보고 그 모습의 추함에 실망한 나머지 거울을 보지 않은 체 살아간다면 여전히 그 모습은 추함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거울에 비춰진 우리의 정치를 스스로 돌아보고 그 모습을 가꾸도록 노력한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보다 나은 모습을 한 정치를 거울을 통해 바라보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