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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엔니오 모리꼬네, '언노운 우먼 (La Sconosciuta)' OST


엔니오 모리꼬네가 영화음악을 맡은 영화 중 가장 기억나는 영화들을 뽑으라면 아마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들과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영화들, 그리고 롤랑 조페의 '미션' 정도가 선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영화 속에서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 음악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음악들은 그의 작품들을 모은 컴플레이션 앨범들을 통해 접할 수 있지만 하나의 영화 속에서 사용된 음악들을 모아논 ost 앨범들은 쉽게 접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오랫만에 국내에 개봉된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영화와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 음악이 나왔을 때는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극장에서 본 '언노운 우먼'은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작품 중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가뭄에 콩 나듯 등장하는 좋은 영화 축에 속하는 작품이었다. 또한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 음악은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들 정도로 좋은 영화 음악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영화를 본 다음 날, 인터넷에서 '언노운 우먼' ost를 구입한 뒤 컴퓨터에 cd를 넣고 두,세 번 정도 음악을 쭉 들어보았다.

'반복되는 곡들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는 감독의 의도에 맞게 한 곡을 제외하고 모든 곡을 영화 속에 한 번씩만 등장시켰다'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겉비닐에 부착되어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일반적인 ost 앨범과 달리 곡 수가 27곡에 달하며 러닝타임은 71분에 육박한다. 대부분의 곡들이 스릴러적 장르에 가까운 영화의 분위기에 어울릴 수 있도록 긴장된 분위기가 주를 이루는 곡들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한 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곡들이 존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영화 속에서 이레나가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는 부분이나 이레나와 떼아의 만남 부분에 주제곡인 'La Sconosciuta'를 변주한 곡들이나 'Giochi Infantili' 같은 곡을 사용함으로써 여인의 감정을 호소력있게 전달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초반부에 비해 후반부의 곡들이 덜 개성적으로 느껴지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전반부의 곡들이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음악 자체만으로도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곡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반해 후반부의 곡들은 대부분 영화의 극적인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해 구성된 곡들이 주를 이루어서 그런지 막상 음악만 들었을 때에는 크게 인상을 주지 못하는 편이다.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La Sconosciuta'나 'Rapido' 같은 곡을 마지막 부분에 배치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서 아쉬움을 털어놓는다면 음반 겉표지가 너무 부실하다는 점을 들고 싶다. 이탈리아 어로 쓰여진 트랙 이름을 한글로 번역한 점은 칭찬할 만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스틸컷 한 장면조차 삽입하지 않은 체 달랑 곡 구성만 표시한 부클릿이 아쉽게 느껴진다.

영화 음악을 들은 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곡들에 관해 간단하게 감상평을 남겨본다.

01. La Sconosciuta (미지의 여인)

첫 곡인 'La Sconosciuta'는 초반부에는 쓸쓸하면서도 울적한 현악기의 화음으로 전개되다가 음악이 고조되면서 아름다운 현악기들의 협연으로 진행된다. 영화의 주제곡에 걸맞게 쉽게 잊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선율이 전개되는데, 특히 솔로로 연주되는 바이올린의 선율이 귀에 남는다.



04. Giochi Infantili (아이들의 장난)

'Giochi Infantili'는 1분여 정도의 짧은 곡이지만 쉽게 지나치기 힘든 곡이다. 이레나가 정장을 침대 옆에 놓아둔 뒤 회상하는 과거의 기억 장면에 등장하는 이 곡은 피아노와 플룻이 어울려져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화음으로 이레나의 과거의 기억을 아름답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07. Flauto, Violino E Orchestra (플룻, 바이올린, 오케스트라)

영화 상에선 등장하지 않은 것 같은 음악이지만 다른 곡들과 달리 크로스오버 장르의 음악같은 느낌이 드는 곡이어서 기억에 남는 곡이다. 전자 음악의 비트와 풀룻, 바이올린 등의 클래식 악기들의 음이 어울려져 독특한 느낌을 준다.

10. Rapido (빠른)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두 번째 음악인 'Rapido'는 차분한 음율 속에서 쓸쓸한 바이올린의 연주들이 보조를 맞추면서 영화의 미스테리적인 느낌을 부여한다. 음악의 중반 이후 바이올린의 솔로 연주가 계속되는데, 차분한 음악 속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의 솔로 독주가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11. Insopportabile Ansia (참을 수 없는 불안)

'Insopportabile Ansia'는 바이올린과 플룻의 반복된 연주를 통해 긴장감을 부여하는 점이 특징이다. 반복되는 플룻과 바이올린 사이에 여러 현악기들이 보조를 맞추면서 전개되는 음악을 통해 긴장감을 부여하면서도 쓸쓸한 감정을 동시에 전달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12. Ambiguita (모호함)

첫 번째 곡인 'La Sconosciuta'를 보다 짧게 변주한 음악이어서 그런지 초,중반부는 첫번째 곡과 거의 비슷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후반부를 쓸쓸한 바이올린의 음으로 마무리함으로써 같은 곡이어도 다른 분위기와 느낌을 준다.

20.  Esercizi Di Stile (방법의 연습)

27 곡 중 가장 긴 러닝 타임을 가진 'Esercizi Di Stile'은 처음부터 강렬한 음으로 긴장감을 부여하다가 바이올린, 플룻, 피아노 그리고 하프 등의 악기를 통해 보다 차분한 분위기로 전환된다. 몇 분동안 지속되던 차분한 음악은 바이올린의 음이 고조되면서 긴장감을 폭발시킨다. 후반부는 'Insopportabile Ansia'를 변주하되 플룻을 강조함으로써 색다른 느낌을 준다.

23. Una Vita Serena (평온한 삶)

'Una Vita Serena'의 초반부는 주제곡인 'La Sconosciuta'의 변주곡 같은 느낌을 주지만 주제곡과 비교적 비슷한 음을 들려주는 'Ambiguita'와는 달리 차분하면서도 극적인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