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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디스 이즈 잉글랜드 _ 그대로 응시하다



디스 이즈 잉글랜드 (This is England, 2006)
그대로 응시하다


해 외 영화제를 통해 호평을 받았다는 홍보문구들로 먼저 알려진 셰인 메도우스 감독의 2006년작 <디스 이즈 잉글랜드>는, 유난히도 영화제 수상이라던가 '평단과 관객을 모두 만족시킨..' 이런 식의 문구들이 많은 경우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흥미를 끄는 문구는 '<트레인스포팅>이후, 영국 영화의 재습격' 이라는 문구였다. 이 영화를 표현하는 설명들 가운데는 얼핏 훑어보아도 대 니 보일 감독의 <트레인스포팅>이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걸 보고는 '적어도 번지르르하게 포장하지는 않겠구나'하는 믿음은 가질 수 있었다. 저 힘없어 보이는 하늘색이 이리도 강렬하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라는 걸 실감했던 포스터처럼, 영화는 1983년 영국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영화 속 장면에는 아예 대놓고 응시하는 컷이 나오기도 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영국인 감독이 자국인 영국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강렬한 두 눈으로 응시하는 영화다.


ⓒ Film4. 백두대간. All rights reserved

<디스 이즈 잉글랜드>를 100% 이해하기 위해서는 1980년대 당시 영국의 정치, 사회적 배경과 현실들에 대한 몇 가지 정보가 필요하다. 특히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와 그녀의 정책들, 그리고 아르헨티나와 벌인 '포크랜드 전쟁'에 대한 사실들은 이 영화의 주된 배경이라 할 수 있는데, 영화는 이 같은 사안들은 아주 직접적으로 파고든 정치 영화는 아니지만, 결국 이런 정치, 사회적 요인들이 당시 영국을 살았던 사람들(소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가감 없는 솔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숀 (토마스 터구즈)'은 아버지가 전쟁에서 돌아가시고 엄마와 둘이 사는데, 가정 형편 역시 그리 좋지 못해 촌스러운 바지를 입고다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는다. 그렇다고 숀이 <렛 미 인>에 나오는 오스칼처럼 소극적인 소년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그는 그럴 수록 더 달려들어서 싸우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숀이 어느 날 우연히 스킨헤드 무리를 만나게 되면서 이 영화는 서서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 Film4. 백두대간. All rights reserved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디스 이즈 잉글랜드>의 주된 이야기 방식은 주인공인 어린 소년 숀이 어떤 일들을 겪게 되면서 어떻게 변해가는 가에 대한 것이다. 숀이 처음 만난 스킨헤드들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인종차별적인 '스킨헤드'와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그저 일자리가 없는 실업자이고 약간 모자라보이기 까지 하는 고작 '비행청소년'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이들이었다. 처음 숀과 이들이 만나 전쟁 놀이를 하며 노는 장면은 한 편으론 정치적인 당시 사회의 분위기 속에 소년들의 놀이 문화마저 폭력적이고 전투적인 것들이 되어버린 현실을 엿볼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영화적으로 보았을 때 단순히 숀의 행복했던 한 때로 볼 수도 있을 듯 하다. 그런데 여기서 의미심장한 건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던 숀이 이들을 만나면서 이 무리 속에서 다른 한 명을 그들과 함께 따돌림 시키면서 해방감을 얻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나중에 콤보를 만나면서 더 확장된다.

숀이 이들을 만나게 된 것이 첫 번째 지점이라면, 두 번째 전개가 시작되는 지점은 바로 이들 무리와 예전에 함께 했었던 콤보가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다. 다소 급진적이고 우리가 현재 흔히 알고 있는 '스킨헤드'에 가까운 성향을 갖고 있는 콤보가 숀과 접촉하게 되면서, 숀 역시 급격하게 변하게 되고 그의 변화를 주목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변해가는 숀을 나무랄 수 만은 없는 현실 역시 담아내고 있다.

(이후부터는 내용에 대한 미약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께서는 맨 마지막 단락으로 이동해주세요~)



ⓒ Film4. 백두대간. All rights reserved

콤보는 숀이 어울렸던 친구들과는 다르게 정치적으로 권력화하려는 성향이 강하고, 인종차별주의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데, 흥미로운건 자기 자신 스스로도 굉장히 가치관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겪는 다는 것이다. 친구들 중 흑인인 밀키 와의 장면들에 엿볼 수 있는데, 처음에는 자신의 세력에 힘을 보태기위해 밀키 역시 흡수하려는 것으로 보았으나, 결국 인종차별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던 콤보는 밀키를 인정하지 못하고 사고를 저지르고 만다. 그런데 저지르고나서 콤보가 보여주는 행동은 무차별적, 냉정한 행동이 아닌 굉장히 스스로 혼란스러움을 겪는 듯한 행동을 보여준다.

이렇듯 영화는 계속해서 변화의 과정을 주목한다. 그냥 동네 불량배들 정도였던 이 무리가 사회적인 요건들로 인해 변화를 겪으며 각자로 나뉘어지는 과정, 그리고 이들 무리에 합류하게 된 어린 숀이 어른이 되기도 전에 겪게 되는 수많은 변화의 과정들은, 어쩌면 겪지 않았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는데, 숀은 이런 일들을 겪고 나서 다시 홀로 돌아와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했던 벌판의 버려진 배가 있는 곳에 나타난다. 아버지 없이 외로움을 겪고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해 항상 홀로 지내던 숀은, 결국 영화의 마지막,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혼자로 돌아왔다. 숀에게는 아버지와도 같았던 잉글랜드의 국기를 스스로 던져버리는 장면은, 결국 국가가 국민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고, 오히려 빼앗아만 갔던 당시 영국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숀의 성장영화로 보긴 어렵다. 숀은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어른이 된 것이 아니다. 그는 아직도 소년이고, 소년으로서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고 만 것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것은 이런 경우엔 불 필요할 뿐이다.



ⓒ Film4. 백두대간. All rights reserved

영화를 보고나면 누구나 주인공 '숀' 역할을 맡은 어린 배우 토마스 터구즈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가 보여주는 연기와 그 표정들은 당시의 시대상을 어린 눈으로도 잘 반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토마스의 얼굴 생김새가 폴 메카트니와 너무 닮아서 (특히 그 쳐진 눈!) 살짝 몰입에 방해가 되기도 ^^;
콤보 역을 맡은 스테판 그레이엄의 경우 <스내치>와 <갱스 오브 뉴욕>을 비롯해 TV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도 출연하여 정확히 무슨 역할인지는 기억나지 않아도 얼굴은 익은 배우였는데, 이 작품에서는 확실히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화음악과 카메라 워킹이었는데, 초반 숀이 스킨헤드 무리와 처음 어울리는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과 카메라가 이들을 비추는 앵글은 정말 감각적이고 인상적이었다. 특히 음악은 영화를 통틀어 상당히 감정선을 건드리는데 작용하고 있고, 전체적인 화면의 색감 역시 이 영화를 기억하는데 더 좋은 소스가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일반적이지 않은 강렬함이 만족스러웠던 영화인 동시에, 사전 지식이 많지 않아도 온전히 영화 내에서 모든 것을 설명 가능했던 <그르바비차>의 경우와는 다르게, 당시 사회적 배경을 잘 알지 못한다면 좀 더 즐기기 어려운 작품이라 조금은 아쉬운 감도 없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