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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나무없는 산 (Treeless Mountain, 2008)


어린 시절 나에게 시골은 너무나 낯선 곳이었다.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부모의 손길에 이끌려 시골에 도착하면 그 곳에 모여있는 친척들이 항상 어렵게 느껴지곤 했었다. 친가 쪽이 워낙 대가족 이다보니 항상 친척들을 볼 때마다 누가 누군지 몰라 어른들을 만날 때마다 당황스럽고 심지어 무섭기까지 했다. 만약 내 주변에 부모님마저 없었다면 나는 그 곳에서 주저앉은 체 하루 종일 울고만 있었을지 모른다. 영화 '나무없는 산'의 주인공인 진과 빈도 어느 날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고모 집에 맡겨진 아이들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어머니의 존재만 기다린 체 낯선 친척집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낯선 곳에 남겨진 아이들의 당황스런 감정과 슬픔은 왠지 모르게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영화는 진의 시선에서 보여지는 주변의 모습들을 통해 아이들이 처한 환경을 드러낸다. 식사 도중 찾아온 어른과 이야기를 나눈 뒤 자리에 돌아온 어머니의 힘없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들을 통해 이들이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놓여있음을 암시한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 진은 자신의 어머니가 이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무런 예고도 받지 못한 체 버스에 오른 진은 자신의 여동생인 빈과 함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낯선 곳에 도착한다. 얼굴조차 보지 못해 가물하던 고모의 집에 오게 된 진과 빈은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찾으러 간다는 말을 한 뒤 아이들에게 저금통을 내밀며 그 저금통이 꽉차는 날 즈음에 돌아올거라는 말만 남긴 체 길을 떠난다. 낯선 곳에 남겨진 두 소녀는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버스정류장이 보이는 언덕에 올라가 어머니를 기다린다. 어느 날 메뚜기를 구워 돈을 주고 파는 아이들의 모습을 목격한 진은 자신도 아이들처럼 메뚜기를 팔아 동전을 모으기로 결심한다.

감독이 한국에서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영화여서 그런지 몇몇 부분은 현대의 시골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들이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메뚜기를 잡은 뒤 구워 만든 메뚜기 튀김을 파는 아이들의 모습은 부모님에게서 들은 이야기로만 기억하고 있어서 오히려 생소한 감이 없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메뚜기를 파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들에게 처해진 현실의 비극을 잊을 수 있는 놀이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항상 술에 취해 가사를 소홀히 하고 아이들을 호되게 대하는 고모에 대한 서러움을 메뚜기를 팔면서 얻은 동전으로 저금통을 채워가며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다. 저금통에 동전을 다 채우면 어머니가 돌아온다는 아이들의 생각은 어른들 입장에서 보면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머니와 하루빨리 재회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절실한 희망을 생각한다면 안타까움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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