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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씨네큐브

라스트 굿바이 to 씨네큐브


씨네큐브를 떠나는 일은 굉장히 센티멘털하고 멜랑꼴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몇 주 간은 감상에 젖기에는 너무 바빴었다.
관객들의 덧글에 눈물이 글썽거리려다가도 전화벨은 울려대고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으며 광화문에서 이화여대 ECC로 보내진
10톤 트럭 분량의 짐들의 어수선한 방황 속에서 마음이 차분해질 여유란 없었다.

어쩌면 바빴기 때문에 강하게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가하면 생각이 많아지니까.
몸살과 함께 찾아온 감기는 정신을 몽롱하게 했고,
마지막날 상영을 할 때에도 다만 모든 일정이 무사히 잘 끝나기만을 바랬으며,
심지어 극장에 걸려있는 <영원과 하루>, <헤드윅>, <타인의 삶> 포스터를 떼내면서도
울컥할 겨를이 없었다.

8월 31일, 마지막 상영이 끝나고 떠나는 관객들이 내비치는 머뭇거림과 아쉬움들은
절제되어 있었고, 헐리웃 영화의 드라마틱함 따위없이 차분하고 경건했다.
하지만 눈빛들은 모두 따뜻한 온기와 약간의 습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마음 속에 한 편의 영화를 간직한 채
영화관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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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 사무실을 이사하고 나서부터 흥국생명 건물에 들어오는 것이
왠지 조금씩 거리감이 느껴지고 다소 낯설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이별은 아니었다. 하지만
씨네큐브와 함께 일한 시간이 결코 길지는 않더라도
관객으로서 함께 보낸 시간은 결코 짧지 않기에
앞으로 광화문을 지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조금씩 아플 것 같다.

그렇지만 내게 2009년 8월의 이별은 아픔보다는 뭉클함으로 기억될 것이다.
씨네큐브를 접는다는 공지와 이메일이 나간 뒤,
수없이 많은 분들이 전해주신 격려 메시지들, 온정의 손길들...
어느 더운 여름날 사무실로 수박을 보내주시겠다던 무명의 관객,
마지막 날 즈음에 맥주와 안주 꾸러미를 정성스럽게 싸서 택배로 보내주신 관객,
"웰컴 투 모모"라며 청초한 화분을 보내주신 관객,
그리고 케이크에 "씨네큐브"라는 문구를 아로새겨서 전해주신 관객...

무엇보다도 이메일로, 덧글로, 방명록에, 편지로, 카드로,
과분한 감사의 글을 남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마음이 전해지는 진심이 담긴 따뜻한 글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리하여... 나답지 않게 쿨하기만 했던 이별 마지막에
결국에는 그분들 때문에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여기저기서 극장은 문을 닫고, 사람들은 세상을 뜨고,
오래된 것들은 점점 사라지고... 그래도 영화는 항상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