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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고단한 인생들을 위한 소박한 위로, <선샤인 클리닝>


영화가 너무 현실에 가까이 다가서 있으면, 많은 경우에 관객들은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인기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잘 것 없는 인생들을 다루곤 하는 독립영화들이 인기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여주인공으로 나름 인지도가 있는 배우들 - <준벅>과 <다우트>의 에이미 아담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에밀리 블런트 - 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선샤인 클리닝>은 소박한 스토리와 다소 거부감 느껴지는 소재 (범죄 현장 청소) 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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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CSI 시리즈가 인기있다고 해도 "범죄 현장 청소"라는 소재는 우리에게 꽤나 낯설다. 영화를 보면서 "도대체 작은 동네에서 범죄와 자살과 불의의 사고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길래 저런 일을 해서 먹고 사는 업체가 여러 개씩이나 존재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어쩌면 미국이라는 사회가 이혼과 자살과 범죄와 알코올 중독자와 실업자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은 것이 현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소재만 빼내고 나면, 영화의 내용은 우리나라 드라마로 그대로 바꾸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친숙하고 보편적인 스토리로 채워져 있다.

고등학교 때 빼어난 미모로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퀸카였지만, 지금은 싱글 맘에 청소 도우미로 근근이 살아가는 로즈, 안정된 직업도 없이 불만투성이로 살지만 가끔씩 언니 로즈에게 정곡을 찌르는 충고를 던지는 여동생 노라, 잘 될리가 없는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다가 별 소득도 없이 고생만 하는 고집불통 노인인 로즈의 아버지, 착하고 순진하지만 학교에서 엉뚱한 사고를 치곤 하는 꼬마 오스카. 여기에다가 로즈와 몰래 만나면서도 가정을 버리지 못하는 로즈의 옛 남자친구 맥의 우유부단함이나 고등학교 동창에게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들킨 로즈가 거짓말을 둘러대는 모습까지 더해지면, 이건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는 우리네 고단한 인생과 너무 많이 겹쳐져 버린다.

이렇게 현실에 바싹 붙어있는 캐릭터들과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한겹을 벗겨내면 엄마에 관한 가족의 상처가 드러나기도 하고, 잠시 잘 나가다가 불운이 닥쳐버린 로즈의 사업으로 자매 사이가 심하게 틀어져 버리기도 한다. 고생 끝에 성공한다는 흐뭇한 헐리웃 스토리가 아닌, 일이 안 풀리는 사람은 결국 어찌해도 잘 안 풀리고 만다는 안타까운 선댄스 스토리를 택한 영화는 대신에 자매 간의, 그리고 가족 간의 속깊은 정으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가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 남루한 인생이지만 서로간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애틋한 가족의 온기가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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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음악과 삽입곡들은 영화 <선샤인 클리닝>과 매우 닮아있다. 용기를 주는 듯한 경쾌한 음악들은, "상황이 어렵더라도 힘내"라고 말하는 듯하다. "우리에겐 가족이 있잖아"라고 미소를 보내는 듯한 음악들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낙천적인 미소를 지을 줄 아는 로즈 역의 에이미 아담스와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냉담한 말을 내뱉지만 마음 속 따뜻함이 배어나오는 에밀리 블런트는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러운 연기를 해내며 정말 친자매 같은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다.   

만약 <리틀 미스 선샤인>의 제작진이라는 문구에 큰 기대감을 가지고 온 관객이라면 영화를 보고 다소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리틀 미스 선샤인>에 나오는 매력 넘치는 캐릭터들과 재기발랄한 유머와 아슬아슬한 로드무비로 마음 졸이게 하는 긴장감 같은 것이 <선샤인 클리닝>에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올리브의 할아버지가 오스카의 할아버지로 바뀌어서, 겉으로는 호통을 치곤 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괴팍한 늙은이로 등장하는 알란 아킨의 반가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랄까. 하지만 루저들이 나오는 저예산 미국 영화의 반짝반짝한 감동을 사랑하는 관객들에게는 자신있게 추천의 한표를 던진다. 그리고 자매가 함께 영화를 본다면 아마 두 배의 감동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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