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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El Cartero de Neruda)


파블로 네루다란 인물은 칠레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알고 있지만 그의 삶을 정리한 책들은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의 인생에 관한 책들이 유난히 두꺼운 면이 있어서 한 번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만 들었을 뿐 정작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파블로 네루다라는 인물을 보다 친숙하게 느끼게 해주었으며 칠레의 비극적인 순간을 인상적으로 전달한 작품이었다.

마리오 히메네즈란 청년은 고기잡이에 흥미를 잃은 나머지 백수처럼 빈둥거리다가 우연히 우편배달부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게 된다. 우체국에 들어선 마리오는 자신이 단 한 사람을 위해 편지를 배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고객은 칠레의 존경받는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였던 것이다. 이슬라 네그라 해변가에 사는 파블로 네루다에게 우편물을 전달하는 일을 맡게 된 마리오는 여자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월급을 받은 돈으로 네루다의 시집을 산 뒤 그에게 사인을 받으려 하지만 그는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한다. 시집을 들고 다니며 여성들에게 자신을 어필하려던 마리오는 어느 새 시집을 모두 읽게 되면서 네루다에 대한 호감을 형성하게 된다. 마리오는 용기를 내어 파블로 네루다에게 말을 걸면서 그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시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네루다와 마리오의 시에 관한 대화는 시가 단지 이해하기 힘든 메타포로 이루어진 문학이 아닌 일상적인 사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것임을 암시한다. 네루다는 시에 쓰이는 메타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마리오를 위해 자신의 시를 들려준다. 그의 시를 들은 마리오는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냐고 되묻는다. 즉 일상 속에서 보이는 모든 사물과 존재를 비유하는 메타포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을 마리오가 시의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은 그가 뛰어난 시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파블로 네루다가 말하는 시의 개념은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보잘것 없는 우편배달부의 고민을 듣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파블로 네루다의 모습은 그가 거만한 문학가가 아닌 대중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는 그의 삶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사랑에 빠진 마리오를 도와주기 위해 얼떨결에 그들의 사랑을 엮어주는 뚜쟁이가 되는 네루다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더욱 친근한 느낌을 불어넣는다. 네루다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한 마리오는 파블로 네루다가 프랑스 대사로 임명되어 파리로 파견된 뒤에도 그에 대한 존경을 잃지 않는다. 장모가 운영하는 주점 일을 도우며 마련한 돈으로 파리를 방문할 돈을 마련하던 마리오는 자식을 키우면서 그 꿈이 실현하기 힘들게 되지만 언젠가 돌아올 그를 기다린다. 비록 그들은 멀리 떨어진 물리적 거리로 인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지만 네루다가 보내온 녹음기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그리움을 전달한다. 시인은 향수병을 느낀 나머지 녹음기에 바다 주변의 사물의 음성을 녹음해줄 것을 마리오에게 부탁한다. 마리오는 녹음기를 통해 들려온 네루다의 목소리에 반가워하며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주변의 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네루다가 TV에 나오자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우편 배달부의 모습은 시인에 대한 순수한 존경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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