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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시네도키, 뉴욕] 삶은 각본 없는 거대한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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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
찰리 카우프만 감독, 2008년

죽음이라는 숙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진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어요. 세상에는 거의 1,300만의 사람이 있어요. 그 많은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나요? 그 중에 엑스트라는 한 사람도 없어요. 모두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이끌고 있죠. 그러니 자신들의 정당한 몫을 받아야 해요.”

극작가 케이든(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에게는 고민이 너무 많다.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아내와 딸에 대한 외로움을 견딜 수 없고,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이 두려우며, 삶에 대한 의미조차도 잃어버린 나머지 쓸쓸함을 지울 수 없다. 케이든을 둘러싼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해가지만, 케이든 자신은 마치 죽음을 피하기 위해 한 곳에 머물고 싶은 듯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살아가며 애써 죽음을 외면하고자 한다. 결국 그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자신의 삶 자체를 연극으로 재현하고자 한다. 정해진 각본도 없는 연극 속에서 현실과 연극의 경계는 점차 모호해져 간다.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케이든은 조금씩 자신이 찾아 헤맨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수많은 사람들 모두 각자의 삶을 지니고 있다는 것, 모두에게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 그렇기에 죽음이라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네도키, 뉴욕>은 죽음이라는 두려움 앞에서 삶을 지속시킬 수 없는 극작가 케이든이 재현해내는 거대한 연극이다. 인생이 지닌 숙명 그 자체를 한 개인의 연극으로 대신하고자 하는 <시네도키, 뉴욕>은 제목 그대로 인생에 대한 거대하면서도 진중한 제유법과 같은 영화다. 스파이크 존즈의 <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과 미셀 곤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등 기발하고 독창적인 플롯을 지닌 각본으로 이름을 알린 찰리 카우프만은 여태껏 다뤄온 주제들을 자신의 연출 데뷔작 <시네도키, 뉴욕>에서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있다. 자신의 삶을 연극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케이든은 사람을 조종하는 <존 말코비치 되기>의 인형가와 닮아 있고, 케이든이 겪는 창작에 대한 고뇌는 <어댑테이션>의 그것과 유사하며, 한 개인의 기억과 무의식을 파고드는 스토리는 <이터널 선샤인>을 연상케 한다. 그러면서도 찰리 카우프만은 스파이크 존즈, 미셀 곤드리와는 달리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진중한 분위기로 영화를 이끌며 <시네도키, 뉴욕>을 자신만의 색깔이 더욱 확고한 작품으로 완성시키고 있다.

<시네도키, 뉴욕>은 관객에게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현실과 비현실, 기억과 상상의 애매한 경계, 흐릿해진 시간과 공간의 구별로 난해함을 자아내는 스토리를 한 번에 따라가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네도키, 뉴욕>는 죽음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이야기하며 난해함 속에서 관객의 마음에 조금씩 다가간다. 불타오르는 집에서 살며 죽음이라는 숙명을 받아들인 헤이즐(사만단 모튼)의 장례식이 연극으로 재현되는 순간은 <시네도키, 뉴욕>의 빛나는 장면 중 하나다. “당신은 대부분의 삶을 죽어 있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채 보냅니다. 그러나 살아 있을 동안에는 당신은 그저 전화나 편지, 혹은 무언가로부터의 시선을 기다리며 세월을 허비할 뿐입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당신은 그저 모호한 희망, 혹은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더욱 모호한 희망 속에서 시간을 소비할 뿐입니다.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당신이 전체라고 느끼게 만드는, 당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무언가를 기대하면서 말이죠.”결국 이 거대한 삶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이라는 숙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 두려움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시네도키, 뉴욕>은 이야기한다.


삶은 각본 없는 거대한 연극이다. 막이 오르고 연극 무대에 오른 인물들은 언젠가는 막이 내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누군가로부터 버림 받을지 모른다는 외로움, 갑자기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 모든 쓸쓸함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삶 속에서 유일한 위로가 있다면, 그것은 이 모든 고민과 두려움은 나뿐만이 아닌 모두가 동시에 지니고 있는 고민과 두려움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쉽게 삶을 포기할 수 없다. 케이든의 연극은 이러한 삶의 진실을 알아가기 위한 긴 여정이다. 케이든의 깨달음처럼 모두에게 각자의 이야기가 있듯, 우리도 자신들만의 삶을 지속시킬 수밖에 없다. (★★★☆)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