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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밴버드의 어리석음> 어리석은 영웅을 만드는 어리석은 세상

밴버드의 어리석음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폴 콜린스 (양철북,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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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눈길을 끈다. '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 세상을 바꾸는데 일조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변화의 순방향에 서든, 역방향에 서든 세상에 얽혀진 모두는 세상을 바꾸는데 자기 몫을 한다. <밴버드의 어리석음>에 등장하는 열세 사람 역시 어떤 측면에서는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다.

다만, 그들이 쏟아 부은 시간, 세상을 들끓게 만든 파장의 세기와 주목도, 그들이 누렸던 한 동안의 명예를 생각한다면, 세상은 마치 그들이 주목받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아무일 없었던 듯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기

열세 사람의 주인공들은 모두 실재 했었다. 남들이 갖지 못한 뛰어난 능력을 가졌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하거나 뛰어난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어떤 일들을 벌인다.

때로는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위작을 만들고, 세계 공통어 만들기에 도전을 하거나, 과학이 발견하지 못한 N선을 발견하기도 하고, 파란 조명의 효과를 찾아내기도 한다. '잠언 철학'이라는 새로운 문학 형태를 구현하기도 하며, 지구의 내부가 텅 비어 있다는 가설을 세우기도 하고, 움직이는 파노라마 그림을 상영하기도 한다.

이 기묘한 작업들 가운데는 의도적인 사기 행각도 있고, 순수한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끝내는 사기 행각으로 이어지는 일도 있으며, 때로는 때를 잘 못 만나 저작권도 보호 받지 못하고 성과도 인정 받지 못한 안타까운 일도 있고, 또 때로는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세상이 추앙하다가 등을 돌리는 일도 있으며, 내적으로 가진 한계 때문에 중도에 반단된 일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실패의 공통점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시도하기'였다는 점이다. 이 한 가지 공통점이 실패 여부와 무관하게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이유를 제공한다.

 

부질없는 성공을 부추기는 세상의 어리석음

<밴버드의 어리석음>을 세상의 기준으로 본다면, 실패자들이 갖고 있는 결정적인 약점 때문에 세상의 실패자로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일정기간은 세상의 주목과 찬사를 받았던 사람들이다.

대체로 세간의 이목 따위는 끌 일 없이 조용히 지내던 이들이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다. 별 뜻 없이 시작한 어떤 일을 누군가가 발견하고, 세상에 소문을 낸다. 자신과 자신이 한 일의 가치를 모르는 주인공은 스스로가 제공한 동기에 따라 몰두 한다. 간절한 바램으로 밤잠을 설치며 몰두했던 일은 우주의 후원을 받았는지, 점점 넓은 세상의 관심을 끈다. 그 뒤로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상을 요란하게 만든 유명인사가 된다. '유명인사라는 명예', '세상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라는 지위는 너무도 달콤하다. 다시는 묻혀지내던 조용한 사람으로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는 의도적인 과장이 섞이거나, 자신에 대한 오만이 생긴다. 있을 수 있는 빈틈이나 오류, 한계를 돌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 사람들이 실체를 확인한다. 열세 사람은 실패한 인생으로 기록되어 세상 사람들이 돌아선 등 뒤에 초라한 모습으로 남는다.  

어리석은 세상은 작은 오류나 실패, 작은 속임으로 그칠 일들이 더욱 커지게 만든다.

 

집단지성을 발휘하기에는 너무 느린 속도로 오가던 19세기

그럴만한 이유는 또 하나 있다. 열세 사람이 살던 시대가 19세기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정보를 주고 받으며, 검토하고, 실제 생활 속에서 시험을 한 결과를 나누기에는 19세기는 너무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조금만 교통이 발달했던들, 오리엔트 문화에 대한 환상에 젖어 사기꾼의 거짓말을 못 찾아내는 일을 없었을 것이며, 조금만 더 빠른 속도로 정보가 오갔더라면 눈에 띄는 오류들을 집단 지성의 힘으로 검증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사람의 역량과 사람됨을 검토하는 데는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통계학적인 결과다. 짧은 기간 안에 영웅을 만들어 내고, 만들어진 영웅에 절대 충성을 바치는 쉽사리 달뜨곤 하는 행태를 돌아보게 한다.

<밴버드의 어리석음>은 사건의 주인공들의 우둔함을 비웃지만, 거꾸로 세상의 어리석음을 검토하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