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 theater

[리키] 아기 천사, 그리고 스텝패밀리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여자가 상담을 받고 있다. 싱글맘이던 그녀가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의 아빠가 떠났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힘들다고 호소하는 그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영화는 궁금증을 던져주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몇개월 전으로 돌아간 이야기에 궁금증을 안은 관객은 쉽게 빠져든다.


이 영화는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날개가 자라는 아이가 태어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에 대한 한 가지 접근이다. 기발한 상상이다. 날개가 자라는 아이.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다. 날개가 자라는 아이를 언론으로 부터 숨기려는 가족의 사투. 날개가 자라는 아이가 태어난 이유를 추적해 나가는 수사극. 기타 등등의 여러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이 영화는 오로지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춰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바로 불완전한 가족의 완성이다.


가족이 다 모였는데 이렇게 칙칙하다니!


영화는 '아기 천사 리키'라는 제목에 걸맞지 않게 전반적으로 칙칙한 분위기를 뿜는다. 싱글맘인 케이티는 직장에 다니는 외로운 여성이다. 7살 리자는 아빠가 없어 어딘가 불안해 보이고 표정도 없는 소녀다. 소녀에게 기댈 곳이란 엄마밖에 없다. 그러던 엄마에게 털 많은 남자친구가 생겼다. 관계가 좋을리가 없다. 어두운 분위기를 한층 더 심화시켜주는 것은 음악이 담당했다. 서스펜스 영화에나 쓰일법한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니 불안해진다. 꼭 무슨 일이 터질것만 같다. 장면장면이 아슬아슬하다. 불안한 음악과 칙칙한 배경은 그만큼이나 위태로운 가족관계를 상징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어색한 그들의 관계는 '리키'가 태어나면서 더욱 위태로워진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던 엄마의 관심이 아이에게 모두 돌아가자 더욱 불안해지는 리자. 아기에게만 신경쓴다고 토라지는 리키 아빠(파코). 아이의 등에 나타나는 멍자국에 파코의 폭행을 의심하는 케이티. 결국 파코는 떠나고 가족은 최악의 환경에 처한다.

다시 가까워지는 모녀.

이런 분위기가 반전되는 것은 리키의 등에 날개가 자라면서다. 엄마와 딸은 비밀을 공유하게 되고 다시금 가까워진다. 엄마에겐 모성애가 솟아나고 과학서적까지 참고하여 아이를 돌보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엄마는 정말 위대하다.) 파코에겐 다시 가족에게 돌아갈 연결다리가 생긴 셈이다. 하지만 날개달린 아이를 가진 가족이 마냥 행복하게 살아갈 순 없는 법이다. 그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듯 리키는 날아가 버린다. 케이티는 넋 나간 사람이 되고 파코와 리자는 서로를 위로하며 가까워진다. 케이티는 자살을 결심한듯 호수로 들어가고 그 때 리키가 머리위에 날아온다. 마치 엄마를 달래려는 듯. 엄마를 다시 물 밖으로 이끌어낸 리키는 잘 지내고 있다는 듯 까르르 환하게 웃더니 다시 날아가 버린다.

리키. 아이고 귀여워!


리키를 보고 돌아온 케이티는 환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가족은 포옹한다. 엄마와 아빠의 교차된 팔 안에 안긴 리자. 그 안정감 있는 모습을 화면은 오래도록 담는다. "아빠 아니야, 파코 아저씨야."라고 말하던 리자가 파코의 허리를 꼭 쥐는 모습은 피가 섞여야만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고난을 같이 겪어내고 일어서면서 가족은 튼튼해지고 견고해진다. 불완전하던 가족이 완성되었다. 음악도 따뜻하게 바뀌고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다. '다 잘 되었구나.'


프랑수와 제라르의 <프시케와 에로스>

# 에로스(큐피드)
날개 달린 아기 천사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무래도 에로스(큐피드)다. 미(美)의 신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사랑의 화살을 갖고 다니는 장난기 많은 연애의 신. '리키'는 여러모로 에로스와 닮았다. 리키의 등에 자라는 날개는 에로스의 날개와 꼭 닮아 있는데다 리키는 케이티와 파코를 다시 이어주는 사랑의 매개체가 된다. 뿐만아니라 남녀간의 사랑을 넘어 불완전한 가족의 화합까지 이끌어내니 어찌보면 에로스보다 더 진화한 천사인지도 모르겠다. 천진난만하게 날면서 맑게 까르르 웃는 리키를 보면 정말 천사구나 싶다. 이혼율은 높아지고 위태로운 가족이 많아지는 요즘 시대에 꼭 필요한 천사가 아닐까. 프랑소와 오종 감독은 현대판 에로스를 만들어 내었는지도 모른다.


# 귀여운 꼬마 소녀.
나비의 날개를 달고 있는 이 소녀가 프시케?

리자를 연기한 꼬마 소녀 멜루신 메이얀스. 다코다 패닝을 보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소녀 덕분에 영화의 집중도가 높아졌다. 미래가 기대되는 아이다. 참 이쁘다.




90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 이야기를 참 잘 담아내었다. 예고편을 봤었기에 칙칙한 분위기라는 것을 알고가서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가족의 화합을 느낄 수 있었던 교차된 팔안의 리자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영화가 신선하고 좋았다. 천재감독 프랑소와 오종이 다음 작품을 내놓으면 주저않고 또 보러가겠다.


덧, 닭 날개는 당분간 좀 꺼려 할지도 모르겠다. <매트릭스>와 <다크나이트>의 특수효과팀이 참여했다더니 너무 생생한 닭 날개를 아기 등에 달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