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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공기인형 (空気人形, 2009)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공기인형'은 사람의 성적 욕구 해소를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기인형이 '마음'을 갖게 된다는 상상에서 출발하는 영화이다. 마치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은 것처럼 어느 날 바람에 의해 인간처럼 일어난 공기인형은 자신 앞에 펼쳐진 세상을 돌아보며 새로운 것을 경험하려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자신이 공기인형이란 자각을 갖고 있는 노조미가 자신의 몸에 그어진 줄을 지우려고 노력하면서 스스로 인간이 되려고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노조미를 바라보며 그녀가 공기인형이란 사실을 자각조차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노조미의 주인 히데오 그리고 그녀의 정체를 알게된 비디오점 직원 준이치를 제외하면 마을의 사람들은 노조미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그녀가 인형이란 것을 판단하지조차 못한다.

영화는 한 노인의 말을 통해 인간은 마치 하루살이처럼 생식을 위해 살아가느라 마음을 비워버린 존재와 같다고 말한다. 노조미가 있는 마을의 사람들은 어딘가 텅 비어버린 것처럼 하루를 살아간다. 히키코모리처럼 스스로 방 안에 갇혀 지내며 살아가는 여인, 공기인형을 통해 성적욕구를 충족하는 히데오, 그리고 아침밤을 홀로 먹으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비디오점 주인 등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아무런 희열을 느끼지 못한 체 살아간다. 하지만 영화는 노인이 노조미에게 알려준 시를 통해 인간은 비어있는 상대방을 채워주는 존재와 같다는 것을 드러낸다. 암술과 수술의 만남만으로 꽃을 피울 수 없지만 바람을 통해 번식을 돕는 것처럼 인간 역시 서로에 대한 만남과 교감이 함께 할 때 양측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노조미가 우연히 비디오가게에서 일어난 사고를 당한 후 준이치를 통해 공기를 채우는 과정은 고립된 체 세상을 등진 사람들에게 보내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다른 사람을 돕고 귀기울인다면 상대방은 부족함을 채우고 살아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노조미는 스스로 공기를 채우던 펌프를 버리고 준이치에 대한 사랑을 꿈꾸며 세상을 밝은 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노조미는 자신이 인간의 욕구를 위해 대체된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비디오점 동료인 준이치에 대한 호감을 키우지만 자신이 그의 옛 연인의 대체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방황하기 시작한다. 또한 주인이었던 히데오가 새로운 노조미에게 생일 케이크를 챙겨주는 모습을 본 노조미는 차라리 마음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한탄한다. 한편 노조미처럼 대체품같은 삶을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일본의 비정규직 세대의 풍경을 반영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예를 들어 노조미가 스타킹을 보고 자신과 같은 공기인형으로 착각했던 접수처 여직원은 자신보다 젊고 아름다운 동료 여직원을 바라보며 나이듦에 대해 두려워한다. 또한 주문접수를 못한다는 이유를 들며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는 요리사의 불만을 웃음으로 넘어가야 하는 히데오의 모습은 대체품같은 삶을 살아가는 일본의 현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대체품처럼 취급당하며 사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은 인간들을 두려워하고 스스로 고립하는 길을 선택한다. 히키코모리같은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나 공기인형을 통해 사람에 대한 상처를 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바로 더 이상 인간에게 상처입지 않고 싶어하는 일본인들의 자화상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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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위드블로그에서 받은 공기인형 ost를 열어보니 부클릿에 배두나가 낭독한 요시노 히로시()의 '생명은(生命は)'이란 시의 해석이 첨부되어 있었다. 영화 속에서 노인에게 시를 들은 노조미가 독백을 통해 시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이 시가 그 내용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화를 볼 때에도 인상적이었지만 글로 읽으니 더욱 여운이 남아서 이 글에 시의 해석본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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