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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경계도시 2 (The Border City 2, 2009)

'경계도시 2'는 2003년 당시 37년만에 고국을 방문한 송두율 교수가 이념의 광풍에 휩싸이는 논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전편인 '경계도시'가 촬영될 2001년 무렵에도 송 교수는 한국을 방문할 결심을 세웠지만 준법 서약서 작성 및 국정원 조사에 응하라는 보수 측의 반발 때문에 입국을 포기하였다. '경계도시'에서 국정원이 요구하는 사항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 서울대 선배 김지하의 영향인지 몰라도 심정의 변화가 생긴 송 교수는 자신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심한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얼마나 변화했는지 체감하고 싶다고 말한 송두율 교수의 말처럼 감독 역시 그가 한국을 방문해 느낀 감정을 영상을 통해 전달하려고 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감독은 송두율 교수를 둘러싼 이념의 광풍을 목격하면서 영화의 대상을 그가 아닌 그를 바라본 한국 사회의 단면으로 수정하게 된다.

송두율 교수가 처음 입국할 당시의 풍경은 비교적 순조롭게 느껴졌다. 송두율 교수는 자신이 북한 노동당의 서열에 기재된 김철수라는 혐의를 벗기 위해 스스로 국정원에 출두하였고 국정원 역시 그에 대한 강압적인 수사를 자제하면서 협조적인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 송두율 교수가 70년 당시 북한 노동당에 가입하였고 김일성 사망 후 장례식에 참석할 당시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기재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게 되면서 그에 대한 조사는 간첩 혐의를 두고 확대되기 시작한다. 북한의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송두율 교수가 70년 대 당시 자신이 북한 노동당에 가입했다는 사실과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에 입국할 당시 자신의 이름이 김철수로 기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드러내지 않았던 점을 뒤늦게 밝힌 점은 실망스러웠고 일말의 배신감도 느껴졌다.

하지만 그에 대한 새로운 이력이 밝혀지면서 하이에나처럼 달려들던 언론들의 모습은 과연 우리가 그를 비판할 자격이 되는지 부끄러움마저 느껴졌다. 경계인이라는 관점에서 남북 사회를 균형있게 바라보려 했던 송 교수는 노동당에 가입한 이력이 드러난 후 언론들에 의해 거물 간첩 취급을 받게 되었다. 한국 언론들은 관찰자가 아니라 마치 게임 플레이어 같다고 논평한 독일 언론의 언급처럼 언론사들은 경계인이란 관점을 내세우는 송 교수의 모습을 마치 자신의 과거 이력을 발뺌하는 모습으로 묘사하였고, 검찰 조사 과정 중에서 진술한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체 그대로 노출하였다. 이념의 광풍에 당황한 진보 여론조차 송 교수의 잘못을 용서하고 그를 포용하자는 여론을 제기하면서 그를 죄인 취급하였고, 그를 변호하는 주변 인물들도 경계인이라는 신념을 고수하던 송두율 교수에게 북한 노동당 가입 사실에 대해 사죄하고 경계인의 관점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2003년 당시 송두율 교수를 둘러싼 광풍의 문제점은 이념의 경계에 얽매인 나머지 그에게 어느 한 쪽을 선택할 것을 강요하였다는 점이다. 자신의 신념에 대해 당당하던 송두율 교수도 그의 과거 이력이 한국 사회에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게 되자 고뇌하게 되었고, 그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형성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결단을 통해 한국 사회에 대해 용서와 이해를 부탁하였다. 그는 경계인을 고수하던 자신의 관점을 철회하고 북한 노동당 탈퇴 선언 및 국민에 대한 사과 그리고 한국에 남기 위해 독일 국적을 포기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함으로써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이념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만, 결국 검찰 측은 그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함으로써 그를 간첩으로 규정한다.

왜 우린 송두율 교수가 주장하는 관점인 경계인이란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북한과 관계된 이념을 적으로 규정하는 이분법적인 경계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그가 북한 방문을 통해 본질적으로 무엇을 추구 하였는지에 대한 판별보다는 북한 노동당 가입 이력과 그의 이름이 노동당 서열에 기재된 사실만으로 그를 간첩으로 규정하였다. 정작 송 교수 자신은 경계인의 관점에서 남북한 사회를 균형있게 바라보려는 시도를 하였지만 우린 그 관점을 하나의 이념으로 포용하지 못하였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적이라는 편협한 이념의 경계 속에서 광풍을 겪은 송두율 교수의 비극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자부하는 우리들이 정작 북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하나의 국민으로 받아들이는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송두율 교수가 법적 공방 끝에 무죄 선고를 받고 9개월 간의 투옥 생활을 마치며 나올 무렵 그가 구속될 당시의 모습과 비교되는 언론사들의 관심은 망각을 통해 자신의 과오를 잊어버리는 한국 사회의 단면이 보여진다. 출소를 하면서 기자회견을 하던 송 교수가 언론 기자들에게 신중한 글을 부탁하는 마지막 한 마디는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이념의 광풍 속에서 홀로 싸워야 했던 송두율 교수 부부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며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두 분이 제주도의 해변을 거닐면서 고국의 향토를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기도 했다. 적어도 우리가 이념적으로 북한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선 나와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도 수용할 줄 아는 여유는 가져도 되지 않을까. 영화를 통해 이념의 광풍이란 것이 얼마나 혹독한 것인지 깨닫고 부디 우리 사회가 다양한 이념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 있는 사회로 거듭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