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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home

뛰고 뛰고 뛰어오르고 그러다 떨어져도 또 뛰고, 이것이 대니 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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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보일의 <트레인스포팅>이나
<굿윌헌팅>과 <파인딩포레스터>를 뺀 구스 반 산트의 청춘영화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은
나는 빈민가는 알지만 약쟁이 청춘는 모르기 때문이었다.
 
영화의 성공스토리조차 픽션 같았던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종교적(written)’이고 (영화와 소설로) ‘허구적(written)’인 동시에
(짜고 치면서도 리얼 프로그램이로 자칭하는 퀴즈쇼처럼)
‘미디어적(written)’인, 그야말로 대니 보일 영화다.
 
가난한 마이너리티로 태어난 형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라
서로를 부담스러워하고 필요할 때면 이용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배신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마 혈연이라는 끈질긴 인연일 테다.
빈민가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하는 아이들은 딱 이 형제 같은 타입이다.
영리하고 거침없거나 또는 고집스럽고 성실하거나.

그리고 이 영화의 매력은 감독이 빈민가의 삶에
동정도, 연민도 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나온다.
때문에 이 불행한 인도의 모습에서 ‘오리엔탈리즘’을 읽는다면,
모자랄 것 없이 잘 살아온 사람이 서 있는 발판의 한계일 뿐이다.
배척받고 소외받는 가난한 마이너리티의 삶은
화려하고 풍요로운 가진 자들의 삶보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뉴욕, 런던, 파리, 도쿄, 서울에서 이러한 슬럼은
메트로폴리탄이라는 완벽한 도시 풍경에서 깨끗이 지워져 있다.
없앨 수 없다면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면 되는 결점과도 같으니까.
때문에 이 영화가 싫다는 인도 감독의 말은 이해가 가지만,
‘슬럼독’의 이야기를 찍는다면 선진국이 아니라
아직 완벽한 계층 분리, 굳건한 유리벽이 세워지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 찍어야 진짜가 되는 법이다.

24시간 가게가 문을 열고, 언제든 원하는 상품을 배송받을 수 있는,
그래서 노동자의 임금이 낮고 착취자의 천국인 한국에서
가난한 청춘은 분명 불행하다.
그러나 뭄바이에서 빈민가를 순식간에 불도저로 밀어내고
최신식 고층건물이 세워지는 것처럼
명품은 아닐지라도 싼값에 나쁘지 않은 모든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자본주의란 다른 한편으로 멋지고 대단한 것이다.
동독과 소련의 몰락의 자본주의의 온전한 승리가 아닌 것처럼,
신자유주의와 소비자본주의를 몰아내자는 주장은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가장 즐거웠던 장면은 타지마할 거짓말 투어.
순수한 전통이라는 게 있을 리 없듯이
관광객이 그 나라, 그 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정말로 관심이 있을 리가 없으니,
나는 저 훌륭한 거짓말쟁이 투어를 한번쯤 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