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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반드시 크게 들을 것] 오늘 밤, 우리는 로큰롤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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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크게 들을 것 (Turn It Up To 11)
백승화 감독, 2009년

로큰롤의 힘, 한국 인디신의 기록

영국의 록 밴드 ‘오아시스’는 노래했다. “나는 빛나는 별을 위해 내 인생을 살고 있어. 사람들이 그러더군. 그건 시간 낭비라고... 내 머리 속에서 내 꿈은 현실이야. 이제 너는 내가 느끼는 방식을 걱정해야 할 걸. 오늘 밤, 나는 로큰롤 스타야.” 한 손에 기타를 들고 수많은 관객들이 모인 화려한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그야말로 눈부신 록 스타의 꿈. 그러나 록 음악의 불모지와도 같은 대한민국에서는 단 한 번도, 로큰롤 스타가 등장한 적이 없었다.


‘이 빌어먹을 나라에는 로큰롤 스타가 필요하다.’ 선언과도 같은 자막으로 시작하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록의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로큰롤 스타를 꿈꾸며 살아가는 인디밴드의 솔직한 모습을 담아낸 유쾌한 다큐멘터리다. 인천 부평의 모텔촌에서 시작한 인디 클럽 및 레이블 ‘루비살롱’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는 ‘루비살롱’을 대표하는 두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타바코 쥬스’가 각각 유명세를 얻고 음반을 발매하기까지의 과정을 쫓는다. 홈비디오 마냥 거칠게 촬영된 화면과 편집, 그리고 ‘크라잉 넛’의 ‘캡틴록’ 한경록이 참여한 유쾌한 내레이션 등 영화는 쌈마이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오히려 이 자유분방함이야말로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가장 큰 매력이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로큰롤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어떤 의도를 갖고 시작된 영화는 아니지만,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두 밴드의 이야기 속에서 한 가지 공통된 주제를 풀어내며 스토리를 끌어간다. 내레이션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로큰롤의 힘’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는 두 밴드의 이야기를 비슷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지만, 각각의 밴드를 통해 이야기하는 바는 조금씩 다르다. 전반부의 중심에 놓인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음악만으로 유명세를 얻어 록페스티벌을 거쳐 TV 무대에 서기까지의 이야기를 통해 록 밴드의 성공 과정을 찬찬히 담고 있다면, 후반부에서는 홍대 앞의 ‘막장 밴드’로 불리는 ‘타바코 쥬스’가 갖가지 해프닝 속에서도 멤버들이 의기투합해 새 앨범을 녹음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음악을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인디 뮤지션의 현실을 솔직하게 담는다. 거칠지만 에너지 넘치는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공연 무대에서 전해지는 순도 100%의 열정과 젊음이 음악으로서의 로큰롤이 지닌 힘을 보여준다면, 술만 마시면 멤버들끼리 싸우고 때로는 공연 펑크까지 내면서도 끝내 첫 음반을 완성시키는 ‘타바코 쥬스’의 모습은 삶의 태도로서의 로큰롤이 지닌 힘을 보여준다. “로큰롤은 아무 것도 없어. 그냥 잘 놀고 즐기면 되는 거야.” ‘루비살롱’의 대표 리규영이 영화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타바코 쥬스’, 그리고 이들의 음악과 함께 열정을 불태우는 관객들이 하나 되는 모습을 통해 잘 놀고 즐기는 것의 위대함, 로큰롤이 지닌 놀라운 힘을 설파한다.


무엇보다도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2009년 다시 한 번 르네상스를 맞이한 한국 인디신의 한 순간을 기록한 영화라는 점에서 음악 마니아들에게는 반가운 영화일 수밖에 없다. 90년대 말 ‘크라잉 넛’ ‘델리 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의 등장과 함께 주목 받은 인디신은 한 동안 소수의 음악 팬만이 찾는 음악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그러나 2008년 말, 70년대 한국 록의 정서를 물려받은 음악과 함께 키치적인 무대 퍼포먼스로 일약 스타가 된 장기하의 등장으로 인디신은 다시금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 ‘국카스텐’ ‘검정치마’ 등이 소속된 인디 레이블 ‘루비살롱’이 있었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우연히도 그 영광스러운 인디신의 한 장면을 담는다. 음악만으로 이미 재능을 인정받고 있던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개성으로 독보적인 위치에 있던 ‘타바코 쥬스’를 통해 왜 인디 음악이 천편일률적인 상업 대중음악에 맞설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영화는 넌지시 보여준다. 비록 모든 대중이 열광하는 로큰롤 스타가 등장한 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로큰롤 스타가 되기 위해 남들 못지않게 재밌고 즐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영화는 엔딩에서의 자막을 통해 ‘루비살롱’과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지금은 같은 길을 걷고 있지 않음을 말하며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과거가 됐을지언정 영화에 담긴 이 빛나는 순간들만큼은 그 가치를 잃지 않는다. 영국의 인디 레이블 ‘팩토리 레코드’를 소재로 한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24시간 파티 피플>이 남부럽지 않은 음악영화라는 사실만으로도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여유 없이는 문화생활도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로큰롤 스타를 꿈꾸는 이들도 있다. 그들도 결국 원하는 건 돈과 성공 아니냐고?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그것을 위해 남들이 시키는 무언가를 억지로 하지는 않는다. 그저 좋아서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르며 관객의 환호와 열광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어느 순간 로큰롤이 싫어진다면, 그때는 또 다른 꿈을 찾아 길을 떠날 것이다. 잠깐이라도 상관없다. 잘 놀고 즐기는 것, 그것이 바로 로큰롤이다. 이렇게 말해도 로큰롤이 무엇인지, 로큰롤의 힘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면, 그냥 무작정 영화를 보라. 그리고 극장 밖을 나서자마자 CD를 산 뒤, 반드시 크게 음악을 들어라. 공연장에 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니. (★★★☆)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