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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작은 연못] 노근리 사건을 기억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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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연못
이상우 감독, 2009년

부끄러운 자기반성이 만들어내는 눈물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김민기의 ‘작은 연못’은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모순된 감정으로 처연함을 남기는 노래다. 동화처럼 시작해 비극적으로 끝나는 노래 가사는 정겨운 멜로디에 녹아들어 서글픈 마음을 가슴 속에 새겨 넣는다. 은유적인 가사가 지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때문에 정치적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작은 연못’의 과거를 떠올려보면, 노근리 사건을 소재로 한 <작은 연못>의 제목이 이 노래에서 비롯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 자그마한 연못에 살던 예쁜 붕어 두 마리는 어디로 갔을까. <작은 연못>은 노근리라는 ‘작은 연못’ 속에서 죄 없이 세상을 떠나야 했던, 그러나 오랜 세월 외면 받아온 수많은 ‘예쁜 붕어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역사적 비극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많지만, <작은 연못>은 여타 영화들과는 출발점부터 확연히 다르다. 미군에 의해 무고한 민간인 300여명이 학살당한 ‘노근리 사건’은 여전히 한국과 미국 정부로부터 보상 받지 못한 현재진행형의 사건이다. 이런 점에서 섣부른 영화화는 오히려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상우 감독과 제작진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작은 연못>은 노근리 사건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데 초점을 둔다. 특별한 주인공도 기승전결을 갖춘 드라마틱한 구성도 없는 <작은 연못>은 그저 관객들을 1950년 7월 노근리의 비극적인 순간으로 초대할 뿐이다. 그럼에도 <작은 연못>이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노근리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하나 된 감독, 배우, 스탭들의 진심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작은 연못>은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는 노근리 사건을 단순히 슬픔의 소재로만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깊은 자각에서 비롯된 영화의 태도다. <화려한 휴가>가 무고한 광주 시민들이 군인들의 군화에 짓밟혀 쓰러지는 모습을 극적인 앵글로 담아낼 때,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만들지언정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지닌 역사적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볼 틈은 주지 않는다. <작은 연못>은 <화려한 휴가>가 그랬듯이 희생자들의 죽음을 스크린으로 헛되이 소비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비극의 순간을 보여주며 관객 스스로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게 만든다. 왜 이들은 이렇게 죽어가야만 했는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무엇이었는지, 굳이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동요대회에 나갈 생각에 설레어 하던 아이들과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던 노근리 주민들의 삶이 전쟁이라는 무자비한 폭력 앞에 힘없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은 눈물을 흘리기 이전에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우리는 노근리 사건과 같은 역사적인 비극을 잊고 지내야 했는지, 왜 우리는 이들을 기억하고 있지 않았는지를 말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눈물이 흘러내린다면 그것은 단지 스크린 속 노근리 주민들의 비극에서 전해지는 슬픔 때문이 아닌, 지난 50여 년간 이들의 죽음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는 부끄러운 자기반성 때문일 것이다.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여러 편의 한국전쟁 소재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만큼 <작은 연못>은 더욱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한국전쟁 영화들이 케케묵은 냉전 이데올로기에 기대 극적인 갈등을 만들어낼 때, <작은 연못>은 그런 이데올로기 대립을 뛰어넘어 인간적인 가치를 스크린에 새겨 넣었기 때문이다. 미군은 자신들 편이라고 굳게 믿던 노근리 주민들, 민간인임에도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사격을 해야 했던 미군, 그리고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도 끝내 살아남은 아이를 바라보는 같은 또래 인민군의 모습은 과연 이 비극의 책임을 묻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지 생각하게 만든다. 모두가 같은 인간임에도 서로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은 알고 보면 얼마나 바보 같은가.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그놈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작은 연못에서 예쁜 붕어들이 사라진 건 서로가 자처한 싸움 때문이라고 ‘작은 연못’은 노래한다.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는’ 작은 연못. 그러나 악몽 같은 순간에서 살아남은 노근리 주민들은 다시 자신들의 마을로 돌아와 일상을 살아간다. ‘예쁜 붕어들’은 노근리라는 ‘작은 연못’을 떠나지 않는다. 그렇게 역사는 흐르고 흐른다. 우리의 역사는 그렇게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노근리 사건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고, <작은 연못>을 봐야만 하는 이유다. (★★★★)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