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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춘천에서 뭘 또 그렇게까지



아무 계획없이 극장으로 갔다 접한 이 영화는 참 즐거운 영화였다. 영화 소개 중에 한 단어만 보고 주저없이 이 영화를 골랐다. 춘천, 낭만과 예술의 도시라고 말하기엔 조금 부족한 느낌도 들지만 확실히 춘천은 낭만과도 어울리고 예술가들에게도 인기있는 곳이다.  '영화, 한국을 만나다.' 춘천을 배경으로 한 두번째 작품의 메가폰을 잡은건 「삼거리 극장」의 전계수 감독이었다. 전계수 감독이 춘천에서 풀어낸 한 남자의 여행기는 즐거웠다.


# 시놉시스

춘천은 뭔가 사람들을 낭만적으로 만드는 구석이 있어요
그래서 여기는 예술가들이 많이 살아요


최근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화가 찬우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춘천으로 향한다. 고즈넉한 풍경이 마음에 들어 충동적으로 기차에서 내린 그는 우연히 김유정 문학촌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김유정을 만난다.
자신에게 예술적 재능이 있는지, 화가의 길을 계속 걸어도 좋은지 고민이 많은 유정은 찬우와 함께 춘천의 곳곳을 돌며 예술적 조언을 구한다. 찬우는 자신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르는 그녀에게 신선한 충동을 느끼며 이성적인 호감까지 갖게 되는데…



무엇을 홍보하는 광고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이 광고는 실패작이구먼...)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가 배경음악으로 나오고 춘천 가는 기차에 아리따운 긴 생머리의 여자가 책을 읽고 있던 광고가 있다. 여자가 읽던 책이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여서 책이 오히려 유명세를 탔었다. 춘천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다. 여행 속에서 기분좋은 로맨스가 있을것만 같은 기대감. 서울에서 훌쩍 떠나 기차타고 오른 여행의 도착지는 춘천이 되어야 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준 광고 덕택에 춘천 가는 기차로 시작한 영화는 동시에 관객을 여행길에 올려 놓는다. 여행 가 봅시다.

춘천 가는 기차에서 찬우는 짜증나는 모습으로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읽고 있다. 가기 싫은 세미나에 억지로 끌려가던 길에 김유정역의 분위기에 끌려 홀연히 내린다. 그곳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아리따운 여학생 김유정을 만나고 자신을 따르는 그녀에게 호감이 생긴다.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보는 여행지에서의 설레는 만남이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 만나는 인연. 감독은 남자들의 꿈속에서 완벽한 모습의 여대생을 끄집어 냈고 여자의 그런 모습에 안 홀릴 사람이 있으려나 싶을정도로 유정은 이쁘게 살아 움직인다. 유정의 캐릭터에는 결코 현실엔 존재 할 수 없을 듯한 존재이기 때문에 영화는 남자의 판타지가 되어 흘러간다. 쉬울 것 같던 유정은 결코 쉽지 않고 오히려 찬우를 들었다 놨다 한다. 남자란 놈들은 다 똑같다는 것을 감독은 유쾌하게 그려낸다.


" 행복한 예술가는 동그란 네모와 같은 건가봐요."

유정은 자신이 너무 행복해서 예술가는 될 수 없을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러고선 정말 쉽게도 스튜어디스가 될까봐요. 라는 말은 던진다. 어이가 없지만 '그녀라면 잘 어울린다.' 라는 생각도 든다. "선생님, 절 사랑하세요? 전 성생님 사랑해요. 왜냐하면 선생님은 저에게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어찌보면 4차원인 유정이는 참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김유정 역을 맡은 주민하의 다른 사진을 보면 매력적이거나 이쁘다는 생각이 덜한데 영화속의 모습은 강하게 뇌리에 남아 눈앞에 아른거린다. 보헤미안 스타일의 옷을 입고 여대생의 풋풋함에 순한 여우같은 이미지. 간만에 참으로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만났다.

춘천은 영화의 배경으로 영화 전반에 잘 녹아 들어있다. 김유정 문학촌, 소양댐, 청평사 그리고 춘천 닭갈비에 소주까지. 제일 좋았던 장면은 의암예술제 부분이었는데, 한 번쯤은 찾아가고픈 예술제였다. 몇해 전에 춘천마임축제를 다녀온 적이 있는터라 밤늦게 까지 이어지는 예술제의 풍경과 모든 예술제가 끝나고 맞은 새벽녘의 풍경이 익숙해 좋았다.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축제의 즐거움과 아쉬움 그리고 약간의 피곤함. 영화가 단 일주일만에 모든 장면을 촬영되었고, DSLR로 촬영된 관계로 예술제의 모습을 욕심처럼 담아낼 수 없어 아쉽다고 감독은 말했다. 감독의 바람대로 예술제의 다양한 모습이 더 길게 배경으로 영화에 쓰였다면 영화가 더 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예술제의 밤은 춘천을 더욱 낭만적으로 만드는데 최고라는 건 겪어 본 사람들은 인정할테니 말이다.


조금은 부족한 예술제 장면들에서도 눈과 귀를 사로 잡은 장면이 있었으니, 라벤타나(la ventana)의 공연 장면이었다.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첫 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는 팀이라는데 사람을 홀리는 노래를 불렀다. 특히 여자 보컬 정란의 목소리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영화와는 별도로 좋았다. 영화 「마법사들」의 마지막곡으로 흘러나왔던 '실비아'와 비슷한 느낌의 곡을 불렀는데 음악에 취해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 좋은 노래와 장면이 영화에서 흐르는 배경처럼 지나가 버렸다는 점이다.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에서 통기타 연주에 홀려 두 남녀가 뜨거운 감정을 느끼게 된 것과 비슷하게 찬우와 유정의 썸씽을 바랬지만 나의 작은 소망으로만 그치고 말았다.

서울에서 가까운 낭만과 예술의 도시 그리고 사랑의 도시. 예술가들과도 잘 어울리는 도시. 그런 이미지와 축제의 추억을 안고 봤기 때문에 영화는 더욱 좋았다. 무엇보다 영화는 유쾌했고 나와 울림이 잘 맞았다. 어느날 훌쩍 아무생각 없이 여행을 떠난다면 춘천 가는 기차를 타게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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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와「과속 스캔들」이 보면서 자꾸만 떠올랐다. 비슷한 점이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