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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arthouse모모

[경계도시 2] 아트하우스 모모 씨네토크 (2010.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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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도 전에 열린 씨네토크 이야기를 이제서야 적는다. 사진 자료를 기록으로 남겨 놓아야겠다는 생각에 쓰려고 마음만 먹다가 계속 미루기만 했던 글인데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기억을 더듬게 되었다. 문득 다시 생각이 난 이유는, 베를루스코니 치하의 이탈리아 정부에서 국영 방송의 한 여성 앵커가, 친정부 보도를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며 사퇴를 했다는 뉴스를 접해서였다. 이탈리아 언론의 김예슬이라고 해야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왜 우리나라 언론은 점점 더 친정부 편향으로 물들어 가는데, 저런 선언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라디오에서 진보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약자의 편에서 늘 힘이 되어 주었던 MBC의 정은임 아나운서가 갑자기 그리워지면서 지난 3월 24일에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렸던 <경계도시 2> 씨네토크가 생각났다.

이날 씨네토크에서 홍형숙 감독으로부터 2003년 당시 정은임 아나운서가 송두율 교수를 지표 생물에 비유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표 생물이란 기후나 토양같은 자연환경의 성질을 대표하는 생물을 말하기도 하지만, 해당 지역의 청정도 또는 오염도를 측정하는 상징적 기준이 되는 생물을 지칭할 때에도 많이 쓰인다. 즉, 어떤 지역에 반딧불이가 살 수 있는지, 혹은 도롱뇽이 살 수 있는지를 통해서 그 지역이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정은임 아나운서의 표현대로, 2003년의 한국은 송두율 교수같은 경계인이 버티어 낼 수 없는, 이념적으로 경직되고 개인의 철학을 존중할 줄 모르는 척박하고 야만적인 토양이었다는 것이 <경계도시 2>가 말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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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더욱 슬픈 일은 2010년의 현재에도 상황이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경계도시 2>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맹목적인 악평과 비난 등등)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늦게나마 진실을 접하고, 역사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는 것이 이 다큐멘터리의 의미있는 점이라 생각되며, 홍형숙 감독도 이날 "늦게라도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던지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아프더라도 거울을 똑바로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은 다르다"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이 날 사회를 맡았던 윤성호 감독은 특유의 기지와 유머로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었으며 때로는 예리한 비판으로 토크의 날을 세워 주었다. 이날 한 관객이 윤성호 감독에게 <삼성을 생각한다>를 영화로 만든다면 제작비를 조금이라도 지원하고 싶다는 제안을 하자, 책을 읽고 나면 삼성이 너무 무서워져서 도저히 영화화할 엄두가 안 난다며 극구 사양을 했으며, 영화 <경계도시 2>의 서비스팩으로 <우익 청년 윤성호>를 보시라고 추천하기도 하였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볼 수 있는 짧은 단편 영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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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37년만의 귀국과 그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레드 컴플렉스의 광풍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경계도시 2>는 개봉 당시 수많은 리뷰나 담론들을 생산해 내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상당히 뜨겁게 달구었으며, 4월말에는 최근 독립영화 관람객 수로는 꽤 높은 숫자인 1만 관객 돌파를 기념해서 조촐한 파티를 연 것으로 안다. 7년이나 지난 후에라도 부끄러운 역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공개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3월 24일의 씨네토크에서는 실제 사건 당시 "saving song"으로 활동하면서 인천공항에서 송교수에게 악수를 청하기도 했던 학생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감회를 들려주기도 하였고, 당시 사건을 자세히 몰랐던 대다수의 관객들은 열정적으로 솔직한 감상을 드러내면서 이 작은 영화가 일으키는 깊은 반향을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비록 우리 자신이 송교수에게 판결을 내린 것은 아닐지라도 <경계도시 2>는 그 때 그 사회의 구성원이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다시금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만드는 힘있는 영화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2008년에 보았던 루마니아 영화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16년 전의 부카레스트 혁명의 순간, 당신은 광장에 있었습니까"를 집요하고도 코믹하게 따지고 드는 TV 토론을 소재로 혁명에 대한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10년이 지나든 20년이 지나든 간에 역사를 기억하고 현재를 돌아보는 일은 언제나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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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돌아본다면, 송두율 교수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인데, 공교롭게도 2003년 여름부터 1년간 한국을 떠나 있었기도 했었고, 또 설사 한국에 있었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편파적이기 그지없는 국내 언론을 통해서 사건을 접했더라면, 그 진실을 알기 힘들었으리라는 여러가지 변명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역시 부끄럽다는 생각은 피할 수 없었다. 이 일을 계기로 좀더 눈과 귀를 예민하게 열고, 가능한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사회에 대한 지식과 인식을 넓혀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 언론 매체는 정보의 창구로는 너무 편협하고 옹색하기 그지없다.)

2003년 이후로 7년이 흐른 지금의 한국은 경계인이 존재할 수 있는 사회, 객관적인 철학자가 존재할 수 있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경계인을 허용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경계선들이 생기고, 견고한 경계선을 통해 분열이 강화되고 있는 사회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 남과 북, 좌와 우, 여성과 남성, 한민족과 이주 노동자, 강북과 강남 등등 수많은 경계선이 강화되고 있으며, 옳은 편보다는 강한 편에 속하고 싶어서 "타인에 대한 존중" 같은 건 내팽개치고 달려나가고 있는 사회가 아닌가.

어쨌든 <경계도시 2>는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점에서 혹시 아직 못 보신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영화 속에 담긴 기자들에 대한 풍자는, 왜 우리가 시시하고 한심한 기사밖에 접할 수 없는지 알게 해주는 보너스이다. 진정한 저널리스트 역시 우리 사회에서는 멸종할 수 밖에 없는 지표생물인 것인지, 기자나 아나운서가 당연히 해야할 역할을 우리 사회에서는 가끔씩 시사 PD나 종교인들이나 영화 감독들이 대신하고 있다. 이런 분들이라도 부디 오래도록 버티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