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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필립 짐바르도, <루시퍼 이펙트>

'루시퍼 이펙트'를 읽게 된 계기는 이 책의 저자인 필립 짐바르도가 그 유명한 '스텐퍼드 교도소 실험'을 시행한 심리학자란 점 때문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수감자와 교도관 역할을 배분받은 후 각자의 역할에 몰입한 나머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였고 그 결과 2주로 예상되었던 실험을 6일만에 종료했다는 전설(?)의 실체를 알 수 있다는 사실에 책을 읽게 되었다. 하지만 '루시퍼 이펙트'는 단순히 스텐퍼드 실험에 관한 책이 아닌 인간이 악을 저지르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서술한 책이었다. 약 700 여쪽의 책이지만 심리학을 다룬 책치고는 상세하고도 읽기 쉬운 문체로 서술되어 있어 비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쉽게 책을 읽을 수 있었으며, 저자가 제시한 사례들을 읽으면서 악의 평범성에 경악하고 그 악을 조장한 상황이란 변수의 위험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저자는 스텐퍼드 실험 그리고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학대 사건의 실체를 상세히 서술하면서 그 사건 속에 묘사된 인물들이 악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든 것이 단순히 그들 내면의 기질이 아닌 상황 그리고 시스템이 만들어낸 영향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평범한 인간이 악의 화신이 될 수 있는 현상을 한 때 신의 천사였다 악마로 전락한 루시퍼에 비유해 '루시퍼 이펙트'라고 칭하고 있는데, 루시퍼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그들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압박하는 상황이 인간의 심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규범이나 체계가 느슨해지고 사람들을 익명성의 가면을 통해 보호해주며 그들을 지배하는 상황이나 시스템이 악한 행동을 이념을 통해 정당화 하는 순간, 사람들은 꿈꾸지 못한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루시퍼 이펙트'의 전반부는 70년대에 있었던 스텐퍼드 실험의 경과를 서술하고 있다. 스텐퍼드 실험은 영화와 달리 비교적 체계적이고 심리학적인 발상에서 출발한 점이 눈길을 끈다. 실험 참가자들을 대학생으로 한정함으로써 실험 변수들을 일정하게 설정하고, 그들이 죄수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실험 사실을 알고 있는 수감자 역할의 대학생들을 경찰의 협조로 실제 체포하듯이 모의 감옥으로 수감하고 그들의 장발 머리를 스타킹으로 가림으로써 그들을 몰개성화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교도소 실험에 참여한 학생들의 동기가 당시의 시대를 반영한다는 점이 특징인데, 반전 시위 등의 격렬한 다툼으로 경찰에 구속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대학생들이 직접 모의 감옥에 참여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초반에 느슨한 태도로 실험을 받아들인 수감자들은 점점 감옥이라는 상황에 몰입하면서 다양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교도관 역을 맡은 학생들은 수감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군대 식의 호칭과 체벌을 통해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게 된다. 일부 수감자들은 교도관에게 거친 반항을 하면서 모의 감옥을 빠져 나오려고 하지만 언제든지 실험을 그만둘 수 있던 수감자들은 이제 자신들이 심리학자가 운영하는 실제 감옥에 갇혔다는 것으로 인식한 나머지 모의 감옥이라는 상황을 내면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필립 짐바르도는 가석방 심리 위원회를 통해 그들이 감옥이라는 상황에 몰입되어 버린 것을 깨닫는다. 그들은 수갑을 풀린 상태로 심리를 받았지만 어느 누구도 실험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면서 나갈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감자들은 어느 새 모의 감옥을 실제 감옥으로 받아들여 가석방 위원회에서 자신을 변호하려고 애썼고, 그들의 행동을 비난한 위원회 관계자들의 발언에 좌절감을 느꼈다.

한편 교도관 역을 맡은 대학생들은 선글라스를 착용함으로써 익명성이라는 무기를 통해 수감자들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포로들의 반항을 잠재우기 위해 모욕적인 발언과 군대 식의 체벌을 통해 그들을 관리하던 교도관들은 각자 자신의 우월한 위치를 지배하기 위해 서로 창의적인 처벌 방법을 고안해낸다. 이런 위치 싸움끝에 헬맨이라는 교도관이 우위를 점하게 되면서 교도관들은 다양한 특징을 지닌 집단으로 분화된다. 일부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의 열악한 모습을 보며 인간적인 양심을 느끼면서 선글라스를 벗고 자신의 역할을 느슨히 하는 행동을 보였지만 어느 누구도 가학적인 행동을 저지른 교도관을 말리거나 저항하지 않았다. 일부 교도관들은 '행동하지 않는 악'을 시행함으로써 집단을 배신하지 않으면서 책임을 회피했던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교도관의 체벌이 점점 사악하고 경악할 수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단식 투쟁을 하는 수감자에게 강제로 음식을 투입하려고 하고 심지어 특정 성행위를 하는 듯한 행동을 지시함으로써 그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교도관들의 행동을 지켜본 필립 짐바르도는 동료 심리학자의 지적에 눈을 뜨고 실험을 종료하기로 결심한다.

실험을 감독한 필립 짐바르도는 스텐퍼드 실험이 점점 극한의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 자신이 심리학자가 아닌 교도소장 역할에 몰입한 탓이라고 자책한다. 반항적인 수감자 한 명을 귀가시킨 후 탈출에 대한 소문을 들은 짐바르도는 감옥을 이동시킬 계획에 몰입한 나머지 교도소 내에 벌어지는 미묘한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교도관 역을 맡은 대학생들에게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하지 못함으로써 교도관들은 점점 거칠게 반항하는 수감자에 대항하기 위해 스스로 규범을 창조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그들은 점점 가학적인 처벌 방식을 개발하는 진화를 보이게 된 것이다.

저자는 스텐퍼드 실험을 정리하면서 상황이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지적한다. 상황 속에서 주어진 역할에 몰입하게 되면 사람들은 점점 악한 행동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립 짐바르도는 교도소 내에서 일부 수감자들이 저항한 행동을 통해 상황이라는 변수 속에서 영웅적인 반응을 통해 부당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단식 투쟁을 벌인 수감자 그리고 부당한 요구를 하는 교도관의 행동을 거부한 수감자의 사례를 통해 그는 두 수감자가 보인 행동을 칭찬하면서도 그들의 행동이 개인적 차원에 머물렀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만약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단체적으로 저항했다면 더욱 효율적으로 교도관의 폭력에 저항할 수 있었을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의 사례를 통해 저자는 영웅의 평범성을 마지막 챕터에 제시하는데, 부당한 상황 속에서 평범한 개인도 악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음을 희망적으로 서술한다.

책의 전반부가 스텐퍼드 실험의 경과를 묘사했다면 후반부는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있었던 포로 학대 사건과 스텐포드 실험의 유사성을 비교함으로써 인간을 악하게 만든 것은 개인의 기질이 아닌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을 만들어낸 시스템에 책임이 있음을 지적한다. TV를 통해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사건을 목격한 저자는 이 사건이 자신이 실행했던 실험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한다. 벌거벗은 신체를 통해 모욕감을 주고 성적인 행위를 모방하도록 유도한 미군 병사의 모습에서 예전 실험의 잔상을 발견한 저자는 사건의 주동자 중 하나였던 칩 프레더릭 하사와 인터뷰를 통해 그가 경악스런 포로학대를 한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상황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우선 저자는 칩 프레더릭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음을 증명함으로써 그가 악한 행동을 하게 된 것은 개인적인 기질이 아니었음을 주장한다. 정신학적 검사 그리고 그의 과거 행적을 조사한 필립 짐바르도는 프레더릭이 교도소에서 근무할 당시 모범적인 교도관이었으며 이웃들과 함께 어울리는 남성이었음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개인적 기질의 무결함을 통해 그가 '썩은 사과'가 아니었음을 보여준 저자는 아브그라이브 교도소라는 '썩은 상자'의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좋은 사과가 상자 속에서 썩어버려 포로학대라는 끔찍한 악을 만들어냈음을 드러낸다.  

칩 프레더릭이 근무한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의 환경은 일반 교도소보다 훨씬 열악하고 생명의 위협이 오가는 장소였다고 한다. 매일 박격포의 위협이 오가는 교도소 내부에서 야간 12시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포로를 감시하는 상황에 놓인 프레더릭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탈진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아브그라이브의 군 체계는 상당히 엉망진창이었다고 한다. 수용소를 지휘하는 상부 계급의 군인들은 프레더릭같은 병사들이 교도소 내부의 환경 개선에 대한 건의를 묵살하였으며, 정부 수집에 불을 켠 미국 정보기관들은 군인들의 체계를 무시하고 포로들을 자의적으로 데려가 심문하였다고 한다. 대규모의 포로들을 수용한 환경 속에서 근무해 본 경험이 전무한 일반 병사들은 잘못된 행동을 제재할 체계가 전무한 교도소의 환경 속에서 점점 익명성의 가면을 쓰게 되었고 그 결과 극심한 스트레스적 요인을 풀고 단체의 결속성을 강화하는 유희의 일종으로 끔찍한 포로 학대를 시행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포로 학대 사건이 단순한 병사들의 행동이 아닌 포로 고문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려 한 미국 행정부의 지나친 압박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시스템의 문제였음을 설득력있게 전개한다. 필립 짐바르도는 15장에서 자신이 검사 역을 맡아 부시 행정부의 핵심인물들의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부시 행정부의 행정 악을 비판한다.

'루시퍼 이펙트'는 상황 속에서 인간의 내면 기질과 관계없이 악한 행동을 벌이게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암울함이 담겨있지만 마지막 챕터를 통해 저자는 평범한 인간도 부당한 상황 속에서 영웅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제시한다. 우선 저자는 악한 상황에 맞서는 10단계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는데, 지문의 한계 상 그것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서술한 법칙들을 보여준다. 10가지 법칙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잘못을 인정하며 집단에 속하되 부당한 행동에 저항해야 한다 등의 개인적 차원의 실천 방안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법칙은 '안보라는 환상을 위해 개인적 자유를 희생하지 말 것'이라는 문구인데, 희생이 실제적인데 반해 안보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며 그것을 이용해 정치세력이 우리를 지배를 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10가지 법칙이 개인적 차원의 실천이라면 영웅의 정의를 확대하자는 저자의 주장은 상황의 힘을 넘어 평범한 인간이 영웅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저자의 믿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는 영웅의 정의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즉각적인 희생을 한 전쟁 영웅에 한정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신체적 위험 뿐 아니라 사회적인 명예나 경제적인 재산의 피해를 무릅쓰고 행동하는 사람들, 즉각적인 희생 뿐 아니라 삶의 질이 급격히 악화될 장기적인 희생을 감수한 사람들, 모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희생하고 어떠한 노력의 댓가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영웅에 해당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필립 짐바르도는 베트남의 밀라이 마을 학살 사건에서 민간인을 구출한 휴 톰프슨 중위, 아브그라이브 사건의 실체를 폭로한 내부 고발자 조 다비, 존스타운의 실체를 고발한 데비 레이턴과 존스타운의 신도들을 이끌고 탈출한 리처드 클라크 등의 사례를 통해 자신을 구속하는 압도적인 상황 속에서 희생을 감수한 영웅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마지막 챕터의 아쉬운 점은 영웅적 행위가 평범한 일반인에게도 발생할 수 있음을 증명할 적절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저자도 언급한 것처럼 개인의 영웅적 행위를 분석할 때 해당인물이 영웅적 행위를 벌인 후의 인터뷰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막상 영웅적 행위를 유발하는 순간을 다루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챕터는 상황 속에서 영웅적 행위를 보인 사람들의 사례를 제시하지만 어떻게 하면 압도적인 상황 속에서 영웅적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설득력이 부족한 한계를 보인다. 하지만 저자가 영웅적 행위를 소수만의 특별함이 아닌 모든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내면적 행위임을 주장함으로써 선한 행위를 유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악을 저지른 인간들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처럼 선을 실천할 수 있는 것 역시 내면의 기질이 아닌 인간 누구나 발휘할 수 있음을 인식토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영웅적 행위의 평범성은 우리 모두가 영웅이 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언젠가 우리에게도 그 기회가 닥칠 수도 있는 선택이다. 나는 영웅적 행위를 선택받은 소수의 희귀한 특징보다는 인간 본성의 평등한 속성으로 만듦으로써 모든 사회에서 영웅적 행위를 권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676)


어둠의 심연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우리의 긴 여행에서 도출할 수 있는 마지막 메시지는 영웅적 행동과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칭송해야 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 사이의 필수적인 연결고리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인간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 우리 가운데 사라지지 않고 계속 존재하는 악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하고, 결국에는 모든 사람의 집단적인 마음과 영웅적인 의지 속에 있는 더 큰 선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것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스탈린의 굴라그에 갇혀 있었던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의 한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선과 악의 경계는 모든 사람의 마음 한복판에 있다." (p676~6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