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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arthouse모모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 (Last Chance Harvey, 2008)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는 런던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어찌보면 비교적 예상이 가능할 정도로 이야기가 정해진 틀을 벗어나는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 사랑의 순간을 담백하면서도 소박하게 담아내는 편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매력적인 것은 일상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중년의 인생을 살고 있는 두 남녀의 사랑이 비교적 공감을 자아낸다는 점이다. 또한 더스틴 호프만의 차분하면서도 침착한 연기 그리고 엠마 톰슨의 감정적인 연기의 조화가 두 남녀 캐릭터에 감정을 확실하게 이입시키는 효과를 준다.

영화는 두 남녀가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교차 편집의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미국에서 광고음악을 작곡하지만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해고 위기에 놓인 하비의 모습 그리고 영국 런던의 공항에서 고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설문조사원 케이트의 일상을 통해 영화는 일상 속에 치여 살아가는 중년의 모습을 담아낸다. 영국으로 날아가기 직전 자기보다 어린 작곡가에게 작업을 뺏기게 될 처지에 놓인 하비는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관계자를 설득시키겠다고 매니저에게 하소연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라고 선고를 내리고 사라지는 매니저의 모습 뒤에 남겨진 하비의 모습은 젊은이들에게 뒤쳐져 버림받을 처지에 놓여있는 중년의 위태로움이 느껴진다.

한편 케이트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외로운 여성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창문 너머로 옆 집에 사는 폴란드 남성에 대한 의심을 하면서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한다. 아버지의 배신으로 상처입은 어머니에 신경쓰면서 낮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일상을 보내는 그녀를 위해 직장 동료는 지인을 통해 남자를 소개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자를 만나지만 그의 동료들이 테이블에 끼여들면서 케이트는 낯선 이방인이 되어 버린다. 자리를 떠난 후 어머니를 돌보는 일상적인 삶으로 되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하비가 런던에서 보낸 하루는 더욱 비참하다. 호텔에 도착해 딸 수잔의 행방을 찾은 하비는 파티장에서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 딸의 새로운 가족 속에서 비참한 기분을 느낀다. 전화를 받으런 간 사이에 어느 새 테이블 뒷 자리로 밀려 버리고 축하 인사는 자신이 아닌 새아버지가 자리를 차지한 광경에 씁쓸한 미소를 짓는 하비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안타깝다. 작업 관련 문제 때문에 결혼식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가야 겠다고 고백한 하비에게 수잔은 결혼식에 함께 입장할 아버지를 하비가 아닌 새아버지를 선택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환영받지 못한 손님으로 방황하던 하비는 정말로 딸의 가족에서 멀어진 이방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결혼식을 멀리서 쓸쓸히 바라보며 사라지는 하비의 뒷모습은 소외된 아버지의 슬픔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그토록 서두르던 미국 행 비행기를 놓치고 난 후 이제 모두 끝났다는 전화를 받은 하비의 모습은 더욱 비참하기 그지 없다.

이렇듯 하비와 케이트는 기대를 품고 하루의 일과를 보내지만 주변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대접받으며 쓴 맛을 본다. 다음 날 떠날 비행기만 기다리며 방황하던 하비는 처음으로 케이트와 마주하게 된다. 식당에서 쓸쓸히 식사하는 케이트에게 공항에서 무시하고 지나친 자신의 무례함을 사과하던 하비는 어느덧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는다.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하비의 대화는 어느 새 무뚝뚝하게 맞받아치던 케이트도 자신의 마음을 열어가는 계기가 된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던 두 남녀는 잠시의 만남을 아쉬어하듯 계속해서 길을 걸으며 상대방의 마음에 호응하게 된다. 하비와 케이트가 런던의 일상적인 거리 속에서 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거리에서 연주하는 길거리 밴드의 음악에 호응하며 서로의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소박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최악의 하루를 보내고 난 후 우연히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은 어느 새 조금씩 호감어린 사랑으로 발전하게 된다.